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서란 Oct 05. 2023

70대 엄마의 쿠팡 사랑

미니멀 쇼피엔스 – 노인의 쇼핑편

얼마 전 확장 이전한 동네 식당에 갔다가 놀라운 풍경을 마주했다. 테이블마다 메뉴판을 겸한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어 주문부터 결제까지 테이블에서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시골이라 아직은 사람이 주문받고 계산해 주는 곳이 더 많긴 하지만 키오스크 기계는 어느덧 시골까지 침투했다.


‘아니, 손님 대부분이 동네 중년층 이상인데, 여기에 키오스크라니?’


당황해 주변을 둘러봤더니 어르신 중엔 이것저것 눌러가며 잘 사용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포기하고 직원을 불러 주문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테이블은 직원이 와서 빠르게 주문을 확인하고 해당 테이블 키오스크에 대신 주문을 입력해 줬다. 그나마 테이블 오더 시스템은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대형 키오스크는 뒤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빨리 주문을 끝내야 한다는 부담에 나도 가끔 긴장이 된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시스템은 사람 간의 유대가 없다 보니 정(情)이 없다. 꼭 사람 많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정신없이 밥 먹고 나가는 느낌이다. 식당에서 밥 한 끼 먹는데 뭘 유대까지 따지냐 싶을 수도 있지만, 손님과 사장(혹은 직원)이 서로에게 건넨 말 한마디가 가끔은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기도 한다. 고물가에 인건비는 오르고 일손은 부족한 매장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테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마음 한편에선 어쩐지 아쉽다.


이런 걸 볼 때마다 노인이나 디지털 취약 계층이 소외되는 것에 마음이 쓰인다. 동시에 엄마 생각을 한다. 나도 가끔은 버벅거리고 당황스러운데 엄마는 잘하고 계실지. 그래도 70대 중반의 엄마는 본인 또래에 비해 비교적 기기 사용이나 인터넷을 잘 사용하는 편이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말라며 그동안 내가 부단히 학습시킨 결과다. 다른 일엔 투덜대도 컴퓨터나 핸드폰 사용에 대해 물어보면 그것만큼은 친절하게 잘 알려드리고 있다. 2000년부터 ‘한메타자교사’(아... 옛날 사람 인증)를 시작으로 컴퓨터를 가르쳐 드리고, 안방에 엄마 전용 컴퓨터를 놓고 몇 년에 한 번씩은 업그레이드도 하면서 계속 컴퓨터를 사용하시도록 했다. 덕분에 10년 넘게 블로그에 일기도 쓰고 계신다.


처음 스마트폰이 나올 때만 해도 핸드폰이 전화만 잘 되면 되지 복잡하게 스마트폰이 굳이 뭐 하러 필요하냐던 엄마는 이제 웬만한 젊은이들만큼 스마트폰을 잘 활용한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원하는 걸 검색하거나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전송하는 건 기본이고, 모바일뱅킹이나 여러 앱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친구들과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갈 때면 대표로 코레일 앱에서 기차표를 예매해 승무원에게 모바일 승차권을 보여줄 줄도 아신다. 그래서 친구들 중 스마트폰을 가장 잘 사용한다는 자부심도 있다.


노안으로 스마트폰 작은 글씨 보는 걸 힘들어하셔서 집에 계실 땐 편하게 보시라고 태블릿을 사다 드린 후부턴 태블릿으로 게임도 하고, 쿠팡을 깔아드리고부턴 인터넷 쇼핑도 열심히 하신다. 전에도 인터넷 쇼핑을 알려드리긴 했지만, 오픈마켓을 포함한 기존의 쇼핑몰들은 이용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이용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웬만한 건 오프라인에서 직접 구입하고, 검색해 본 후 온라인과 가격 차이가 큰 물건은 나에게 링크를 알려주면 결제를 대신해 드리는 방식으로 물건을 구입해 왔다.


그러다 언젠가 갑자기 쿠팡이 떠올라 쿠팡 앱을 엄마 태블릿에 설치한 후 유료 멤버십 서비스에 가입을 했다. 한 달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이용해 보고 필요하지 않으면 해지해도 된다는 말과 함께 엄마에게 사용 방법을 알려드렸다. 쿠팡은 온갖 상품들이 다 모여 있어 한 곳에서 모든 상품을 주문할 수 있고, 검색 후 ‘로켓’에 체크를 하면 자체배송 되는 상품만 검색할 수 있어 주문금액이 얼마가 됐든 배송비 부담 없이 주문 다음날 배송된다는 게 큰 장점이다. 여기에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배송지와 결제카드 정보를 저장해 놓으니 주문은 간단했다. 시험 삼아 저녁 늦게 주문한 제품을 다음날 아침 받아 본 엄마는 그 이후로 쿠팡 단골이 되었다.


나는 주로 네이버에서 검색하고 여러 제품과 판매처를 비교한 후 스마트스토어에서 쇼핑을 하는 편이라 쿠팡을 잘 이용하지 않지만(산만한 디자인도 한몫), 쿠팡은 편의성 면에서 어르신들이 이용하기엔 꽤나 괜찮은 쇼핑몰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한 달만 무료로 이용해 본다던 엄마는 매달 4,900원을 내며 이제는 신선식품까지 쿠팡에서 구입하신다. 2~3일에 한 번씩 주문하며 이렇게나 잘 이용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알려드릴걸.


인터넷 쇼핑을 좀 줄여야지 싶다가도, 쿠팡을 애용하는 엄마를 보면 몸이 불편한 노인층이야말로 인터넷 쇼핑이 대안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필요한 물건을 사러 일부러 집 밖을 나가고 무거운 걸 들고 와야 하는 수고로움을 인터넷 쇼핑은 간단히 해결해 준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불편할수록 디지털 이용이 필요하고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모바일뱅킹이 대세가 되면서 은행 점포도 점점 줄어들고, 시외버스터미널 등의 공공시설마저 키오스크가 점령해 버렸다. 모든 서비스가 디지털과 무인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기 사용이 익숙한 사람에겐 손가락 하나로 다 해결가능한 쉽고 편한 세상이지만, 기기 사용이 익숙치 않은 사람에겐 디지털 장벽으로 일상이 불편한 세상이다. 디지털 기기와 기술은 점점 더 진화하는데, 과연 미래에 할머니가 된 나따라갈 수 있을까? 어쩌면 노인복지관 같은 곳에서 신문물 이용 방법에 대한 교육을 듣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전 09화 인삼을 공짜로 준다고? 공짜의 함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