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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란 Aug 31. 2023

꼬박꼬박 집세 내는 벵갈고무나무와 미니멀 식집사

미니멀 쇼피엔스 – 식물 화분편

나는 식집사다. ‘식집사’는 식물과 집사를 합친 말로, 애정을 쏟아 반려 식물을 기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내가 처음 애정을 준 화분은 15년 전쯤 꽃화분을 잔뜩 싣고 다니며 파는 화분 트럭에서 2,000원에 구입한 ‘스파티필름’이었다. 수많은 꽃화분 사이에서 위풍당당하게 초록을 뽐내던 작은 포트 속 스파티필름은 해마다 꽃을 피우며 무럭무럭 잘 자랐다. 작은 화분에서 시작한 스파트필름은 매년 봄마다 포기나누기를 해 15년 간 삼십 여개의 화분으로 늘어났고,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화분을 나눌 수 있었다. 잘 자라주는 게 고맙고 기특해 숱한 이사 과정에서도 이 화분만은 꼭 챙겨 다녔다.


스파티필름은 식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초보자도 키우기가 어렵지 않아 처음 입문용으로 추천하는 식물이다. 큰 병충해 없이 적당한 물과 햇빛, 바람만 잘 맞춰주면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생명력이 강하다. 15년 된 나의 스파티필름도 올봄에 분갈이하면서 실수로 모체의 뿌리를 부러뜨리는 바람에 슬프게도 잎들은 다 죽어버렸지만, 다행히 뿌리가 극적으로 소생해 현재 다시 작은 새잎들을 만들어내며 잘 자라고 있다.

15년 째 함께 살고 있는 스파티필름. 죽다 살아나 다시 새 잎을 만들어내고 있다. ⓒ은서란

4년 전 이사 온 지금 사는 집은 창가에 햇빛이 잘 들어 식물이 잘 자랐다. 잘 자라는 식물들을 보니 더 애정이 생기고 식물육아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전 집주인이 두고 간 몇 개의 화분에 더해 농장에서 새 화분들을 구입하며 나는 본격적으로 식물 집사의 길에 들어섰고, 자연스럽게 창가 주변엔 화분이 가득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애정을 쏟는 만큼 식물들은 쑥쑥 잘 자랐고, 계속해서 새로운 식물을 사들이고 또 기존 식물이 자라면서 가지치기와 포기나누기를 하다 보니 화분은 점점 증식했다. 가장 많았을 땐 백여 개 정도까지 늘어났다.


화분이 많아지니 화분을 놓아둘 선반도 필요했다. 처음엔 거실 수납장 위에 몇 개 올려두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화분이 늘어나니 창가에 둘 화분 받침대를 하나둘 사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1단짜리 원목 받침대를 사들이다가 선반이 6개가 되니 바닥 청소가 불편해져 2단 선반을 사고, 그걸로 부족해 4단 선반을 샀다. 그런데 식물은 계속 자랐고, 선반장은 층별로 높이가 정해져 있다 보니 키 큰 화분을 두기엔 부적합했다. 그곳엔 작은 식물만 두다가 결국 여러 층의 선반장은 처분해 버렸다.


식물은 햇빛과 물, 바람에 애정을 더해야 잘 자란다. 이 애정에는 식물의 특성을 고려한 물 주기와 매년 분갈이, 또 응애나 진딧물 같은 벌레라도 생기면 해충을 없애는 작업도 포함된다. 특히나 야자나무류는 응애와 깍지벌레가 잘 생겨 자주 벌레퇴치를 해줘야 한다. 집에 대형 대나무야자 화분이 있었는데, 매주 한 번씩 무거운 화분을 밀어 화장실에 끌고 가 친환경 해충제를 뿌리고 잎 하나하나 닦아주는 걸 반복했다. 성장 속도가 빨라 키는 2미터가 넘고 야자잎은 왜 그렇게 많은지 잎을 닦고 나면 한 시간은 후딱 지났다. 대나무야자는 2년을 키우다 결국 마당 있는 집으로 보내버렸다.


실내에서 식물을 잘 키우려면 정성도 중요하지만 파생되는 소비가 많다. 매년 분갈이를 위해 원예용 상토와 배수를 돕는 펄라이트, 마사토 등을 사는 것은 물론, 식물 뿌리 건강에 도움을 주고 삽목 용도로 사용하기에 좋은 산야초와 영양제도 따로 구입했다. 또, 커지는 식물 크기에 맞는 화분도 새로 구입해야 한다. 햇빛이 부족한 흐린 날에 대비해 식물 성장에 도움이 되는 파장의 식물등도 필요하다. 상시 분갈이가 가능하도록 물품을 구비해 놓다 보니 베란다에 이 물품들을 보관할 수납 선반도 마련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좀 귀찮긴 해도 처음 3년은 재미있고 즐거웠다. 돈이 아깝다거나 시간이 아깝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간 날 때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식물 농장에 가서 다양한 식물들을 보고 집에 새로 들여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기쁨도 컸다.


반려식물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처럼 매일 밥을 챙겨주지 않아도 되고, 대소변을 치워주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집안에 털이 돌아다니지 않아 청소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털이 날리기는커녕 오히려 공기를 청정하게 해 준다. 게다가 나에게 놀아달라고 떼쓰지 않는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시간을 좀 투자하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알레르기가 있는 나에겐 반려식물이 딱이다. 물론 동물만큼의 공감을 서로 나누진 못하지만, 식물도 애정을 쏟는 만큼 잘 자라준다. 잘 자라는 식물을 보면 그간의 노고를 모두 보상받는 것 같았다.


식집사의 길은 정성 없이는 힘들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씩 모든 화분을 끌고 화장실에 가 잎도 닦아주고 물도 화분 아래로 충분히 흐를 만큼 주면서 정성을 쏟았다. 그러다 점차 화분이 많아지면서 화분이 놓인 자리에서 화분 받침 밖으로 물이 넘치지 않을 정도로 목마름을 해결해 줄 만큼만 조금씩 물을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덕후라 불릴 만큼의 취미를 가지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나는 부지런하지 못한 귀차니스트이다.

반려인 어리의 이끼존. 테라리움 화분들을 놓아두었다. ⓒ은서란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키우는 나와 달리 함께 사는 반려인 어리는 이끼만 키운다. 이끼 덕후인 어리는 거실 한쪽에 마련된 ‘이끼 존’에 예전에 둘이 함께 테라리움 교육에 참여해 만든 유리 화분들을 놓아두고, 매일 아침 그 앞에서 다양한 종류의 이끼와 상록넉줄고사리에 물을 분무하며 돌보고 있다. 이끼화분의 갯수도 열 개를 넘기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어리가 현명한 것 같다. 테라리움은 처음 화분을 만들 때만 공을 들이고 그다음부터는 하루에 한 번 물만 분무해 주면 된다. 그 외 다른 노고는 들지 않으니 이 얼마나 경제적이고 효율적인가.


귀찮음이 커지면서 나도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내가 키우고 싶은 최소한의 식물만 남겨두고 화분을 다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식물 키우는 즐거움을 처음 알게 해 준 스파티필름 모체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시작을 함께 한 대형 갈고무나무, 몇 달간 응애와의 전쟁으로 모든 잎을 다 떨군 후 이제야 새잎을 내고 안정적으로 자라고 있는 알로카시아, 파키라, 몬스테라, 필로덴드론 버킨 등 내게 더 의미 있는 십여 개 화분만 남기고 모조리 분양했다. 이 외엔 이제 거의 없다. 베란다 한편에 마련된 식물 번식장에서 가지치기 후 뿌리를 내리는 중인 식물 정도뿐이다. 이 화분들도 어느 정도 성장해 독립이 가능해지면 다 분양할 생각이다. 화분과 더불어 화분을 위해 존재했던 화분 받침대와 선반들도 함께 정리해 이제 이끼존에 있는 어리의 테라리움 화분 선반장을 제외하고 2개의 화분 받침대만 남았다.


매년 충분한 집세를 내고 있는 스파티필름과 갈고무나무는 앞으로 어디로 이사를 가더라도 함께 할 생각이다. 특히나 가로세로 40cm의 바닥면적(0.16㎡=0.0484평)을 차지하는 갈고무나무는 집세를 꼬박꼬박 잘 내는 우리 집의 우량 세입자다. 매년 빠른 성장을 하기 때문에 성장과 수형을 위해 가지치기를 해주는데, 보통 4개의 가지를 자르고 이를 두 달 정도 뿌리내려 새 화분이 만들어진다. 갈고무나무 화분을 더 이상 주변에 나눌 곳도 없다 보니 한 개에 5,000원~1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중고마켓에 올리고 있는데, 매번 금방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일 년에 소소하게 대략 3만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한다(흙이나 화분 비용은 별도로 들지만). 나름 식테크다. 월세로 치면 2,500원이고, 한 평 기준으로 계산하면 52,000원 정도다. 집을 떠날 때나 한 번 집세를 지불하는(혹은 돈을 더 가져가는) 다른 물건과 달리 고마운 세입자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노동으로 집세를 대신하는 전자제품과 일부 물건을 제외하고는 이 집에 있는 그 어떤 물건도 우리에게 집세를 내지 않으니 다 얹혀사는 셈이다. 그래서 집에 두는 물건이 쓰임 없이 방치된다면 우리는 공간뿐 아니라 돈을 낭비하는 것과 같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사용하는 공간을 평당 집값으로 환산하면 쉬이 안 쓰는 물건을 집에 두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만약 월세가 100만 원인 10평짜리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이 1평을 차지한다면, 집주인은 그 물건 보관 비용으로 매월 10만 원을 버리는 셈이니까.

100여개의 화분이 살던 거실에는 이제 조촐하게 몇 개의 화분만 남았다. ⓒ은서란

화분과 파생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역시 뭐든 적당한 게 좋다. 정리하고 나니 거실 공간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공간에도 다시 여유가 생겼다. 남은 식물들에 더 집중해 애정을 쏟을 수 있게 되었고, 남은 시간에 다른 걸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마음도 한순간이다. 내 경우엔 그 과정이 있어야만 나에게 맞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해 보일 수 있는 그 경험도 필요한 과정이긴 하다. 그 과정 뒤에야 남길 것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번 시행착오 끝에 나에게 맞는 걸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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