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 피타고라스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쉽지가 않다. 나 같은 사람은 보통 한 세기에 한 명 밖에 없기 때문에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루미로 살던 때 만해도 나는 샴즈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당장 오늘의 내 삶이 딱히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저 가끔은 나도,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게 느끼듯 누군가에게 영감을 받고 싶고 기대고 싶을 뿐이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은 나를 숭배한다. 그들이 진정 나를 알아본다면 숭배 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듣는 이들이 곡해하여 이 길에서 벗어날까 염려가 앞선다. 아주 가끔 마테마티코이(Mathematikoi) 중에서도 독보적인 몇몇에게는 이런 내 속내를 가끔 있는 그대로 내비칠 때가 있는데, 이내 곧 후회하고 만다.
일부 사람들은 나의 언변과 통찰력, 카리스마적 면모만을 보고 내가 사람들 앞에서 쉽게 내지르는 줄로 착각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크다. 나는 내가 발견한 지혜의 작은 조각도 내질러 말하지 않고, 귀한 사람에게서 받은 선물을 뜯는 마음으로 상대의 입장을 봐가며 한 마디씩 내뱉는데, 아직도 뜯지 못한 선물들이 산적해있다.
나는 젊은 날에서 중년, 노년에 걸쳐 바빌로니아, 이집트, 로마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걸을 수 있는 가장 큰길을 걷고자 길 위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내 영혼의 성장을 도모하는 수많은 가르침에 나를 노출시켰다. 마흔 무렵에는 고향에 정착하여 내가 아는 것들을 동향인들과 나누고 싶은 바람도 있었지만 폴리크라테스의 지배 하에서 활동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로마로 길을 나서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진리를 향한 뜨거움을 안고 살았기에 그 비슷한 빛줄기만 보아도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로 인해 내 존재가 커가는 만큼 내 안의 진리도 천태만상의 아름다움으로 나를 경탄케 했다. 내가 발견한 진리의 빛줄기들은 각기 다른 색깔을 띠며 가끔은 수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혹은 음악적으로 발현되었는데 그 빛줄기들을 한 손에 다 쥐고 따라가다 보면 무한한 사랑이라는 시작점이 있었다.
나는 진리를 묘사하는 데 있어 당시 사람들이 익숙해 있던 신화나 관습에 일부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적과 기사라는 입구를 통해 진리의 길에 들어서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이적과 기사를, 신화적 서사를 통해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신화를, 수리적 접근이 익숙한 자들에게는 수리를 설파하였는데, 이는 매우 고단한 노정이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진리를 조금 안답시고 지 멋에 취해 내지르는 자들은 정말이지 최악이다. 사랑 있는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공자가 말했던 여보적자(如保赤子)의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할 수밖에 없다. 여보적자적 태도는 정치뿐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에 유효한 가르침이다.
상대의 성장에 최적화된 가르침을 주고 싶어서 내가 다양한 방편으로 말하고 다닌 내용들은 주로 비문헌적(agrapha dogmata) 방식으로 플라톤에서 예수,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진선미가 하나로 꿰어져 있다고 보았기에 전인적 개발을 중시했지만, 볼로냐에서 출발한 대학교육제도는 의도는 좋았으나 끝내 인간을 파편화시켰다. 인간은 원래 다 잘할 수 있고, 하나를 통달하면 다른 것으로도 쉽게 길이 트인다. 내가 다양한 분야에 능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아폴론의 화신이라서가 아니라 내 안에 광명한 참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자(明明德) 쉬지 않고 정진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개 컬트의 수장이 아니다. 나는 그저 지혜를 사랑한 자(philosophos)요,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인류 최초의 철학자일 뿐이다(그것에 큰 의의를 두는 것은 아니고 단지 '철학자'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는 점에서). 내가 콩을 안 먹는다거나,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바빌론에서 먼저 쓰였으니 내가 한 게 아니라는 등의 이야기는 내가 삶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본질적 가르침과 관계가 없다. 나는 사람들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매 순간 따져보며 살기를 바란다. 육신을 쓴 생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을 알고, 나의 영혼이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인더스강 유역 사람들도 이런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내 것과는 살짝 결이 다르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기 보다는 그냥 살아있는 개인적 역사로, 일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몸 저 몸 머물며 내 영혼의 불멸을 가능케 해 주는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이 애틋하고, 다른 존재들의 불멸을 가능케 해주는 나도 애틋하다.
나는 사람들이 이적 기사 따위, 신화 따위, 피타고라스 따위 다 넘어서서 그들만의 광명한 빛을 내뿜으며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