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요기의 기도
'오늘도 이 기도를 예수님과 크리슈나,
그리고 세상에 왔다간 모든 성인들과 현자들의 이름으로 바칩니다.
옴. 아멘.'
나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기도를 하면 좋겠다.
예수님과 크리슈나 자리에 다른 성인들의 이름을 넣어도 무방하고, 혼합주의라 해도 상관없다. 그런 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혼합주의 건 뭐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 걸 도대체 왜 따지고 앉아있다는 말인가? 나는 오로지 인간이 서로 사랑하는 것, 신, 영혼의 성장에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살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과 신과 영혼의 성장에 나처럼 지대한 관심이 있는 모든 영혼들에 이끌려 그들을 종종 보러 간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이끌리도록 되어있다.
예전에 오스트리아 그라츠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한 영혼에 이끌려 그의 삶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스무 살 청년이 혼자 대학교를 다니면서 살고 있는데, 방에 내 사진을 붙여놓고 명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오스트리아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게 신기했다. 그 청년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따뜻하고 푸른 눈을 지니고 있었고 머리는 허리까지 오는 드레드락을 하고 있었다. 드레드락만 빼면 알키비아데스의 환생이 떠오르는 준수한 외모였고, 최대한 자신의 힘을 숨긴 채 살아가려는 수사자 같았다. 그는 아직 장엄하게 피어오르지 않았지만 특별한 구석이 있었고, 예민한 사람들은 이를 눈치채고 그와 가까이하기를 즐겼다.
하루는 그가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트램을 기다리다가 먼발치에서 땅바닥에 앉아있는 한 소녀를 보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천천히 그 소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종이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글씨를 쓰고 있었는데 신비로운 분위기에 압도된 그는 소녀의 얼굴은 차마 못 보고 글씨만 보고 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용기를 낸 그는 고개를 소녀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이 즐겨하는 명상법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고(내 명상법이었다), 그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여 들었다. 나는 이 소녀가 나와 비슷한 영혼임을 알 수 있었고, 이 소녀가 가는 길에 함께하며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를 따라가 보니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인데 여름 방학이라 유럽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길에 앉아 글씨를 쓰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는 것을 너무 재밌어하는 힘찬 영혼이었다. 나는 그녀와 계속 함께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가 캐나다로 돌아가고 나서도 토론토에 있는 SRF(Self-Realization Fellowship) 명상센터로도 인도해주고, 나중에 미국 남자와 결혼하여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을 때도 말리부에 있는 레이크슈라인(Lake Shrine)에 가서 정기적으로 명상할 수 있도록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유도했다. 그녀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자주 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걱정되진 않았다. 나처럼 지켜주는 존재들이 많아서 꼭 내가 아니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길에서 벗어나 딴마음을 먹을 수준의 영혼이 아니었다. 그 소녀와 오스트리아 청년은 20년째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마음 맞는 영혼들을 찾아가 그들을 보호하고픈 욕망이 있듯이, 나보다 훌륭한 수많은 성인 성현들 또한 더 높고 깊은 차원에서 세상 모든 인연 있는 이들을 한 명 씩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서로의 사정도 잘 알고, 서로 친하다. 인간들이 이 부분을 아는 게 중요하다. 예수님과 크리슈나는 도반(道伴)이요, 절친이라는 사실 말이다. 자신 안에서 광명하게 빛나는 신성을 깨우친 사람들끼리는 서로 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안의 광명이 네 안의 광명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들 존재 자체 만으로 이미 온전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서 오는 기쁨을 충만하게 느끼고 매일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옴.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