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망 Apr 24. 2024

굴복과 수긍 그 사이에서

1리터의 눈물

눈물 줄줄 나는 슬픈 이야기는 한참동안 마음을 힘들게 하기에 되도록 자제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찾게 되는 날이 있다. 마음이 서글퍼서 무슨 구실을 갖다 붙여서라도 펑펑 울고 싶은 날이다. 그 때 고른 드라마가 이것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위험한 기운이 감도는 <1리터의 눈물>이다. 실제 주인공이 말하는 의도와는 다르지만 반드시 울리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제목이다. 이미 주변에서 이 드라마를 접하고선 눈물, 콧물 다 흘렸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은지라 단단히 휴지를 챙겨들었다.



실제 당사자인 '키토 아야'가 쓴 투병일기가 책으로 출간되고 이를 바탕으로 2005년에 11부작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영화도 있지만 서사가 부족한 영화보다는 드라마가, 연출이 가미된 드라마보다는 감정묘사가 섬세한 책이 더 울림과 여운이 크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선택한..ㅎ)




'이케우치 아야'는 4남매의 장녀로 15살까지 건강하게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입학고시에 늦어 패널티를 받고도 준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학교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농구부 활동도 열심인 사춘기 소녀인데 언제부터인가 자주 넘어지면서 거리감각, 운동신경이 조금씩 사라진다.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고 자꾸만 쓰러지는 아야를 주변에선 조금씩 기피하지만 씩씩하게 웃으면서 생활해간다. 친구들이 수업에 늦어가면서도 아야를 챙기고 도와주지만 금새 학부모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아야를 챙기던 친구가 다쳐 농구시합에 출전을 못하기도 하고 아야가 없는 자리에서 나온 불평과 하소연을 우연히 아야가 듣게 된 후, 주위 사람들을 배려해 요양학교로 전학을 가기로 한다.


“모두와 살아갈 곳이 다르겠지만 지금부터는 스스로 선택한 길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빛을 찾고 싶으니까..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에겐 적어도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더이상 저는 이 학교를 떠나도 무언가가 끝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모두 지금까지 친절하게 대해 줘서 정말 고마워.”


불치병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반인과 다름 없이 지내려 노력했던 아야는 전학을 가기 전 친구들 앞에서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하기까지는 적어도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다'는 말을 남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미래가 친구들이 꿈꾸는 미래와 다르다는 것을 수긍하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열심히 재활을 하며 병을 늦춰보려 애쓰지만 요양학교에서 같은 병인 중증의 친구와 기숙생활을 하며 앞으로 진행될 자신의 병세를 알게 된다. '이젠 꿈 속에서도 두 발로 걷거나 뛰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말에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꿈 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니까 그동안 자신이 다시 나을 거라거나, 혹은 현재의 상황이라도 유지할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것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였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요양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대학 진학과 취업을 하지만 혼자 갈 곳을 잃어버린 듯 상실감을 느끼는 아야.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고 걸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말하는 것, 음식을 먹는 것마저 힘들어지면서 주변의 도움 없이는 일상이 어려워지게 된다.



현실이 너무 잔혹하고 힘들어서 꿈마저 빼앗아버린다.
장래를 상상하면 또 다른 눈물이 흘러내린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지만 글로 쓰면 마음만이라도 개운해진다.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전해지지 않고 닿지도 않는다.
단지 어둠을 향해 악쓰고 있는 나의 목소리가 울릴 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는데 도리어 도움을 받아야하는 현실에 낙담하지만 잘 움직일 수 없는 손으로도 꾸준히 일기를 쓰고 생각을 남긴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던 아야의 일기는 우연한 기회에 환우들을 위한 회보에 꾸준히 소개되면서 같은 증세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곁에서 지켜보던 의사선생님과 친구, 가족들이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하던 아야가 포기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살아내어 이룬 결과였다. 아야는 더이상 일기를 쓰지 못하게 된 이후로도 5년여를 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생을 마감한다.





드라마 속 아야의 가족들은 밝고 따뜻하고 서로를 배려한다. 어머니는 아야를 돌보기 위해 20여년간 놓지 않았던 보건사 일을 그만두려 하고, 아버지는 가계를 위해 두부가게 외에도 할 일을 찾는다. 여동생은 우등생 언니에게 가리워서 힘들었지만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언니를 돌보겠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아야를 부끄러워하는 동생을 혼내기도 한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대목이다. 실제 아야의 가족도 다복한 집안이였는데 어머니가 남긴 책의 서문을 보면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깊이 느껴진다.



드라마에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 한 명 나오는데 옆에서 한결같이 도움을 주는 남자친구 '아소'다. 아야에게 남자친구를 만들어주고 싶다던 실제 아야 어머니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라 한다. 형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무기력하고 반항적으로 살다가 희망을 잃지 않는 아야의 모습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꿈을 가지고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캐릭터다. 아야가 어떠한 삶을 살았으면 좋을지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병은 천천히 진행되지만 이 드라마는 늘어지는 부분이 없다. 아야가 병을 알아차릴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를 빠짐 없이 보여주지만 그 속도감이 엄청나다. 몇 분마다 상태가 나빠져가기에 시간을 멈추고 싶을 만큼 몰입이 되고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불치병이 찾아와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일들을 못 하게 된다면, 또 자신의 수명이 점차 사그라들어 더이상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면, 그 현실을 감당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아야가 겪은 병은 자신의 몸이 점점 더 불편해지고 굳어가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진행되는 잔혹한 병이었다. 몸은 시들어가지만 정신은 남들과 다르지 않기에 더욱 장애에 갇혀 좌절하고 괴로움을 겪었다. 이 잔인한 불치병은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모두 힘들게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유명한 죽음 학자인 Elizabeth Kubler Ross는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처음 죽음에 대해 들은 후 그것이 사실이 아닐거라 '부정'하고, 그 다음엔 "왜 하필 내가?"라며 '분노'하고 원망한다. 어떻게든 불행을 뒤로 미루려고  “이제부터 착하게 살아볼까?” 심리적 노력을 하며 '타협'하다가, 회복될 희망이 없거나 질병이 나빠지면 '우울'해지며 모든 것을 잃을 것에 대한 슬픔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수용'단계가 되면 자신의 운명에 대해 더 이상 분개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극 중에서도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지나간다. 그녀 또한 아프고 무섭고 힘들고 억울했다. 하지만 결국 아야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자기에게 닥친 불행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일, 또 감사한 일을 기록하며 천천히 마지막을 받아들인다. 아픈 자신을 돌봐주는 엄마와 친구들, 또 병원 관계자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자신의 결심, 자신에 대한 격려, 반성 등을 손이 움직이지 않게 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남겼다. 이렇게 남긴 노트가 15세때부터 20세까지 5년간 모두 46권이나 된다.



너무나 극적이어서 드라마같지만 실화라서 더 먹먹한 감동이 밀려온다. 슬프면 얼마나 슬플까 각잡고 앉아 보다가도 과장없이 솔직하고 담백한 삶의 용기 앞에선 마음이 녹는다. 이 사람은 이렇게도 사는데 내가 힘든 일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 잡게도 된다.



사춘기 여린 소녀는 어떻게 이렇게 큰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제 마음과 생각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며  굴복하지 않고 수긍했다. 병을 이겨낼 힘이 모자라서 엎드린 것이 아니라 병이 찾아온 것에 대해 인정했다. 우리 삶을 찾아오는 문제들은 원인을 따지지 않고 사고처럼 부딪쳐 오기도 한다. 문제의 원인을 따지기 어려울 때 부정하고 분노하고 회피하기만 한다면 순간순간을 누리지 못한 채 문제에 잠식되고 만다. 그저 문제가 나를 찾아왔고 쉬이 떠나지 않을거라는 걸 인정하면 어려움과 불편이 있더라도 함께 지내는 법을 배워갈 뿐이다. 강하지 않았기에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잘 휘었고, 그렇게 부러지지 않고 더 오래 버티는 강함이 된 것이다. 문제가 찾아온다고 부러진다거나 약해지지 않는다. 문제에 잠식되고 굴복될 때 문제가 될 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후회없이 오늘을 살아야 미래도 있단다.

이미 사라진 것을 되찾으려고 하기보다는 나에게 남아있는 것들을 더 갈고 닦아야 한다.

편안하게 살 곳을 찾으려는 게 아니예요. 그냥,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답을 찾고 있어요.



이전 18화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