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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란 Sep 21. 2023

곱슬머리 그대로 살기로 했다

미니멀 쇼피엔스 – 내 몸편

“머리 파마했네? 어쩐 일로?”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달라진 내 머리 스타일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어쩐 일로 파마를 안 한 거예요.”


파마를 하지 않았더니 컬이 잔뜩 들어간 파마머리가 되었다. 지난해 9월 마지막으로 매직 파마를 한 이후로 꼭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머리카락에 어떤 시술도 하지 않았고, 2주 전 단발로 자르면서 시술이 남아있던 부분도 다 사라졌다. 머리카락이 드디어 자연 상태가 된 것이다.



다시, 완벽한 곱슬머리가 되었다


혹시 ‘빅찹(Big chop)’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빅찹이란 파마나 염색 등 화학적으로 처리된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내 자연스러운 모발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나도 이 빅찹에 동참했다. '탈매직' 후 곱슬머리 그대로 살기로 한 것이다. 곱슬머리를 받아들이기로 한 데에는 미용실 원장님의 말 한마디가 힘이 됐다. 마흔이 넘으면서 내 몸을 좀 더 잘 돌보며 늙어가야겠다고 생각해 생활 습관을 많이 바꿨지만, 매직 파마만큼은 그만하고 싶으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숙제로 계속 남았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카락도 늙어가니 모발에 힘도 없어지고 자꾸 빠졌다. 워낙 가늘고 부스스한, 가만히 두어도 늙어가는 머리카락에 영양은 고사하고 손상만 주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삼십 년이라는 기간 동안 화학약품과 열처리로 인해 지쳐버린 머리카락이 불쌍했지만, 매직을 안 해야지 결심하고도 결국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을 견디지 못해 다시 미용실에 가는 상황이 몇 년간 반복됐다.


그러다 작년 새로 옮긴 미용실에 매직 파마를 하러 갔을 때 원장님은 파마를 하지 말고 곱슬머리를 잘 스타일링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부러 히피펌도 하는데, 곱슬머리를 스타일링만 잘하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면서. 삼십 년간 미용실에서 매직 파마를 하면서 곱슬머리 그대로 살아보는 건 어떠냐고 이야기한 사람은 그분이 처음이었다. 그때까지 꼬불꼬불한 머리 상태로 평생을 사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날 내 인생 마지막으로 매직 파마를 했다.


태어날 때부터 심한 곱슬은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윤기가 흐르는 말 잘 듣는 반곱슬 머리였다가 사춘기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제멋대로 말 안 듣는 곱슬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부스스한지 머리 감고 드라이를 하고 나면 삼각김밥이 되었다. 아침에 머리를 잘 정돈하고 나가도 땀을 흘리거나 비라도 오는 날이면 머리에 불어 터진 라면가닥이 힘없이 늘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한참 예민한 시기에 곱슬머리는 날 주눅 들게 만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작년까지 삼십 년 동안 곱슬머리를 펴기 위해 두세 달에 한 번씩 파마를 했다. 중고등학생 땐 2개월에 한 번씩 판 스트레이트 파마를 했고, 스무 살 무렵 매직 파마가 등장하면서 3개월에 한 번씩 매직 파마를 했다. 30년 간 머리를 펴느라 쏟아부은 돈만 해도 어림잡아 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외모를 가꾸고 패션에 관심 많은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으나, 꾸미기에 관심 없는 사람인 내가 그동안 미용실에서 천만 원 넘게 소비했다니, 오늘에서야 계산해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곱슬머리 그대로 살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던 곱슬머리가 갑자기 좋아지진 않았다. 곱슬머리가 만져지는 게 여전히 불편했고, 때론 짜증도 났다. 되도록이면 곱슬머리를 티 내지 않으려 마지막 매직 파마 이후엔 계속 머리를 묶고 있었고, 외출할 때면 심하게 곱슬거리는 앞쪽 잔머리는 매직기로 펴고 다녔다. 그러다 올여름이 고비였다. 책을 출간하면서 인터뷰 촬영을 하게 될 일이 여러 번 생기자 질끈 묶은 스타일이 촌스러워 매직 파마를 다시 해야 하나 고민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촬영 있는 날마다 미용실에 가서 드라이를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렇게 버티면서 파마기가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자르고도 자연 상태의 머리만으로 묶을 수 있을 정도의 머리 길이가 되었고, 드디어 단발로 잘라 매직 파마의 흔적을 다 걷어내 버렸다. 미용실 원장님은 묶지 않고도 짧은 곱슬머리를 자연스럽게 스타일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처음엔 과연 가능할까 미심쩍었다. 곱슬머리는 붕 뜨는 성질이 있어서 짧은 머리를 풀고 다니는 건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묶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미용실 원장님이 젖은 머리를 말려주기만 했을 뿐인데, 거울 속에는 그동안 보기 싫고 지저분해 보였던 곱슬머리는 사라지고 개성 있고 자연스러운 곱슬머리를 한 사람이 비쳤다. 비로소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난 이후 처음 몇 달간은 푸석푸석한 머리에 조금이나마 영양을 주려고 머리를 감을 때마다 헤어트리트먼트를 해주었다. 그러다 지금은 트리트먼트를 하는 대신 비누로 머리감은 후 약간의 아르간 오일을 바르는 것으로 정착했다. (사람마다 머리카락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헤어제품을 써보고 나에게 맞은 제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귀찮은 거 싫어하는 내가 투자하는 최선의 관리다. 그래서 화장실에 비치 용품이 하나 더 늘었다. 기존에는 전신용 도브 비누와 선크림 바른 후 세안 용도의 폼클렌저 두 개뿐이었는데, 아르간 오일까지 세 개가 되었다. 


현재 센서티브 도브 뷰티바 하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내 몸에 맞는 비누와 샴푸, 바디워시를 찾느라 수많은 제품들을 써왔다. 아토피가 있어 비누를 직접 만들어 써 보기도 하고 유아용 올인원 제품을 쓰기도 하고, 여러 기능성 제품들을 써봤는데 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성분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기왕이면 플라스틱 쓰레기도 많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속가능한 제품을 찾는 게 어려웠다.


특히 샴푸가 그랬다. 성분이 조금만 자극적이어도 피부 발진이 일어나 순한 샴푸바로 눈을 돌려 몇몇 제품을 써봤지만, 비누 형태 제품 대부분이 머리카락이 뻣뻣해지거나 세정력이 좋지 않았다. 아예 노푸(샴푸를 사용하지 않고 물로 감는 것)를 해보기도 했으나 그것도 3주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러다 도브 뷰티바가 올인원으로 사용하기 좋다기에 써 보니 머리카락이 뻣뻣해지지 않고 피부에도 자극이 없어 6개월째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비누 하나로 온몸이 다 해결되니 경제적이고, 여행할 때 짐도 줄어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아 만족스럽다.


나는 왜 곱슬머리를 못 견뎌했을까? 


단정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머리카락은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를 줬다. 매직 파마를 하고 나서 새로 자라나는 머리카락이나 파마가 풀린 머리카락을 만질 때면 그게 너무 거슬려 유독 곱슬이 심한 머리카락을 골라내 잡아 뽑곤 했다. 지저분해 보이는 게 싫었다. 나 스스로 곱슬머리인 사람은 자신을 관리하지 못한 사람, 정돈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편견에 갇혀 살았던 것 같다. 곱슬머리인 사람은 예민하고 고집 센 사람이라는 편견에 나도 그렇게 보일까 봐 겁이 났던 것도 같다. 그래서 삼십여 년 간이나 타고난 머리카락의 성질을 부정하면서 곧게 펴려고 애를 써왔다. 대부분 한 달도 가지 못했지만. 늦게라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아껴주고 싶어져 다행이다. 이제는 더 이상 곱슬머리를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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