창업을 하는 이유
대부분의 사업은 1->many의 형태를 갖고 있다. 이미 시장의 검증을 거친 모델을 수익화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하는 건 1->many가 아니다. 0->1. 제로투원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 문제의 정의를 새롭게 하여 존재하지 않았던 해결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고 세상을 새롭게 구조화하는 행위.
이건 전혀 다른 게임이다.
좀 더 거칠게 말하면 기존의 패러다임에 큰 엿을 날리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과소비를 촉진하는 패스트패션과 쉽게 버리고 쉽게 소비를 격려하는 산업에 큰 엿을 날리고 싶다.
<정의는 무엇인가>의 유명한 저자인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과 현재 핫한 회사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알렉스 카프 (Alex Karp)의 말을 빌려 쓰자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같은 꽤나 심도 깊이 있는 논의를 특히 공론장에서 점점 피하게 되었다. 결국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의 대답은 비어졌고, 그 빈 공간은 시장이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즉 오늘날의 좋은 삶이란 윤리, 철학적 사고, 인간적인 가치가 아닌 매출 이윤, 마켓 수요, 가성비 등, 시장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조금 더 풀어 말하자면 가치가 있는 직업은 높은 연봉이, 가장 좋은 제품은 높은 판매량이, 가치가 있는 예술은 높게 책정된 가격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샌덜은 이걸 '시장 승리주의' (market triumphalism)이라고 부른다.
시장은 매우 효율적이긴 하나, 시장이 모든 가치를 매기거나 정의할 순 없다. 마치 인간의 애착 및 감성, 장인의 철학과 손 기술, 시간의 흔적의 가치에 가격표를 달수 없는 것처럼.
'시장 승리주의'로 인해 소비의 의미가 희석되었다. 필요로 인한 소비 혹은 애착의 소비보단 의미 없고 쓸데없는 소비가 과도하게 증가하고 있다. 과소비에 맞물려 물건을 오래 쓰는 가치 또한 사라지고 있다. 효율성이 높은 생산력과 공급망으로 물건의 가격이 저렴해졌고, 결국 저렴한 가격이 그 물건의 가치를 대체했다. "왜"라는 질문보다 "얼마인가"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바로 패스트 패션 산업이다. 패스트 패션 산업은 말한다. 옷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매우 저렴한 상품이라고. 한두 번 입고 싫증 나도 괜찮다며 격려한다. 또 사면되니까. 그러니 더 즐기고 소비하라고 부추긴다. 더 싸고, 더 다양하고, 더 빨리 배송해 줄 테니. 그렇게 우리는 낭비의 시대, 의미를 잃은 소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인간의 욕망을 지능적으로 타겟하여 거대한 이윤을 창출해 내는 능력치가 최고치인 대단한 회사들이다.
나는 단지 그들과 다르게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엿을 날리고 싶은 건 사실이다).
우리가 입는 옷은 그렇게 쉽게 폐기하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우리 정체성의 조각이며 우리 삶 스토리의 일부분이다. 특히 장인정신으로 디자인을 하고, 패브릭 소재를 엄선하고, 본인의 철학과 영혼을 담아 옷이나 제품을 창조하는 건 경외롭기까지 하다. 공장에서 영혼 없이 무더기로 찍어내는 제품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저렴한 가격은 의미가 사라진 소비로만 이어지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대체하는 것과 폐기가 너무나 가볍고 쉬운 행위가 되어버렸다. 손쉽게 폐기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작은 행위는 고스란히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자연 생태계가 짊어저야 할 짐이 된다.
언젠가 인류는 정말 다행성 종(multiplanatery species)이 될 거라 믿는 다. 다양한 행성에 뿌리를 두어 인류는 계속 생존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AGI가 실제로 구현되고, 화성에 사는 날이 오더라도, 지구만큼 인간이 살기 가장 최적화된 행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인류를 발전시키는 것과 더불어 지구를 보존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 가장 높은 차원의 의무가 아닐까?
우리는 단순한 업사이클링 비즈니스, 서비스를 하려는 게 아니다. 새로운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려는 하나의 실험이다. 버리는 행위에서 다시 창조하는 행위로, 낭비가 아닌 지속성과 애착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더 나아가 소비의 구조, 패션의 정의, 인간과 물건의 관계를 새롭게 구조화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시장 승리주의가 차지한 가치 공간에 좋은 삶이란, 좋은 옷/제품은 무엇인지, 무엇이 오래 지속가능한 지, 무엇이 가장 인간적인 건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논의를 하고 싶다. 우리만의 철학을 세우고 문화를 바꾸고 싶다.
나는 세상을 따라가고 싶지 않다. 세상을 새롭게 구조화하고 새롭게 배열하고 싶다.
모두가 이해할 필요는 없다. 세상을 새롭게 만들고 바꾸는 일은 언제나 소수자로 창조된다.
그리고 이 글은 일종의 선언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나 자신을 향한 나의 선언. 혹여나 예상치 못한 외부의 타격으로 나의 소신과 철학이 흔들리지 않게 나 자신을 리마인드 하기 위해 쓴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