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반려인은 시골에 살며 채식을 한다. 집 주변에 채식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다 보니 주로 집에서 모든 업무를 보는 우리는 매끼 집밥을 만들어 먹는다. 아침 8시쯤 여름엔 과일(주로 바나나)+견과류+오트밀 음료를 갈아 마시고, 봄, 가을, 겨울엔 차를 마신다. 그리고 오전 11시 반, 오후 5시 반에 규칙적인 식사를 한다. 이렇게만 보면 건강한 식습관을 갖고 몸에 좋은 것만 챙겨 먹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밥, 빵, 면, 떡을 중심으로 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점심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요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주로 간소화한 밥상을 차린다. 끼니마다 국이나 찌개 같은 메인요리 하나와 반찬 한두 가지를 먹거나, 덮밥이나 떡볶이, 파스타 같은 단품 요리는 반찬 없이 먹기도 한다. 먹는 가짓수는 적지만 양이 적은 건 아니다. 식사 후 제철 과일까지 꼭 챙겨 먹는다. 둘 다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해서 먹을 만큼만 요리하고 주어진 양은 최선을 다해 먹는다. 그래서 우리 집의 음식 쓰레기는 채소나 과일의 껍질이 전부다. 간혹 조리하다 음식을 태워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게 아니라면 웬만해선 음식을 버리는 법이 없다.
여름 내내 우리는 밥보다 카펠리니(파스타 중 가장 얇은 면)를 더 많이 먹었다. 파스타면 재료인 듀럼밀은 다른 곡류에 비해 혈당지수도 낮고 단백질 함량이 높다고 하니 건강에 괜찮겠지 생각하며 먹긴 했지만, 거의 매끼 카펠리니를 활용해 샐러드파스타, 토마토냉파스타, 들기름막국수, 콩국수, 비빔면 등을 먹다 보니 좀 절제해 보자 싶어 2주간 밀가루를 끊어보기로 했다. 치아바타와 깜빠뉴 빵도, 채식만두도, 시리얼도, 채식라면도 안녕이었다.
밀가루와 화학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을 안 먹기로 결심하고 실행한 지 오늘로 딱 9일째다. 평소에도 성분표를 보고 화학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가공식품은 구입하지 않았지만, 첨가물을 완전히 배제하긴 힘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일 년 넘게 매일 먹는 오트밀 음료도 많은 종류의 오트밀 음료 중 고르고 고른 것인데도 산도조절제와 유화제가 들어가 있다. 결국 미미한 수준으로 들어간 재료까진 허용하는 것으로 타협하고 가공식품을 최대한 적게 먹고 있다. 만약 우리가 출퇴근하는 직장인이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었을 것이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파는 간편 음식이나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에 화학첨가물이 안 들어간 경우를 찾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자연 원물보단 첨가물로 만드는 것이 비용적인 면에서 훨씬 저렴하니까 가성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밀가루와 화학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을 안 먹기로 결심하고 실행한 지 9일 째. 채소와 과일을 더 많이 먹게 되었다. ⓒ은서란
밀가루와 화학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을 제외하고 나선 선택할 수 있는 가공식품이 거의 없다 보니 자연스레 채소와 과일을 더 많이 먹게 되었다. 요새는 과일과 채소를 듬뿍 넣은 두부 샐러드나 버섯 샐러드를 주로 먹고 있는데, 그것만 먹어도 생각보다 포만감이 크다.(물론 배부르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한 대접씩 먹는다) 그동안 하나의 요리로 대접하지 못하고 파스타의 곁들임 반찬 정도로만 여겼던 샐러드에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먹는 음식을 간소화하면 냉장고 안도 간소해진다. 우리 집은 일주일에 한 번 동네 마트에서 일주일 먹을 양의 두부, 버섯, 채소, 과일을 구입하는데, 냉장고 어느 칸에 뭐가 있는지 파악하고 계획한 만큼만 장을 보다 보니 식재료가 상해 버릴 일도 없고 냉장고 공간은 항상 여유가 있다. 경험상 냉장고 안에 음식을 계속 채우다 보면 뭐가 있는지 잊어버려 결국 전기료 내고 보관했다가 쓰레기통으로 가게 될 확률도 높아진다.
공간을 비우는 것만큼 중요한 게 식탁을 간소화하는 것 같다. 어쩌다 외식을 할 때면 많은 양과 가짓수의 음식에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남기지 않으려고 최대한 열심히 먹어 보지만 한도 초과로 남기게 되면 종일 마음이 불편하다. 음식도 좀 미니멀하면 좋겠다. 많은 음식을 차려 놓고 조금씩 맛본 후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것보단, 몇 가지 음식에 집중해 음미하며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럴수록 내 앞에 차려진 음식이 더 귀하게 느껴질 테니. 양보단 질, 좋은 음식 한 가지를 선택해 남기지 않고 먹는다면 내 몸에도 환경에도 이롭지 않을까?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든다'고 했다. 건강한 음식을 간소하게 먹고건강하고 간소한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