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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란 Aug 17. 2023

침대를 다시 비우기로 했다

미니멀 쇼피엔스 - 침대편

큰 집으로 이사와 침대를 들여놓은 지 1년. 이 침대를 다시 내보내려 한다. 침대를 사기로 결정하기까지 스스로를 설득하느라 수개월, 또다시 수개월 동안 집요한 쇼핑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최선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침대를 없애고 싶은 생각이 자꾸 올라온다. 침실을 차지하고 있는 저 침대 2개가 사라지면 너무 개운할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20년 이상 침대를 사용하다가 시골로 이사 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겠다고 본격적으로 바닥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5년여간 침대 없이 두꺼운 솜 요를 깔고 생활했다. 다시 침대가 생긴 건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다.


두꺼운 솜 요에 몸도 적응하고 익숙해졌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 이불을 털고 개서 이불 보관대에 정리하는 행위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침대가 있으면 이불을 털어 침대 위에 다시 잘 정돈해 두면 되니 간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바닥에서 바로 일어나면 어지럼증이 있는 반면, 침대에서 일어나면 움직임이 아무래도 적어지니 어지럼증도 줄고 무릎에도 무리가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침대를 집에 들여놓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반려인 친구와 침실을 함께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집엔 싱글 사이즈 침대 2개가 필요했다. 호텔 트윈베드룸처럼 침실에 침대와 침대 사이 협탁 하나 두고 깔끔하게 사용하고 싶었지만, 전형적인 부부 중심의 침실로 설계된 안방은 퀸사이즈 침대 하나 두기에 딱 맞는 공간이다.


싱글침대 2개를 둘 공간 여유가 나오지 않아 고민을 거듭하다가 방 사이즈에 맞는 퀸사이즈 소나무 원목의 평상 침대 하나를 들였다. 바닥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매트리스보단 기존의 요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평상 침대 위에 매트리스 없이 요만 깔고 사용하려고 기본 다리 사이즈보다 10cm 높게 주문 제작했다. 헤드가 없고 평상 두 개로 분리되는 형태의 소나무 평상 침대는 디자인은 좀 투박해도 2톤의 하중을 견딜 만큼 매우 튼튼하고, 삐걱 소리도 나지 않고, 무절 원목(옹이가 없는 부분으로만 제작된 원목)으로 만들어져 깔끔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주문 제작한 원목 그대로의 평상 침대에 오일 마감을 안 하면 원목 가루가 묻어난다는 후기를 보고 레몬 오일로 마감을 요청했더니 제작 후 충분히 건조되지 못하고 배달이 와서인지 이불에 오일이 계속 묻어 나와 평상과 요 사이에 신문지와 광목천을 깔고 사용해야 했다.


게다가 침대 하나를 둘이 같이 쓰는 건 생각보다 불편했다. 하나의 침대를 두 개처럼 쓰고 싶었지만 퀸 침대 절반 사이즈의 요를 구하지 못해 요 하나를 깔고 둘이 같이 사용했다. 이불은 따로 사용했지만, 한 침대에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수면의 질이 낮아졌다. 결국 주문 제작한 평상은 한 달도 안 되어 당근마켓에 헐값에 팔아치웠다.


다시 바닥 생활이 시작됐다. 1년쯤 지나자 또다시 이불 펴고 개는 일이 귀찮아졌다. 침구 정리는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두 사람 몫을 다 하기로 했는데, 대개 친구보다 내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침구 정리는 내 몫이다. 침대가 맞지 않았던 기억을 그새 잊고 나는 다시 침대 구입을 고민했다. 바닥 생활보다 침대 생활이 더 편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1년 전 침대를 치운 건 침대 하나를 같이 사용해야 해서 불편했기 때문이라며 싱글침대 2개를 들이면 괜찮지 않을까 나름의 핑계를 댔다. 침대 놓을 방향을 기존 남북 방향에서 동서 방향으로 바꾸니 베란다 문 하나를 막고 조금 좁긴 해도 방문에서 화장실까지 이동할 만큼의 공간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구입하기로 했다.


몇 달간 조건에 맞는 침대를 검색하고 조사해 새 침대를 구입했다. 오랜 시간 알아본 후 구입한 침대 프레임은 ▲프레임 전체가 튼튼한 원목일 것(+친환경 마감) ▲평상형 깔판일 것(소음 방지) ▲프레임 하단이 뚫려있을 것 등 내가 정한 세 가지 모든 조건을 다 충족하면서 디자인도 깔끔하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수납이 중요하다면 프레임 하단에 서랍장이 있는 것이 좋겠지만, 나는 매트리스와 방바닥의 통풍과 청소가 가능한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하단이 뚫려있는 제품을 원했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앞서 처분한 평상 침대는 2개로 나눠지기 때문에 이동 시 하나씩 세워서 방문을 통과할 수 있었는데, 새로 구입한 침대는 이동하려면 침대 헤드부터 분해해야만 방문을 통과할 수 있다. 또, 우리 집 침실은 방이 좁아 싱글침대 2개를 붙여 사용해야 하는데, 구입한 침대는 헤드가 옆으로 튀어나와 있어 침대 2개를 붙이면 가운데 틈이 15cm 정도 벌어진다. 그 어정쩡하게 벌어진 틈으로 핸드폰이나 얇은 이불이 떨어져 불편할 때가 있다. 싱글침대 2개를 붙여 사용하는 걸 고려해서 매트리스 매립 형태인 프레임보단 완전 평상 형태를 구입했어야 했다.


침대 프레임은 두 번의 결제, 매트리스는 세 번의 결제 끝에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제품을 구할 수 있었다. 매트리스는 프레임보다 고르기가 더 어려웠다. 한 번은 지독한 화학약품 냄새로 반품하고, 한 번은 제품 설명과 다른 제품이 와서 반품했다.

침대를 다시 비우기로 했다. ⓒ은서란

매일 이부자리를 털고 개서 정리해 놓는 일이 귀찮아 침대를 샀는데, 침대를 사용해도 이부자리 정리는 필요하다. 매일 이불을 털어 정리해 두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침구청소기로 매트리스 위도 청소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싱글 침대를 2개 붙여 사용하다 보니 안쪽 침대 아래는 손이 닿질 않아 직접 청소가 어려웠다. 그래서 로봇청소기를 샀다.


결국, 힘들게 고르고 골라 산 침대는 또 다른 파생 소비를 불렀다. 침대 아래를 청소하기 위해 로봇청소기를 샀고, 좁아진 방에서 이불을 털기 어려워지면서 이불 털기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 (오로지 이불 털기 기능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빨래 건조기도 샀다. 그리고 방은 항상 자리를 차지하는 침대로 인해 좁아졌다.


겨울이 되면 반려인과 나는 따뜻한 바닥에서 자는 걸 좋아하는데, 침대에서 등 따숩게 자려면 전기요가 꼭 필요하다. 겨울이면 보일러는 보일러대로 틀고 2개의 전기요도 추가로 틀어놓고 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침대는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더불어 로봇청소기도.


이부자리를 털고 개서 정리해 놓는 일, 고작 5분만 투자하면 될 일을 귀찮다는 핑계로 침대를 들이고, 침대로 인해 로봇청소기와 빨래건조기까지 들인 것이다. 도대체 그 5분 아껴서 뭐 하려고?? 과연 침대가 정말로 필요했던 걸까?


올여름이 지나면 우리는 침대를 처분하고 바닥 생활로 돌아갈 예정이다. 뭐든 경험해 보면서 나에게 맞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나는 이렇게 또 비싼 수험료를 치른 후에야 또 하나 깨달았다. 침대는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혹시 침대 구입을 앞두고 있다면, 다음 글 <매트리스 고르는 Tip>을 참고해 주세요. 침대를 구입하면서 수집한 정보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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