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어릴 적 부터 남들보다 퍽 예민하다는 걸 자각한 나는 적극적인 자세로 자극에 대한 관용성(Tolerance)을 넓히지 않으면 스스로의 예민함에 함몰되어 은둔자가 되거나 미치광이로 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평균 이상의 자극 (다른 말로 '사서 고생')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는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왔고, 20대 후반 쯤 하나의 분기점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용과 예민 사이, 관용이 내 존재의 헤게모니를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내 예민함은 무기가 되었다.
관용의 통제하에 있는 예민함은 잘 길들여진 신령한 말이 되어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사실 예민함은 언제나 무기였다.
그것은 좋은 자극 나쁜 자극 가리지 않고 증폭기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예민 증폭기를 달지 않은 사람으로 14살 때 장자(莊子) 내편을 읽었다면 그가 말했던 '무대(無待)의 경지'에 대한 여운이 지금도 내 삶에 잔존할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분기점을 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들에 대해서 순서는 뒤죽박죽이지만 떠오르는데로 적어보자면
어릴 적 고전에 심취한 것.
다양한 고전을 통해 '인간이 가야할 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것.
그래서 낯선 땅에서 사람을 많이 만난 것.
그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눈 것.
내가 잘 하는 것들을 중심 축으로 세계관을 형성한 것.
그것에 끌린 이들을 곁에 둔 것.
내향인임에도 사람들을 좋아해
지칠 때까지 함께 논 것.
써 놓고 보니 다 사람이다.
20대 후반에 개인적 차원에서 하나의 분기점을 넘자 서른 부터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결혼 생활은 내가 알지못했던 처음 보는 내 예민함을 잔뜩 수면위로 올려놓았다.
나는 그것들에 휘둘리고 압도당했다.
거의 다시 태어나는 고통을 거쳐 서른 후반 즈음이 되어서야 다시 관용이 헤게모니를 잡았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그러나 20대 후반에 느꼈던 것 만큼 강렬하진 않았다).
그 증거 중 하나는 오늘 아침에 내가 마신 커피다.
거의 열흘 간의 여행으로 심신이 지친 나는 오전 9시가 훨씬 넘어서야 눈이 떠졌고, 반 무의식 상태에서 부엌으로 걸어가 커피를 내리려고 콩을 갈았다.
콩에서 평소에 나지 않는 냄새가 났다.
헤이즐넛이었다.
나는 신혼 때 부터 남편에게 헤이즐넛 향 커피를 싫어한다고 공표해왔기에 남편은 웬만하면 헤이즐넛 향 커피를 사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이걸 또 왜 샀냐고, 집에 헤이즐넛 향 풍기는거 정말 싫다고 난리법석을 했겠으나 이게 누군가에게는 좋은 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억지로 해 보았다.
그리고 불현듯 떠올랐다.
남편은 헤이즐넛 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말이다.
누군가가 아무생각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는 것에 아무런 해가 없음을 아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나는 그간 헤이즐넛 향을 적극적으로 싫어하기로 마음먹고 살아 왔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헤이즐넛 향과 남편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초민감자 #캘리그래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