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직장 박차고 나오니 정글은 정글이다.
그리고
이 정글이 심히 마음에 든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역동적인 삶의 기운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도착해 있다.
이 가차 없음이 그리웠다.
물론 이런 게 그리우려면 팔자에 역마(驛馬)와 지살(地殺)이 좀 있어줘야 된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쥐고 온 카드패가 무엇인지 조금은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운명론자가 되는 건가? 상관없다. 카드패가 정해져 있더라도 그걸 가지고 어떻게 놀지는 내가 정하면 된다.
번역 감수 제안이 들어왔다.
요청량과 데드라인 계산을 해 보니 평일 기준 하루에 14페이지를 6개월 동안 계속하면 마감된다.
돈을 차치하고 작업의 주제가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고 싶은 길에 합당한 지 물어보았다.
별로 합당해 보이지 않았다.
거절했다.
짜릿했다.
이렇게 단순한 사고 과정을 통해 내린 결론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기 싫은 일은 안 해도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까지 수 많은 싫은 일을 거쳤다.
1개월 정도라면 수익 창출과 새로운 경험에 의의를 두고 할 수 있겠으나 6개월은 반년이다. 반년을 투자해야 한다면 내 인생의 테마에 맞는 작업만 받아야 후회가 없다.
지금보다 어렸던 프리랜서 시절 선입견 없이 이것저것 들어오는대로 다 해봤던 것이 지금의 단순한 선택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오늘 여기 서명하면 앞으로 우리 같이 은퇴하는 거예요! 축하해요!"
정규직 전환 되던 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내가 여기서 은퇴를 한다고?'
종신형 선고를 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고
다행히 정글에 산다.
정글은 생명이다.
나에겐 그렇다.
#팔정도 #accicalli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