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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란 Oct 12. 2023

물건을 통해 나를 보다

[에필로그] 미니멀 쇼피엔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때 그 사람이 소유한 물건과 머무는 공간을 보면 알 수 있다다. 누군가의 물건과 공간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 생활 습관, 관심사 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니멀 쇼피엔스>에 엮인 몇 편의 글은 내가 소유한 물건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처음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건,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 말하면서도 수시로 인터넷 쇼핑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모순적이라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하나하나의 물건과 물건으로 채워진 공간을 가만히 둘러보다 보니 지금 내 옆에 있는 물건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과정과 물건에 얽힌 사연까지 떠오르면서 내게 그 물건이 지니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나의 공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꽤 많은 부분을 알려주고 있었다. 예전에는 요긴하게 사용했으나 지금은 필요치 않은 물건을 보며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관점이 달라진 걸 느끼기도 했다.


물건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난 쇼핑 목록 대부분이 집에서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살림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서의 생활을 많이 하는 나에겐 편안하고 안락한 집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이를 위해 마음에 드는 궁극의 물건을 찾을 때까지 쇼핑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집 안의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문득, 내가 너무 유형의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깟 물건이 뭐라고.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이 살 수 있는데 왜 이리 집착을 하는 것일까.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사겠다고 시간을 펑펑 낭비하질 않나, 안 쓰는 물건을 집에 두는 것이 눈에 거슬려 무조건 처분해 버리려 하질 않나…. 이 ‘비움의 강박’ 역시 유형의 것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었다. 유형의 것들로부터 좀 초연해질 순 없는 걸까?


편안하고 안락한 집이 꼭 유형의 것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닌데, 나는 자꾸 모든 것을 유형의 것에서 찾고 있었다. 그래서 소비를 통해 물건을 사고 물건으로 공간을 채우려 했다. 채움과 비움, 있음과 없음을 의식하지 않은 상태야말로 진정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음을 머리로는 알면서 자꾸 놓치고 산다.


이제 우리 집은 유형의 물건으로 채울 수 있는 편안함은 충족됐으니, 앞으론 내 정신과 마음을 안락하고 평온하게 채워야 할 때인 것 같다. 물건에 대한 탐구와 정리를 하다 보면 보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탐구로 자연스레 생각이 옮겨가게 된다. 삶에서 정말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혹여 내가 놓치고 사는 게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인간관계나 시간 등을 비롯한 여러 무형의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하게 된다. 바람이 있다면, 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고 싶다.



‘쇼피엔스(Shopiens)’는 ‘쇼핑(Shopping)’과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합한 말이다. 제목 <미니멀 쇼피엔스>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지만 끊임없이 쇼핑하는 지금의 나를 말하는 동시에, 최소한의 쇼핑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바람을 담은 중의적 표현이다. 모순 인간은 오늘도 미니멀 라이프를 외치며 쇼핑을 한다.



<미니멀 쇼피엔스>는 여기서 짧게 마무리합니다. 다음에 다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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