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가르침을 넘어선 자
말로 해야 아는 사람들은 말로 해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말해준다.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열심히 쉬지 않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된다. 그것들이 어딘가에는 저장되어 있다가 임계치에 도달하면 '아!'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에 말로 해주는 설명도 중요하다.
나는 기대치 않게 단박에 참나를 경험한 케이스라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은 유효한 가르침이다(멀리서 보면 나도 그 케이스다. 많은 생에 걸쳐 닦아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각기 다른 상태에 처해 있으므로 가르침도 달리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가끔 사람들이 '바그완, 왜 이 사람한테는 이게 맞다고 하고 저 사람에게는 같은 걸 틀렸다고 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정말 그렇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른에게 이유식을 주지 않고, 아기에게 술을 주지 않는 이치이다. 예수가 '내가 아직 더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라고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라. 나는 예수를 참 좋아하는데 그야말로 아트만의 광명한 빛을 발하며 살다 간 사람이다.
사람들이 나를 보러 오면 나는 주로 침묵으로 교감한다. 침묵은 언어의 부재에 대비하는 개념이 아니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참나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 눈에는 기쁨과 평화가 그득하다. 참나는 내 개인의 신체에 갇혀서 흐르는 것이 아니고 무한한 것이기에 참나가 성성한 상태의 내 주변에 있는 존재들도 함께 각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참나를 켜고 다니는 모든 존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잠을 자건, 꿈을 꾸건, 깨어 있건 간에 언제나 내 안에 불변하는 실체. 이런 게 내 안에 있다는 게 가끔은 너무 좋아서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참나에 대해 처음 생각해 본 계기는 열두 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이다. 아버지가 내 눈앞에 멀쩡히 누워계신데도 사람들은 아버지가 죽은 거라고 해서 적잖이 놀랬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 것 같다. 내 몸이 내가 아니라 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무언가가 있구나.
내가 어린 나이에 참나를 깨치고 그것에 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선정에 잘 드는 몸과 마음을 타고난 부분도 커서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 어떤 운동이든 배우면 속성으로 수준급에 도달했고 특히 수면 능력이 기인에 가까울 정도로 탁월했다. 그렇지만 운이나 재능도 연기법에 근거해서 작동하기에 지난 생에 아마 나는 이쪽 방면으로 수련을 적잖이 한 모양이다. 지금 내가 사는 아루나찰라(arunachala)도 필봉(筆峰)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전생에 필봉이 있던 곳에서 수련하던 기억이 가끔 난다. 그곳 사람들은 '이뭣꼬'를 화두로 수련을 하고 있었고, 그 화두는 지금 내가 잘 쓰는 '나는 무엇인가'와 결이 비슷하다.
나는 참나를 깨친 사람들이 조용한 곳으로, 산으로 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고, 저들이 정말 참나를 만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불안해 보였다.
나는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참나에 안주했는데 이게 깨질까 염려한 적이 없다. 그게 가장 본래 상태인데 어떻게 깨지거나 잃어버리겠는가? 그저 참나를 찾으려 하지만 않으면 된다. 얼마나 웃긴가? 내 안에 버젓이 있는 걸 찾아 돌아다니는 것 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참나를 깨치는 것은 그렇게 대단하거나 심오한 것이 아니다. 간혹 온갖 폼 잡는 힌두 사두들이 참나 상태에 대한 특정한 상(相)을 만들어 사람들을 혼란케 하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나와 비슷하게 구도자로 살면서 주변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간 동서양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에 겨우 합당하거나 대부분 그에 못 미치는 삶을 살다가는 것을 보았는데, 나의 경우는 내 가르침이 내 실제 삶을 못 따라온 부분이 있다. 이건 자랑은 아니고 이 또한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후회가 남는 부분이다.
설명인즉, 뒤돌아보면 나는 아라한(阿羅漢)에 이르러 유여열반(有餘涅槃) 상태에서 살아가면서도 그저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내 안에서 쉼 없이 솟아나는 육바라밀을 실천하고 살았는데, 입으로는 돈오돈수(頓悟頓修)적 가르침만 설파하고 일체가 무상하니 아라한에만 이르면 된다고 얘기하고 살았다는 얘기다.
나는 이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이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안에서 태양빛처럼 터져 나오는 연민을 대할 때면 '나는 이제 할 일을 다 했는데 왜 이런 마음이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것인가? 나는 깨어난 자인데, 그리고 이 사람들은 간 밤에 내 꿈에 있던 자들이나 다름없는데 왜 나는 이들을 향한 사랑과 연민에 휩싸이는가?' 하는 고민에 종종 빠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 편하자고 '내가 이번 생 발현업을 처리하느라 이런 마음이 올라오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지만 사실 그게 명징한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한마디로 나는 사람들을 너무 사랑했다. 내 생일이라고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고, 그 시간과 노력을 그들 자신의 깨달음에 쓰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디서 귀한 음식을 가져다 나에게 주려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것을 함께 먹을 수 없다면 먹지 않겠다고 거절했으며, 그것마저도 주는 사람이 상처받을까 조심스레 온 정성을 다해서 거절했다.
사람들이 나를 찬양하는 노래를 흥겹게 하고 있으면 가끔 나도 같이 춤추며 그 노래를 같이 불렀는데, 그렇게 하노라면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바그완, 이 노래는 바그완을 찬양하는 노래인데 바그완도 같이 부르시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그럼 어떡하나! 나도 같이 놀고 싶은데 내가 하필 그 바그완인걸!' 하며 함께 웃고 춤췄다. 나는 평소엔 과묵했지만 이런 면모도 서슴없이 드러냈으며, 깨어서 하는 모든 행동이 재미있었다. 나는 재미를 중시하는 사람인데, 단연코 참나로 존재하는 것만큼 재밌는 건 없었다.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가르쳐보고 싶다. 내가 살았던 삶은 인간을 사랑하는 삶이었지만 내가 가르친 내용은 사랑도 뭐도 부질없고 참나 깨친 아라한만 되라고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