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면을 취하는 건 삶의 질을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숙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트리스를 구매하는 일은 까다롭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나에게 맞는 매트리스를 찾는 일은 물건 고르는 일 중에서도 어려운 편에 속한다. 반면, 소비자가 매트리스를 구매할 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온라인 상품 판매 페이지의 제품 정보가 상세하지 않거나, 매트리스에 어떤 내장재를 사용했는지 매트리스 커버를 뜯어보기 전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후기나 추천을 통해 매트리스를 알아보는 것도 믿을 수 없다. 이미 홍보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이기 때문에 진짜를 가려내긴 정말 어렵다. 포털 사이트와 유튜브에서 매트리스 전문가로 활동하는 분의 글과 영상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몇몇 브랜드 제품을 계속해서 추천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한 회사의 제품이고(브랜드명은 다르지만) 나머지는 그 업체 관계자임을 안 들키려고 끼워넣기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매트리스만 한 달 넘게 검색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의심을 하게 된다.
지난해 매트리스 구입을 위해 수많은 매트리스를 알아봤다. 매트리스를 최종 구매하기에 앞서 온라인 쇼핑몰 상품 설명만 보고 60만 원 넘게 주고 구입했다가 지독한 화학제품 냄새(폼과 접착제 냄새) 때문에 반품하기도 하고, 한 번은 제품 설명과 다른 제품이 와서 반품했다. 반품 후 매트리스에 대한 조사를 많이 하면서 내린 결론은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고르자였다. 여러 매트리스를 비교하다 보니 자연스레 매트리스 시장의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트리스 구입을 앞두고 있다면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내용을 공유한다. 어디까지나 전문가가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 기록하는 것임을 미리 밝힌다.
1. 매트리스엔 표준화된 기준이 없다?
- 같은 매트리스, 너는 단단 나는 푹신
: 매트리스 구입을 고민한다면 가급적 2곳 이상의 매장에 방문해 누워보고 사는 것을 추천한다. 브랜드별로 개인별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인터넷 설명이나 리뷰만 보고 샀다가 나와 맞지 않아 후회할 수 있다. 푹신함이라는 건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단단한 매트리스가 나에게는 푹신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트리스 푹신함을 결정하는 요인은 재료에 따라 구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메모리폼, 라텍스, 스프링+폼 종류와 밀도에 따라 강도가 다르고, 같은 독립 스프링을 쓰더라도 테두리(링구, 엣지서포트 등)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강도가 다르다. 또 레이어를 어떤 순서로 쌓느냐에 따라서도 푹신함이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데 이 다양함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비슷하게 푹신한 A와 B 매트리스를 A브랜드에서는 푹신함 정도를 소프트미디엄이라 설명하고, B브랜드에서는 미디엄하드라 설명한다. 롤팩 매트리스 C제품은 푹신한 정도를 단단한 편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누워본 느낌으로는 중간 정도의 푹신함으로 느껴졌다. 링구가 없는 롤팩 매트리스 기준으로는 단단한 편이지만, 링구가 있는 독립스프링이나 본넬스프링 매트리스와 비교하면 많이 푹신한 편이다.
모든 매트리스의 강도를 표준화된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면 오프라인 매장에 들러 누워보지 않아도 기존에 가지고 있는 매트리스와 비교해 좀 더 수월하게 선택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찾아보니 매트리스 강도를 쉽게 알 수 있도록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기준을 나눈 '컴포트 레벨(comfort level)이' 이미 있다. 하지만 국내 매트리스 업체 대부분은 이를 활용하지 않는다. 정확한 수치로 구분하려면 강도를 측정하는 충분한 실험을 해야 하는데, 산업계가 여기에 투자를 하지 않아서일까.
- 정체를 알 수 없는 폴리우레탄 폼(스펀지) 종류
: 우리가 흔히 아는 스펀지부터 고탄성의 메모리폼 사이에는 정말 다양한 스펀지 폼이 존재한다. 업체마다 매트리스에 사용한다고 말하는 우레탄폼이 수십 가지다. 메모리폼, 프로파일폼, 컴포트폼, 바이오폼, 펜타폼, 블록폼, 하이폼, HR폼, 소프트폼, 케미컬라텍스.... 등등.
일단 기본적으로 스펀지(sponge)와 폼(foam)의 경계부터가 모호한 채로 용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폼(스펀지)은 성분의 배합비율 혹은 발포비율에 따라 탄성과 경도가 달라지고, 또 그 차이에 따라 명칭도 달라진다. 이 중에는 같은 제품을 두고 업체별로 다르게 이름 붙여 사용하기도 한다.
이 중 라텍스라는 명칭은 소비자를 매우 혼란에 빠지게 한다. 라텍스 앞에 '케미컬'이나 '인조' 문구를 붙인 건 그나마 솔직한 편. 일부 업체는 그냥 라텍스라고만 표기하기도 한다. 진짜 라텍스도 아닌 것을 라텍스라 칭하는 건 사기 아닌가. 가죽이나 라텍스나 '천연'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지 않거나 가격이 저렴한 폼은 100% 인조라고 보면 된다. 왜 명칭에서부터 표준화된 기준이 없는 걸까.
- 두께 단위, 그냥 'mm' 쓰면 안 되는 거야?
: mm, cm 같은 길이 단위처럼 표준화된 단위 기준은 아닌 것 같지만 통상 두께를 말할 때 알파벳 'T'(thickness)를 사용한다. 1T=1mm로 사용하는데, 일부 업체에서는 정확하지 않은 사용(1t=1cm로 사용)으로 혼란을 주기도 한다. 그럴 거면 정확하게 mm로 통일해 사용하면 좋겠다. 어떤 폼을 1T 두께로 사용했을 때 폼이 1cm짜리가 들어갔는지, 1mm짜리가 들어갔는지 헷갈린다. 어떤 업체는 한 상품 설명페이지 내에서도 1T가 cm였다가 mm였다가 엉망진창이다.
2. 내장재 단면 사진은 비공개(?)
- 수많은 매트리스 판매 페이지를 훑어보면서 의아했던 건 매트리스 내장재의 실제 사진이 올라간 제품을 찾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매트리스 커버를 박음질하기 전 상태의 단면을 사진 찍고 어떤 레이어가 얼마만큼의 두께로 들어갔는지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대부분 제품 페이지엔 사용한 내장재를 텍스트로 나열해 놓거나, 내장재를 그림으로 넣어놓고 "위 이미지는 참고 이미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와 같은 문구를 작게 표기해두고 있다.
각 브랜드 이름을 걸고 파는 매트리스인데 자신 있다면 공개하는 것이 맞다. 매트리스는 어차피 어떤 재료(내장재)를 사용해 만들었는지를 홍보해 판매하는 제품이다. 그러면서 자세히는 알려줄 수는 없다는 건가?
인터넷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는 상품 판매페이지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확한 정보와 사진 제공은 판매업체의 당연한 의무고, 소비자는 이를 알 권리가 있다. 온라인 판매처에서는 정확한 정보와 사진을, 오프라인 판매처에서는 단면 샘플을 보여주면서 판매한다면 소비자의 신뢰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3. 제품 안내를 할 수 없는 안내 직원
- 매트리스를 구입하기 위해 괜찮다 싶은 제품을 추려 온라인 4곳, 오프라인 2곳 업체에 내장재에 대해 문의했다. 모두 같은 걸 물어본 건 아니지만 판매상품마다 궁금한 점(독립 스프링의 두께, 높이, 함께 사용된 폼의 강도가 어떻게 다른지, 내장재 단면 사진을 볼 수 있는지, 혹시 폼이나 접착제 냄새 때문에 반품한 사례는 없었는지 등)에 대해 물었다.
6곳 업체 대부분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글쎄요. 그렇게 자세한 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냄새로 인한 반품은 없었어요"와 같은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여러 브랜드의 매트리스를 함께 팔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 한 곳 직원만 친절하게 더 알아봐 주려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다.
심지어 전화로 문의했던 한 업체 고객센터 직원은 매우 불친절한 말투로 "그런 걸 왜 물으시죠? 이제까지 그런 걸 물어본 분은 없었는데.... 그런 건 알려드릴 수 없어요"라고 말하고 끊어버렸다.
오프라인 다른 매장 안내 직원도 그랬다.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어 혹시 이 제품 내부 사진이나 단면을 볼 수 있을까요, 물으니 한숨을 쉬며 귀찮다는 듯이 "그걸 꼭 아셔야겠어요?"라고 되물었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차라리 그냥 모르겠다 말하던가.
이 두 곳의 상담직원은 본인이 모르는 것을 떠나 안내 직원의 기본 자질이 의심스러웠다. 고객 상담직원은 누군가에겐 해당 브랜드의 얼굴이 될 수도 있다. 상담직원이라면 제품을 만드는 연구원이나 기술자만큼의 전문성은 당연히 갖추지 못하겠지만, 소비자가 궁금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는 숙지해야 한다. 혹시, 모르는 부분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면 그게 업무상 기밀이 아니라면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대답해 줄 수 있을 만큼은 돼야 한다. 이건 직원 개인의 역량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관리자의 마인드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업체 책임자라면, 고객응대부서 직원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할 텐데... 직원이라면 어떤 업무를 하든 자사의 판매상품에 대한 이해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난 나를 황당하게 했던 오프라인 매장의 매트리스를 구매했다. 전시장을 나오는 길에 우연히 회사 대표를 만나 맞은편에 위치한 공장에 가서 내가 궁금해한 제품 내장재를 직접 보고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내가 찜한 제품이 어느 정도 내 기준을 충족시켜 주면서 가성비가 훌륭한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대표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제품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담 직원은 회사 대표와 공장에서 나오는 나를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내가 접한 상담직원들은 나를 쓸데없는 걸 물어보는 진상 고객 정도로 여겼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난 정말 모르겠다. 내가 하루에 6시간 이상 누워 자는 매트리스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는지 왜 궁금해하면 안 되는 걸까.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소비자에게 각인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침대 매트리스가 긴 시간 우리 몸에 직접 닿아 있고 가구가 아닌 침구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 매트리스 구매 Tip>
대부분 매트리스는 단일 소재보단 여러 겹의 레이어로 만들어진다. 흔히 사용하는 매트리스도 스프링 위에 여러 폼이 올라간 형태다. 폴리우레탄 계열 폼은 아무리 친환경이라 홍보해도 결국 화학제품이다. 최적의 매트리스를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강도의 폼을 사용했다고 홍보하는 제품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여러 겹의 레이어가 쌓인 만큼 화학접착제도 더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덜 유해한 친환경 접착제를 사용하는 업체도 있고,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매트리스를 생산하는 업체도 있으니 여러 가지 고려해서 선택하는 게 좋을 듯하다.
내 몸에 맞는 매트리스가 어떤 건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는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구입하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약간 탄탄한 정도의 매트리스를 구매한 후 내 몸에 맞는 토퍼를 추가로 구입해 푹신함의 정도를 조정해서 쓰는 게 좋은 것 같다. 푹신한 것보단 단단한 매트리스가 토퍼로 푹신함 정도를 조절하는 게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토퍼는 솜으로 된 것부터 메모리폼, 라텍스 등 다양한 소재로 많이 나오니까 필요한 강도에 따라 적당한 소재의 토퍼를 선택하면 될 듯. 매트리스는 반품도 어려운데 처음부터 너무 푹신한 거 구매했다가 내 몸에 맞지 않으면 난감할 수 있다.
내 경우 좀 단단한 느낌의 매트리스를 선호하는데, 구입한 제품이 나에겐 좀 푹신한 편이라 매트리스 위에 약간 단단한 느낌의 솜 토퍼를 깔아 사용하고 있다. 대신 침대가 5cm나 높아져서 좀 어색하다. 매트리스 위에 토퍼를 올려 쓴다면 토퍼 높이도 계산해 매트리스 높이를 계산하는 게 좋다. 그리고 어디서 보니 새 매트리스에 적응하려면 약 2주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이 점도 참고하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