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의 워홀, 첫 단추를 꿰다
2023년 6월 6일 화요일, 사이렌을 뒤로하고 출국장에 올랐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한국에서 이뤄놓은 것들을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나름 담담하고 자신감 있게 보이며 출국했지만 모든 걸 놓고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썩 행복하진 않았다. 슬픔과 설렘이 교차하는 감정이었다.
실패를 원해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워홀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실패이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큰 실패를 맛봤던 적이 없었다. 무난하게 대학, 군대, 직업교육, 대기업 루트를 지나왔다 보니 큰 실패랄 게 없었다. 그리고 실패할만한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35살 이전에는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상황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삶에 대해서 좀 더 간절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여러 생각 끝에 마음을 결정한 후, 2023년 첫 로테이션 선발 전에 지원서를 넣었고, 운이 좋게도 3일 만에 인비테이션을 받게 되었다. 첫 로테이션에 바로 선발이라니? 캐나다 워홀을 가서 달든 쓰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오라고 하늘도 등을 밀어주는 것 같았다.
영어는 배우고 가야지
화상영어를 반년정도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워홀을 떠나기 전에 영어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퇴사 후, 고향에 돌아와 영어학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부산의 여러 학원을 알아보던 중 서면 P 학원의 상담 선생님이 조언을 해주셨다. 2개월 뒤 워홀을 떠난다면 부산에 있는 외국인들이랑 친해져서 영어 연습을 하라고 말이다. 현재 있는 회화학원의 대부분이 기초적인 문법부터 패턴 등을 가르치는 클래스 형식이지, 대화를 경험할 수 있는 학원은 거의 없다면서 말이다. 인스타, 페북 등 여러 방면의 방법을 알려주었고 학원을 굳이 다니려면 외국인 친구들 만날 수 있는 곳을 가라고 하셨다. (그때, 자신의 학원에 이득도 없는데 그런 조언을 해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과자랑 음료수 사서 드리고 나왔다.) 그런 후, 외국인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컬컴 스터디에 등록하게 되었다.
스터디라 다른 학원에 비해 체계는 없지만 외국인들의 비율도 많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분위기였다. 또한, 자체 행사나 동아리 등이 많아 취미였던 댄스 동아리도 들었고, 버스킹도 하며 회사 다닐 때보다 좀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워홀을 준비했다. 확실히 짧은 기간 동안 기초 영어를 끌어올리는 것보다 대화를 많이 해보는 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착실히 워홀이 준비되어 갔다.
이젠 진짜 출국이다!
2개월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고 출국날짜가 다가왔다. 한국에서 인연을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며 좋은 말들과 격려를 해주어서 지나친 사랑을 받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놔두고 워홀 가는 게 맞을까?' 라며 흔들렸지만 마음먹었던 일을 잠깐의 감정에 휩쓸리는 것 만큼 바보 같은 짓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마음을 잡았다.
6월 6일 가족들과 김해공항에 도착했고 오랜 기간을 떠나는 거다 보니 마음이 먹먹했다. 조카도 배웅해 주러 왔는데, 조카가 캐리어 타고 신나게 노는 모습 때문에 감정이 좀 가라앉아서 다행이었다. 가족들과 인사하며 출국장을 나섰고, 비행기를 타니 더 실감이 났다. 설렘일까, 걱정일까, 슬픔일까. 모르겠고, 이미 난 편도 비행기에 앉았으니 돌아갈 곳도 없다. 이제 가보자! 캐나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