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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자의 옷장 Aug 06. 2023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4)

소설의 제4장

  “갑자기 어떤 의미를 깨달아서 그러나.”

  “묻지 말게. 그런 줄만 알아. 예배와 인사가 다 끝나면 바로 내 집으로 가지.”

  “뭔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알아줘서 고맙네.”

  “됐네. 이 나이에 고마움은 무슨.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일인데.”

예배가 끝난 후 우리는 일어났다. 목사와 급하게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찰나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 청년이었다.

  “예배는 잘 드리셨나요?”

  “그럼 잘 드렸지. 자네의 전단지 덕에 좋은 예배를 드릴 수 있어 감사하네. 아 맞군. 여긴 내 친구라네 나와 같은 늙어빠진 할아버질세.”

나는 친구에게 말을 이었다.

  “여긴 그 저.. 전단지! 그 전단지를 준 청년일세. 이 친구 덕에 우리가 여기 와서 예배를 드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이지. 서로 인사하게나.”

어린 친구가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반갑네. 자네 덕에 이 고집불통인 노인네를 교회까지 끌고 올 수 있었구만. 하하!”

친구는 늘 그렇듯 박장대소해보였다. 나는 조금은 탐탁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넨 또 시작이구만.”

  “사람이 바뀌면 죽는 법이야. 자네도 좀 웃지 그러나.”

청년은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급하지 않으시다면 오늘은 크리스마스라 교회에서 식사도 거나하게 준비했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아니, 나는 괜찮..”

  “그럽세! 고맙네. 어디로 가면되지?”

친구는 내 말을 끊었다.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청년은 아주 나이스하게 웃으며 우리를 인도했다. 나는 가는 길에 어색함을 풀고자 청년에게 말을 건냈다.

  “오늘 아주 바빠보이는구만.”

  “바쁘지만 이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일세.”

금방 이야기 거리가 떨어졌다. 우리는 묵묵히 걸어 만찬이 펼쳐진 곳에 도착했다.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이걸 다 준비 하려면 정말 힘들었겠구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거지 나사로를 무시할 수 없어 온 동네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어야 했거든요. 그리고 메뉴는 다르지만 항상 이정도로 준비하고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한 음식을 남기지 않고 모두 나누어 먹기에 일요일의 교회는 사실 동네 파티라고도 할 수 있죠. 그래도 오늘처럼 귀한 음식이 많진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처럼 저희는 준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구만.”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큰 연회장이었다. 그곳엔 수많은 음식과 식탁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에겐 빈부가 보였지만 그 차이를 느끼기에는 거의 불가능했다. 공간이 주는 힘이 느껴졌고 청년이 왜 나사로의 이야기를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여기 빈 자리에 앉으시죠.”

  “고맙네. 자네도 같이 식사를 하지 않겠나?”

  “좋습니다. 그럼 같이 앉으시죠.”

청년은 일어나 음식과 와인을 가져왔다. 나는 놀라 물었다.

  “와인을 마셔도 되나?”

  “네 저희 목사님이 조금은 자유로우시고, 예수님도 드셨던 건데 과하게 먹지만 않으면 된다고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의 피라고 선물받기도 했고 말이죠, 조금의 술은 이 공간을 조금 더 즐겁게 해줄 수 있지만 행패를 부리는 사람은 정중히 내보내고 있습니다.”

  “엄청나구만.”

청년은 잔에 와인을 따르고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시어. 오늘도 이렇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를 우리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땅에 내리시고 예수님의 엄청난 고통과 죄사함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음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가 그 고통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기도와 예배를 드립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청년은 기도를 마치고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진짜 드시죠.”

친구는 무언가 감동한 듯 말했다.

  “남이 해주는 식전기도는 오랜만이군.. 아내가 죽은 뒤로 처음이야. 감동스럽구만. 고맙네 맛있게 먹겠네.”

친구는 말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멍하니만 있었다. 청년은 무언가 죄송한 표정을 지었기에 내가 분위기를 풀며 진짜 식사를 시작해야만 했다.

  “자 일단 잔부터 들지.”

  “네.” “그럽세.”

  와인은 무언가 내 몸으로 사무쳐 들었다.

  “좋은 와인이군. 이렇게 오랜만에 사람들과 술과 음식을 마시니 뭔가 좋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서로의 사랑얘기가 주를 이뤘다. 친구는 기분이 좋아져 자기 아내와 만난 이야기와 부인을 보내기까지의 사랑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사랑의 이야기는 많은 술을 불렀으며, 친구와 청년은 나의 사랑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친구는 다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순수한 사랑은 없다며 청년을 꼬드겨 내 입에서 사랑의 이야기를 나오게 종용했다. 분명 나를 골탕 먹이려 함에 틀림없었다. 나는 조심히 입을 뗐다.

  “술을 마시고 취기도 올라왔겠다 자네가 그렇게 궁금해 했던 나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4살이었어. 젠장! 7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그 감정만큼은 생생하군. 아무것도 없는 그냥 혈기왕성한 한 청년의 똑같은 하루였어. 저녁을 먹을 즈음인가..? 그녀와 길에서 마주쳤지. 나는 믿지 않았던 현상을 그날 마주하고 믿게 되었지. 한 순간은 정말 무서웠어.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온 세상이 멈추더군. 1초? 아니 그 1초는 나에게 영겁의 시간이었지. 그녀만이 보이고 그 주위에 모든 것은 보이지 않았어. 전부 사라지고 그녀와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과 ‘이 사람이 아니면 나는 안되는구나!’라고 생각이 들더군. 이 오랜 시간 수많은 것을 보아왔지만 그녀보다 아름다운 존재는 없었지. 그 아름다움은 말로 어떻게 표현이 되질 않아. 쌍커풀이 없는 눈에 오똑한 코 그리고 아름다움만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입술과 그 동글동글한 얼굴, 그리고 무언가의 장미향. 내가 어떻게 그 날을 잊을 수 있겠나. 그리고 그녀의 눈은 나의 전부를 담아갔다네. 우주와도 같던 그녀의 눈을 내가 피할 방법은 없었어.”

나는 잔을 만지며 휘휘 돌리며 술에 비춰 부수어지는 나를 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웃어보였어. 내 심장은 땅바닥으로 떨어져 미친 듯이 떨렸지. 그녀의 웃음에 살짝 올라간 광대와 입술 그리고 눈웃음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 웃음을 내가 평생동안 옆에서 보고싶었어. 그 웃음을 평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네. 그러니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이더군. 나의 입술은 떨어질 줄 몰랐어. 그저 무언의 감탄과 숭고 앞에 경배하는 마음뿐이었지. 그래도 나는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인사를 했다네. 그리고 장미향을 칭찬했지. 평생 꽃을 싫어했음에도 그때만큼은 꽃이 좋더군. 그녀는 웃으며 이야기해줬어. 운이 좋았지. 우린 밤새도록 별을 보며 이야기를 했다네. 카펠라(Capella).. 교회와 철자만 다르지 그 카펠라라는 발음이 나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내 연인과의 인연이라고 생각했었지. 한 눈에 사랑에 빠진 여자가 있는데 그녀와 바라보던 별이 카펠라라니. 자네는 이 아름다운 우연이 이해가 가나? 나는 그때 한참 새벽예배를 드릴 때였어. 그래서 엄청난 선물을 내게 주신 줄 알았다네. 밤새 이어지는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 그녀와 나누는 이야기와 그 시간은 아직도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야.  그녀는 내 이야기에 웃고 나는 그녀의 이야기와 목소리에 심취 되었었다네. 님프와 같았었던 것 같아. 님프가 부르는 노래가 그렇게 아름답다면 그건 필시 나에겐 그녀의 목소리라고 증명하고 싶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그저 아름다운 음악이었어. 나는 ‘환희의 송가’를 아주 좋아한다네. 하지만 그 이상의 숭고함이 그녀의 목소리엔 있었다네.  선명하진 않지만 지금 들리는 것 같구만..”

나는 눈을 감았다.  나에게 교회의 그 연회장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리고 내 앞에 한 늙은이와 청년 또한 내 감정에 동조하듯 조용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 중 난 그녀를 배려하지 못하고 내 마음을 전했다네. 나밖에 존재하지 않은 이기심이었지. 그럼에도 그녀는 이해해줬어. 성숙했지. 나는 어렸고 말이야. 할튼, 나는 그녀와 헤어지기가 싫었다네. 하지만 해는 뜨고 있었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했어. 그리고 난 용기를 내어 물어봤지. 혹시 오늘도 만날 수 있냐고 말이야. 그녀는 웃으며 좋다했어. 세상은 내 것이었네. 그 순간만큼은 카이사르(Caesar)도 부럽지 않았어. 그리고 세상의 속물적인 것들은 전부 쓸모없었지. 나는 ‘어떻게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고민을 하며  집에 들어가 잠에 들었어. 그리고 그녀를 만나러 나가기 전 난 워드롭 앞에서 엄청난 시간을 보냈다네. 그래도 결과적으로 잘 입었던 것 같지는 않아. 그래도 그녀는 내 칭찬을 해주고 내가 먼저였지. 우리는 전날과 같이 동이 틀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고 그 이야기는 끝에 다다랐지. 그 이야기의 끝이 만남의 끝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어. 우리는 그 날에 사랑을 주제로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 했거든. 헤어지는 순간 그녀는 나에게 굿바이 키스를 건넸어. 그 순간은 정말이지 머리가 멍해지며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았지. 아직까지 그 온기가 느껴질 때도 있어. 하지만 그것이 진짜 굿바이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나는 세상 갓난아이만큼 좋아했지만, 못 만나고 지나간 일주일 후에 그녀가 전한 유일한 말은 ‘그만 봤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라네. 이제 난 젊지도 않고 죽음만을 목전에 두고 살아가는 그저 처량한 노인네일 뿐이야.”

침묵이 이어졌다. 청년은 나에게 질문은 던졌고, 친구는 잘했다는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럼 다른 사랑을 다시 해볼 생각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했지.”

  “근데 왜 혼자 사셨습니까?”

  “나 혼자 했던 약속이 있어. 그녀를 평생 기다리기로 했지. 나의 기회는 썼으니 그녀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아주 이기적이고 오만하지 않나? 그리고 그 약속을 취소하려고 했지만..”

나는 말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자네는 ‘문득’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나?”

  “‘문득’에 감정이 있습니까? ‘문득’은 순간 아닙니까?”

  “‘문득’의 감정은 갑자기 찾아오는 심장마비와도 같은 감정이야. ‘문득’이 다가오면 심장은 대못으로 박히듯 고통을 호소하게 되지.. 그 고통은 사라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남아있네. 문득 스치는 그리움이란 고통은 나를 패닉으로 이끌지. 그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야. 나는 그 흉터를 여태 ‘문득’과 마주하기에 사랑을 하는 것을 포기했다네. 그 문득은 나뿐 아니라 주위에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지. 그건 나의 의지와 관련이 없어. 내 자신을 행복하지 못하게 막는 것인지 아니면 행복으로 데려가 더욱 처절한 고통을 받게 하는지 모른다네. 내 사랑은 아직 24살이야. 그렇기에 그 행복을 포기하기로 했어. 나는 합리화를 시작했지. 세상엔 행복이란 없다네. 행복을 받아들이는 순간 생기는 불행과 행복 역치의 상승은 전부 욕심이 아닌가. 난 진정한 사랑을 마주했었기에 그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네. 그것이 인생의 전부이고 사실 살아갈 동력이었어. 나는 다 잃은 것 같았지. 골방에 박히고 내 일 빼고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인생이 몇 년이나 갔을 것 같나. 숨도 못 쉬게 괴로운 것은 4년이고 행복을 포기한 것은 64년이야.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바늘을 잡고 미친 사람처럼 옷을 짓는 일 밖에 없었네. 정말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더군. 난 이 교회에서 매일 같이 울며 기도를 했어! 제발 살려달라고 말일세! 왜 이런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냐고 말이야! 그때의 나는 정말 감당 불가능했지. 그리고 어떻게든 매달렸어. 내가 아는 전지전능한 신은 교회에 밖에 없었거든. 하지만 나는 한 겨울 길바닥에 던져졌지. 아무리 기도를 해봤자 그 어떤 것도 들어지지 않았어. 그냥 벽보고 소리치는 수준밖에는 되지 않았단 말이야. 길에서 단 한 번이라도 마주치기를 바랐지. 그 작은 소원마저 이루어지지 않더군. 그 초라함과 분노를 아나? 그로 인해 만들어진 나의 붕괴를 보던 사람들은 나를 건드리지도 못했다네. 숨만 겨우 붙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난 내 스승에게 갚지 못할 짐을 졌어. 그걸 다 받아주셨으니 말이지.. 내가 그리도 간절했던, 나에게 밝게 빛나던 카펠라는 나에게 그 어떤 빛도 주지 않는 그저 죽은 별과 같아졌고 난 그냥 망나니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 참 쓰레기 같은 놈이구만 나는..”

청년은 말했다.

  “그 설렘과 고통을 알 수는 없지만 얼굴이 24살의 언젠가로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농담 말게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지. 화장실은 어딘가?”

  “저 문으로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가면 있습니다. 다녀오세요.”

  “그러지. 고맙네”

나는 비틀거리며 지팡이에 의지한 채 화장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너무 과음을 했군.. 나이 생각을 하지 못했어.”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볼 일을 다 보고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친구와 청년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나를 그렇게 쳐다보나.”

친구는 대답했다.

  “과거 자네의 위대함을 이야기했지. 그리고 이 청년의 이야기도 들었고 말이야.”

나는 다시 물었다.

  “무슨 이야기 말인가?”

  “자네가 대단했던 테일러였다고 이야기 했지.”

  “아니야.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어. 내가 그렇게 대단했다면 내 매장을 열었겠지. 난 대단하지 않았어.”

  “그것도 다 자네 고집이 아니었나?”

친구의 마지막 질문을 나를 꿰뚫었다. 그리고 친구는 청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친구는 사실 대단한 사람이었어. 새빌로에 오는 사람의 대부분은 저 친구에게 옷을 지으러 온 사람들이었지. 그의 옷은 유려하고 고집스러웠으며 모든 사람들을 각각의 사회에 최고의 모습으로 위치하게 만들었다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자네는 알거야. 근데 나도 모르네. 왜 저리 골방에 늙은, 다 포기한 할아버지처럼 박혀있는지는. 심지어 과거 또한 다 부정하며 있는지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그놈의 고집이 뭔지. 그 이유는 말해주지도 않네.“

  “이유는 아까 설명하지 않았나. 나는 내 스승을 뛰어 넘을 수 없어. 나는 나같은 망나니는 받아들일 수 없단 말이지. 그 성인(聖人)같던 내 스승의 모습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었다네. 내가 스승의 기술과 인간성을 겨자씨만큼도 따라잡지 못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그리고 빚을 갚기도 해야 했고.. 그래서 그런 걸세..”

청년이 물었다.

  “그렇다면 옷을 짓는 것은 어떤 의미셨습니까? 그저 도피처였습니까?

  “아니. 나에게는 그것이 기도였고 그것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사랑이자 책임감이었으며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숭고함이자 속죄였어. 난 내 스승에게 배운 것을 녹여내야 했고 정직해야했지. 그 안에서 내가 만드는 것들에 자부심이 있었지만 여태 완벽한 옷을 지은 적은 없네. 아.. 이것도 내가 매장을 내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어. 완벽한 옷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았어. 손님들은 최고라며 다들 만족하며 나갔지만, 나는 자책했어. 무섭더군. 그럴수록 더 바늘을 잡았지만 결국 내 마음에 완벽한 옷은 여태 한 벌도 없었네. 손님들이 들으면 아주 실망할 말이지. 그렇기에 나는 더욱이 대단하지 않아. 나는 그 끝없는 죄책감 속에서 결국 도망쳤다네. 그 시작부터 잘못된 분노를 이길 수 없었어. 어렸을 적에 죽는 날까지 바늘을 잡고 싶다고 했지만 합리화하던 죄책감에 난 도피했어. 근데 그런 나에게 이 친구가 와서 자기의 마지막 옷을 지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공짜로 옷을 지어 달라니 욕심도 많지. 하하. 난 거절했지만 오늘 설교를 듣고 깨달은 것이 있어. 난 살아 있으니 죽은 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야. 죽은 자가 되어야만 죽을 수 있는 죽어야만 생명을 꽃피우는!, 그리고 죽는 날까지 바늘을 잡겠다던 그 욕망이 끓어오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 자리에서 끝까지 하며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네. 나를 죽여야 하는 것이지. 나는 여태 나를 현실을 도피하며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죽은 것이 아니었어. 그렇기에 이 친구한테 옷을 지어주기로 했네. 이 감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몰라. 그리고 언제 죽을 지도 모르지. 그래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감정이 들었다네. 아까 친구가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냐고 물었지만 나는 까탈스럽게 얘기해주지 않았지. 언젠간 말할 것이었고, 그 시간도 우리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지금 이렇게 속 시원하게 말하니 마음이 편하군. 그리고 며칠 전 이야기 한 것과는 달리 온전히 내 진심을 말할 수 있어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말이지. 나는 멋쟁이들을 위하여 옷을 지었지만 내가 지은 옷들은 사실 다 거짓인 것 같아. 그게 내 자존심이었지만 내가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이지 않나? 다 내 자위였을 뿐이야. 손님들이 만족하며 나가고 다시 찾아올 때 나는 내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어. 난 정직하게 일했다고 했지만 사실 정직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어. 며칠 전 이 친구는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다네. 분노로 옷을 짓지 않았냐고 말이야. 맞아. 나에 대한 엄청난 분노지. 부조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다 꿰매어 가리는 것 뿐이었어. 그 분노를 들켰을 때 얼마나 창피했는지.. 옷 짓는 일은 사랑이었지만 사랑을 표현하지도 못했어.. 내 말과 행동들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 많구만..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이제 슬슬 일어나지. 자넨 내일 꼭 내 집으로 오게나. 몸 치수를 재야지. 난 한 입으로 두 말은 하지 않아.”

청년은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저도 내일 가서 공부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자네가 와도 그렇게 배울 것은 없을텐데...?”

  “아닙니다. 꼭 한 번 옆에서 보며 배우고 싶습니다.”

  “치수만 재는데 뭔 배울게 있겠나.”

  “아닙니다. 사람의 몸을 해석하는 것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그럼 둘 다 내일 오전 9시까지 오게나.”

청년은 신이 난 얼굴로 그리고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하지만 친구는 일어나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일어나게. 나는 이 청년과 조금 더 대화를 해야겠어. 그리고 내일 만들게 될 옷은 사랑으로 지어지길 바라네. 나를 향한 사랑이 아닌 자네를 향한 사랑으로 말이야. 자네가 그렇게 부조리하다고 소리쳤던 그 신이 자네가 다시 바늘을 잡게 만들다니. 이거 정말 신기한 일 아닌가? 아직 그 신인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네를 포기하지 않으신 것 같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내 기도를 들으신 것 같구만.. 나도 자네가 솔직히 말했으니 말을 해야겠네. 내가 아까 한 기도는 자네가 사랑으로 다시 나아가길 바랬던 것이야. 근데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군. 이 또한 감사할 일일세.”

  “자네도 취했구만. 됐네. 내일 봅세.”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친구와 청년을 등지고 비틀거리며 교회에서 나왔다. 교회에서 나와 쳐다본 하늘은 먹구름이 깊게 끼어있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비는 오지 않았다. 내심 나는 비를 바라고 있었나보다. 그렇기에는 맥(Mac)도 입고 나오지 않은 나는 상당히 앞뒤가 맞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내 친구는 맥을 입고 있었다. 나는 내 규율만 집중한 것이었다. 그 고지식한 규율 안에 놓치고 있던 것이 많았다. 옷은 삶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나는 그것을 놓치고 있었나 의문이 들었다. 내 친구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그는 진심으로 그의 삶을 살고 그의 삶을 녹여내고 있었다. 나는 또 나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집으로 향했다. 온 거리는 가족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나도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다. 사랑의 궁극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초라해진 모습으로 나는 집에 들어가 옷을 정리하고 씻었다. 그리고 그냥 물만 벌컥벌컥 마신 채 널브러져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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