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날씨는 여전히 덥지만 마음만은 가을이다. 9월이 되며 덥다고 미뤄뒀던(사실은 항상 미루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선선한 가을엔 운동을 거부할 핑곗거리를 만드는 것도 양심에 찔린다.
나는 운동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다. 도시에 살 때 간헐적으로 몇 개월씩 요가원을 다니거나 헬스장을 다닌 적은 있지만, 출퇴근길 걷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으로 운동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니 쉬는 날엔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고 위안을 삼았다. 그나마 집에서 스트레칭이라도 시작한 건 9년 전 시골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시골에 오기 전엔 시골에 살면 매일 자연 속에서 걷고 운동하며 건강하게 살 줄 알았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도시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걸었는데, 시골에서는 집 앞부터 목적지까지 항상 자가용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부러 나가서 걷지 않으면 걸을 일이 없다. 그래서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나가 동네 산책 겸 걷기라도 할라치면 매번 마을 어르신들을 마주쳐 불편했다. 농사짓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유유자적 산책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비치진 않을까 염려되기도 해서 몇 번 걷고는 나가지 않았다. 이십 대 땐 멋모르고 혼자 등산도 많이 다녔는데 삼십 대가 되니 겁이 많아져서인지 혼자 등산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삼사십 분씩 차를 타고 멀리 떨어진 헬스장에 가는 것도 어려워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운동에 대해 무지한 내가 시골집에서 처음 시작한 운동은 ‘국민체조’였다. 아침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매일 3세트씩 국민체조를 따라 하는 것으로 이만하면 운동을 충분히 했다고 뿌듯해했다. 몸 움직이는 것 싫어하고 게으른 내가 하루 고작 15분 맨손체조라도 일 년이나 했다는 건 엄청난 거라고 혼자 기특해하면서.
그 후로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오고 친구와 함께 살면서는 실외 운동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가끔 함께 산에도 가고, 집 근처 강변도 걷고, 배드민턴도 치고, 노르딕워킹도 배웠다. 그러나 야외 활동은 변수가 너무 많았다. “오늘은 비가 와서 안 돼”, “오늘은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 “코로나 때문에밖은 위험해”, “컨디션이 안 좋아” 등등의 이유로 밖에 나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사실 게으른 사람에게 운동은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더 쉽다. 그래도 운동해야 한다는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어서 코로나 이후 홈트가 유행하던 때 나도 그 대열에 동참해 집안에 운동기구들을 하나둘 들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집을 거쳐간 크고 작은 운동기구들. ⓒ은서란
가장 먼저 구입한 건 헬스 자전거였다. 상당수가 구입 후 한 달 이내에 장식품이나 옷걸이 용도로 쓴다는 바로 그것을 나도 샀다. 러닝 머신과 워킹 머신, 헬스 자전거 중 고민하다가 러닝이나 워킹 머신은 층간소음이 있을 수 있어 헬스 자전거로 결정했다. 층간소음 걱정 없이 집에서 하체의 근력을 단련할 수 있다는 장점에 쇼핑몰을 둘러보다가 혹시나 해서 본 당근마켓에서 신품가의 절반 가격으로 파는 것을 발견하고는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물건을 들여왔다. 매일 30분 정도 재미난 영상 하나 보면서 자전거 타는 게 뭐 어렵겠어? 하면서 운동을 시작했다.그런데...어려웠다.
영상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제자리에서 자전거 타는 건 재미없었다. 며칠 만에 우리 집 헬스 자전거도 거실 구석에서 장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한 달도 안 되어 당근마켓에 다시 팔았다. 구매자분께 솔직하게 “집에 헬스 자전거 있으면 열심히 운동할 줄 알았는데 안 하게 돼요”라고 했지만, 그분은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도 못 가고 이거라도 해야죠” 하면서 웃으며 사갔다. ‘저도 그런 생각으로 샀는데요...’ 차마 이렇게 말하진 못했다. 어쩌면 그분은 나와 다르게 열심히 할 수도 있잖아?
허리가 자주 아프니 스트레칭 위주로 운동을 해야겠다 싶어 두 번째로는 스트레칭 기구를 들였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 좌식 의자 형태로 되어 있는 제품인데, 척추 닿는 부분에 돌기가 있어 앉아서 뒤로 몸을 젖히면 척추를 마사지하고 복부, 허리, 허벅지 근력을 강화하는 복합 운동기구라고 했다. 쉽게 요가 낙타자세를 만들어 주는 기구다. 이것도 당근마켓으로 샀다.
중고로 거래되는 운동기구는 새 제품 수준의 물건이 많다. 주인들이 다들 나 같은 사람인가 보다. 스트레칭 기구 역시 몇 번 쓰지 못하고 다시 팔았다. 몸을 뒤로 젖힐 때마다 메스껍고 어지러워 버틸 수가 없었다. 신경과에서 이석증 치료도 두 번이나 했는데 아직도 머리를 뒤로 젖히면 멀미 증상이 나타난다. 뒤이어 친구에게서 넘겨받은 필라테스 스트레칭 소도구인 스파인코렉터도 같은 이유로 사용하지 못했고, 스텝퍼 역시 몇 번 사용하다가 엄마한테 갖다 드렸다. 다행히 엄마는 잘 사용하고 계신다.
이밖에도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짐볼은 제대로 활용할 줄도 모르는 데다, 큰 공이 집안에서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눈에 거슬려 처분해 버렸다. 또, 계단 오르기가 운동 효과가 좋다기에 실내에서 계단 운동을 할 수 있는 스텝박스도 구입했는데, 몇 번의 사용 후에 현재 책상 아래에 두고 발받침으로 잘 쓰고 있다. 예쁜 걸 사면 좀 더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을까 싶어 노란색으로 샀더니 확실히 방바닥에서 산뜻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긴 하다. 덕분에 아주 가끔 끄집어내 10분 정도 계단 운동을 한다. 희한하게 중고로 산 건 다시 팔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새 물건을 사면 어떤 용도로든 잘 사용한다.
몇 달 전엔 허리 통증 완화에 철봉이 효과적이라기에 문틀 철봉을 사려고 알아보다가 ‘치닝디핑’을 구입했다. 물론 이것도 당근마켓으로. 이사로 인해 짐 정리를 하는 판매자가 이 운동기구를 헐값에 판매하길래 반려인을 데려가 덩치 큰 물건을 구입해 왔다. 운동 무지렁이인 나는 치닝디핑이라는 용어도 처음 알았다. 치닝디핑은 가정용 헬스 철봉으로 철봉 운동에 딥스 운동, 푸시업 운동까지 가능한 제품이다. 나는 이걸 사지 말았어야 했다.
고등학교 체력장을 떠올리며 철봉에 매달렸다. 매달리기 5초, 턱걸이 2회. ‘좋아, 처음 하는 것 치고는 괜찮군. 매일 조금씩 하면 운동이 좀 되겠어’ 하면서 내친김에 푸시업도 해보고 딥스도 해봤다. 딥스는 평행봉을 양손으로 잡고 자신의 체중을 버티며 하는 가슴 운동이다. 치닝디핑 기구 가운데쯤 양쪽에 손잡이가 있어 그걸 잡고 공중에 떠서 운동할 수 있다. 팔꿈치와 어깨에 상당한 부담을 주기 때문에 중급 이상의 숙련자들에게 추천되는 운동이라고 한다. 위험성을 제대로 알고 도전했어야 했는데, 그땐 몰랐다.
기구에 손잡이가 있길래 얼떨결에 몇 분 잡고 다리 들고 버텼을 뿐인데 그 후로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어깨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병원에서 ‘어깨충돌증후군’이라고 했다. 오른팔을 뒤로하거나 올릴 때마다 ‘악’ 소리가 절로 난다. 물리치료를 받아도 쉽게 낫지 않는다. 누굴 탓하리. 나를 고통받게 한 덩치 큰 이 운동기구는 또다시 누군가에게 넘겨버렸다. 이번에도 당근을 통해. 그동안 운동보다 운동기구 거래에 더 많은 시간을 쓴 것 같다.
몇 년간 크고 작은 운동 기구와 운동 소품들이 집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요가 매트와 요가 밴드, 폼폴러만큼은 굳건히 살아남았다. ⓒ은서란
국민체조진흥공단에서 만든 국민건강체조 영상 화면 캡처. ⓒYOUTUBE 백호돌이TV
결국 다시 원점이 되었다. 집 안에 운동 관련 용품이라고는 요가용품만 남았다. 생각해 보면 몇 년간 크고 작은 운동 기구와 운동 소품들이 집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요가 매트와 요가 밴드, 폼폴러만큼은 굳건히 살아남았다. 어깨가 아파 올여름 내내 쉬었지만, 여름 전까진 반려인과 매일 요가 동영상을 틀어놓고 꾸준히 요가를 했다. 구입 후 본전을 뽑은 유일한 운동 관련 용품이다.
9월이 되면서 다시금 운동 의지를 다졌다. 얼마 전부턴 요가 매트를 깔고 국민건강체조를 3세트씩 하고 있다. 라떼만 해도 학교 다닐 때 국민체조였는데, 20여 년 전 새천년건강체조라는 게 등장하더니 다시 10여 년 전에 국민건강체조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체조가 의외로 열량 소모량이 커서 1세트(6분)에 약 40kcal가 소모된다고 한다. 하루에 5세트 총 30분만 투자해도 200kcal가 소모되는 셈이다. 1시간 걷기와 비슷한 효과다.
국민체조는 동작이 딱딱해서 지루하고 재미없는데, 국민건강체조는 전통무예 같기도 하고 춤추는 것 같기도 하면서 재미있다. 특히 국악을 접목해 만든 배경음악이 더해져 하다 보면 흥이 난다. 지금은 어깨도 아프고 힘들어 3세트도 겨우 하고 있지만 하다 보면 더 늘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국민건강체조와 함께 반려인과 이른 아침 밖에 나가한 시간 동안 강변 걷기도 시작했다. 아침 운동 후 마시는 차 한 잔은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만든다.이 맛에 아마도 날씨가 궂은날을 제외하고는 겨울이 오기 전까지 종종아침 걷기를 계속할 것 같다. 더불어 요가원도 다시 등록했다. 통제해주는 수단이 없으면 자꾸 게을러지는 탓에 꾸준히 운동을 지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운동을 위해서 필요한 건 기구가 아니다. 의지다. 운동 의지가 약한 나 같은 사람은 일단 하려는 운동이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운동 메이트가 있어야 한다. 홈트를 위해 여러 기구를 경험해 본 후에야 나에게 맞는 운동은 기구 없이 하는 맨손 운동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결국 운동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고, 운동 역시 기본에 충실한 것이 최고다. 나는 언제쯤 이 진리를 경험하지 않고도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