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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Oct 29. 2022

에크하르트 시절

영원한 이단아

아마도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였을 때부터일 것이다. 

신은 인간을 심판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니라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임을 알게 된 것은.


삶이 무슨 재앙으로부터 달아나 구원받아야 되는 게임인 줄 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열심히 기도하고 명상하고, 열심히 탐구하여 종파를 일으키고, 교회를 짓고 회사를 짓고 대학을 짓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 열심히 살면서 나는 '좋은 일' 많이 했으니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사람들이 삶을 대하는 기본값이 두려움이 되도록 사회 문화 종교적 장치가 힘을 합쳐 굴러온 세월은 오래되었다. 불안과 두려움을 창조하는 톱니바퀴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쉬려고 했다간 존재 밑바닥에 암반대처럼 자리 잡은 죄의식과 인습적 도덕률이 슬며시 고개를 들며, 쉬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열심히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속삭이기 시작한다. 


인간 삶의 기본값이 두려움이 된 원인 중 하나로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적 영성, 그중에도 원죄를 지목한다. 나는 원죄라는 신학적 장치가 인간을 자유와 사랑의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거의 모든 거대담론에 다양한 방식으로 녹아있으며, 인간들을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부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겁(아빠체_smudge), 1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2022

이를테면 자신이 생각하는 '선(善)'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 봉사를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겠다.' '기업들이 환경 문제에 더 경각심을 갖도록 캠페인을 해야겠다.' '직장에서 궂은일은 내가 다 해야겠다' 같은 다짐들이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일 때가 많다. 


이런 다짐들이 떠오를 때, 이게 인습적 도덕률에 근거한 내 생각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내가 잘 쓰는 방법 중에 하나는 바로 자신을 철저하게 비우는 것이다. 텅 빈 마음을 통해 신과의 합일에 이른 상태에서 하는 일은 그 무엇도 신의 일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합일의 길로 향하는 데 있어서 열심히 임하는 자세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수록 내 안의 신이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자연의 흐름과 같아서 뭔가 열심히 각오를 다질 게 없다. 자연은 열심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나를 비우기만 하면 되고, 그 상태에서 신이 하는 일에 동참할 뿐이다.


자기 안의 신과 협업하는 사람의 일은 자연스럽기에 아름답다. 나는 유가(儒家) 사상가 중에서 맹자를 좋아하는데 하늘의 일을 '열심히' 하기를 즐기는 자는 맹자가 말했던 '물망물조장(勿忘勿助長)'을 꼭 마음에 세겼으면 좋겠다. 신은 우리에게 엄청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한 적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인지 깨닫고 사는 자들의 삶 자체야 말로 엄청난 것이지, 거창한 의도를 먼저 품는 자의 삶은 사실 하나님과 멀어져 있다.


나는 오늘도 나 없는 나로 충만하다. 


감탄(아빠체_smudge), 2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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