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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자의 옷장 Jul 28. 2023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3)

소설의 제3장

약속의 날이 왔다. 어제 많이 잔 탓인지 나는 아주 이른 시간 눈을 떴다. 마음과는 달리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창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하늘을 보니 무척이도 흐린 것이 눈이 올 듯 싶었다. 나는 씻고 면도를 하고 준비를 했다. 나는 조심히 워드롭을 열었다. 부모님께 배운 것은 많이 없었지만 어렸을 적 교회에 가는 부모님은 가장 아끼는 옷을 꺼내서 입고 나가셨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예전 일을 하며 재밌었던 것은, Vestito della Domenica. 일요일을 입는 것. 일요일에 가장 좋은 옷을 입는 문화. 이탈리아 손님한테 들은 적도 있다.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수트를 꺼냈다. 사실 세상이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를 수도 있다. 비싼 원단으로 비싼 손이 만든 것이 좋은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내가 만들던 것이 그런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워드롭을 쳐다보고 있으니 그것을 꼭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이 수트는 내 스승이었던 마스터가 나에게 직접 지어준 수트이다. 개인적으로 잘 만들어 놓은, 즉 내가 선정한 좋은 옷으로 가득찬 워드롭에서 가장 소중한 옷이다. 물론 어폐가 있다. 이것은 좋은 원단과 좋은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래된 이 수트가 주는 감정은 남달랐다. 난 그가 수트를 짓던 그 손을 한참동안 바라보았었다. 그의 가르침은 이 검은색의 수트에 남았고, 그 또한 이 수트에 남아있다. 오랜만에 꺼낸 이 수트가 맞지 않을까 나는 노심초사 하며 먼저 셔츠를 걸치고 트라우저를 걸쳤다. 다행히 허리에 맞았다. 나는 조심히 서스펜더를 하고 넥타이를 했다. 그리고 웨이스트코트와 함께 회중시계를 조심히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 후 걸친 자켓을 비추는 거울은 나를 어린(사실 어리지는 않은)시절로 돌려보냈다. -*트라우저 : 바지, 서스펜더 : 멜빵, 웨이스트코트 : 조끼- 이 나이에 감상에 젖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떠오르는 스승님의 생각에 나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행커칲을 재킷에 찔러 넣고 검정색 프록코트와 타이와 색을 맞춘 진한 버건디의 스카프를 걸쳤다. 어제 닦아놓은 구두는 나를 신어달라는 듯이 나를 바라봤으며 나는 그에 기꺼이 응했다. 브로그가 없는 토가 각진 옥스퍼드. 나는 그 자체로 영국인이었다. 어렸을 적 이 모습을 쫓으며 새빌로에 왔던 그 시간마저 몰려오는 노스탤지어의 아침이었다. 나는 더욱이 영국인을 완성시키려 모자걸이에서 모자를 들어 쓰고 챙을 한 번 훑은 다음 장갑을 끼고 지팡이를 들며 문 앞에 섰다. 맞다. 이것이 내가 옷을 사랑한 이유였다. 이제는 평소보다 강렬해진 심장 박동이 옷이 주는 설렘인지 오랜만에 가는 교회에 대한 두려움인지 잘 몰랐지만 난 길을 나섰다. 그것이 지금 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역시나 너무 이른 아침이었다. 교회는 예배와 축제준비로 바빴고 나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오셨군요!”

그 청년이었다. 청년은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웃으며 뛰어왔다.

  “안녕하세요. 오셨군요. 어제 눈도 마주쳤었죠 저희.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급하게 가시느라 인사를 못드렸어요 죄송합니다.”

  나는 눈치 못챘기를 바랬지만 이 청년은 정확히 나를 봤던 것이 맞았었나보다. 나는 눈인사까지 건넸음에도 거짓말을 했다.

  “아닐세. 난 마주친 줄도 모르고 있었어. 어제 친구랑 지나가며 교회가 단장하는 것을 잠깐 구경했었는데 그때 날 봤나보구만.”

  “그러시군요. 그럼 들어가 계세요 날도 추운데.”

청년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내 친구와 이 앞에서 만나기로 했네. 친구가 하도 극성이어야지. 사실 나올 생각이 없었는데, 친구가 끈질기게 가보자 하더군. 자네가 줬던 전단지가 그 친구 눈에 들어 정말 고생했다네. 그래도 덕분에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는 것 같구만.”

내 목소리엔 약간의 신경질이 묻어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청년은 신경쓰지도 않은 채 웃음으로 답했다.

  “네. 그래도 추우시면 먼저 들어가 계시고 제가 친구분 오시면 안에 계시다고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청년은 하던 일을 마무리하러 갔다. 사실 내가 청년의 환대와 배려에도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교회 안이라는 공간에 혼자 던져지기 싫어서였다. 나에겐 너무 어색하고 어렵고 피하고 싶었던 공간이라 그랬다. 그래도 어릴 적 생각이 나 나는 입김을 불며 추운 날씨를 실감하고 있었다. 지팡이로 돌 사이를 후비며 시간을 때우고 있으니 멀리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일찍 왔구만!”

친구는 뛰는 것도 빨리 걷는 것도 아니지만 무척이나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자네 얼마나 설레었으면 이렇게 일찍 나온건가?”

  “설레기는, 부담스러워서 일찍 깬 것 뿐이야. 천천히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찍 나와서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자네도 조금은 일찍 나와서 다행이군 들어가세.”

  “들어가긴, 이렇게 예쁜 교회를 두고 어찌 바로 들어가나, 좀 구경하고 들어갑세.”

  “뭐가 그리 예쁘다 그러나. 그래도 자네가 여행왔으니 구경합세.”

  “자네는 예전부터 싫은 소리 다 하고 배려해주는 습관이 있어.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 지금도 그렇구만. 자네 덕분에 이런 아름다운 교회를 구경할 수 있구만. 고맙네. 아주 아름다워. 대도시는 다르구만. 아니 대도시라서가 아닌가. 나는 대단한 눈은 없지만 이런 것을 볼 때면 감성이 먼저지. 자네와 같지 않나 이건.”

그는 웃어보였다. 역시 나를 아는 것은 나에겐 친구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근히 감사했다. 우리는 교회를 둘러봤다. 그는 뭐가 그리 감사한지 매 걸음마다 멈춰 서서 기도를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구경만 했다. 나에게는 낯선 모습이었다.

  “자네는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하나?”

  “비밀일세. 비밀이야. 하지만 자네도 곧 알 수 있지 않을까싶네.”

  “참 자넨 비밀도 많아. 이 나이에 무슨 비밀이야.”

  “신과의 대화인데 당연히 비밀이지. 자네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지만 신보다는 아래 아닌가.”

그는 세상이 떠나갈 것 같이 웃어보였다, 나는 씁쓸한 것 같은 웃음을 지었다.

  “자네 말이 맞군. 지독할 정도로 맞아. 너무 지독해서 화가 나는군.”

  “이 세상에 자네를 놀리는 것 보다 재밌는 일은 없을 거야. 이제 구경도 다 했으니 들어가지.”

  “그러지. 춥구만.”

우리는 발을 옮겼다. 친구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 근데 어떤 마음으로 왔길래 옷을 그리 입었나?”

  “무슨 말인가 그게. 나는 일을 시작한 이래로 수트를 입지 않은 날이 없네. 그리고 항상 내 규율 속에 입는다네. 오늘도 그런 규율 속에 지나가는 하루일 뿐일세.”

  “이런. 또 한 번 놀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진지해지기만 했군. 그런 의미의 질문은 아니었네. 그냥 농담이었지. 자네의 긴장감을 풀어주려 말이야. 사실 오늘도 내 고집 때문에 나온 것 아닌가.”

친구는 교회의 문을 열며 말을 이었다.

  “정말 아름답군. 정말 아름다워..”

  “무엇이 그리 아름답나. 교회가 다 거기서 거기지. 얼른 자리에나 앉읍세.”

  “예술의 한 부분을 했던 사람이 그렇게 말해서야 되겠나! 이 감동은 느끼기 참 힘든 것일세.”

  “나도 알아. 근데 난 이 분위기가 싫을 뿐일세. 옛날 기억도 나고 좋지 않았던 기억들도 나고 말일세.”

나의 표정은 아마 매우 좋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의 표정이 미안함으로 가득 찼으니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좋은 날 계속 짜증만 내어 미안하군. 자네가 하도 부탁하여 왔지만 역시 교회란 공간은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네. 자네의 사정도 그렇고 나는 서툴러 위로도 잘 할 줄 모르니 이게 최선이었을 뿐이야. 그래도 옛날의 생각이 그리 나쁘진 않구만. 늙은 것이겠지. 사실 그 기억들로부터 피하려 했던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이제 그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없으니 나도 오늘은 나를 용서해볼까 한다네.”

나는 말을 했지만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용서라니. 그것도 나를. 친구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역시 내 마지막 옷은 자네가 지어야겠어..”

나는 못들은 척하고 대화를 이었다.

  “자리에 앉지.”

친구는 앉아 손을 모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도했다. 일찍 와서 아무도 없는 예배당이었지만 그가 기도하고 있는 모습은 예배당이 꽉 차보였다. 아니 꽉 차있다기 보다 그만의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이 꽉 차보였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다. 예배당은 사라져 보일 정도였다. 나에게는 텅 비고 싸늘하게만 느껴지는 그 공간을 다르게 느끼는 친구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나는 존재하면 안 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부담감은 점점 심해지기만 하고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피난처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요했다. 그러나 생각을 해봤을 때 나는 이것을 피하기만 했다. 싫고 불편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친구에게 무의식과 같은 상태에서 용서하겠다는 나의 실언과도 같은 말도 떠올랐다. 그렇기에 나는 손을 모았다. 기도를 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무엇을 기도할지 몰랐다. 어렸을 적 기억을 되살려 어머니의 기도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항상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우셨다. 나는 모았던 손을 풀고 성경책을 가지러 가려 일어났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우지 못한 날 위해 성경책 앞엔 그 두 기도가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내가 일어나는지 마는지도 모른 채 기도를 하는 것 같았고 일어서서 보는 친구의 모습은 어딘가 절박해보였다. 나는 가만히 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세상에 그 누가 절박하지 않겠나. 나도 그랬다. 나도 그때 신을 찾았다. 교회에서 울면서 기도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원하는 기도의 응답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래서 떠났다. 오히려 증오하는 마음이 컸다. 무엇을 위한 종교생활이었을지는 몰라도 내 마음은 거기 있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나의 마음은 극으로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 종교는 그 무엇도 나를 구원하지 못했다. 다들 나를 보고 죄인이다 떠들 뿐이었고 모든 것이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핀잔만 놓았다. 그리고 몇몇은 패거리를 형성하여 누구의 믿음이 좋네 어떻네 했다. 나는 그때마다 ‘그걸 자기네들이 어떻게 알지? 보이는 행동만 좋은 것이 믿음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인증을 받는 것인가? 왜 남을 자기들이 평가하지? 왜 패거리를 만들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지?’ 라고 부정적이고 되바라진 생각만 했었다. 나의 상황과 남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시각이 나를 여태 배척했던 것이다. 문득 ‘결국에는 다 나의 문제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힘든 상황을 도와달라고 빌 었지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남의 평가나 전부 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결국 나의 욕심과 나의 시각 때문이었다. 나는 싫어서 교회를 떠났지만 그건 결국 내가 싫은 것이었다.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다 신이 판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피했으면 됐지 않았나싶다. 친구의 절박해 보이는 모습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처음 일어났을 때와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성경책을 가지러 가려 발을 옮겼다.

  “어디가나 자네?”

친구가 나를 멈춰 세웠다.

  “성경책을 가지러 간다네. 자네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구만. 다녀오게. 난 자네가 도망가는 줄 알고.”

친구는 대답하며 웃고 하던 기도를 이어나갔다. 무언가 그 모습을 보니 해맑게 미소가 지어졌다. 성경책을 가지러 가는 길에 목사님으로 보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제발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르신,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처음 오셨나봅니다.”

나는 당황과 어색함을 급급히 숨기며 답했다.

  “사실 한 50년도 더 전에 왔었지만 오랜만에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의미있는 예배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좋은 날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목사로 보이는 그는 미소를 띠며 목인사를 하고 갔다.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다른 인사였다. 나는 일장연설을 생각했지만 그와는 아주 다르고 반가운 인사였다. 족쇄가 떨어져 나가는 듯 한 무언가 산뜻한 마음이 된 것 같았다. 성경책을 챙겨 자리에 다시 앉았다. 성경책을 펴고 기도문을 읽기 시작했다. 이 나이에 부끄럽지만 이렇게 집중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읽은 것은 처음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외우라 해서 글자만 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심이었다. 처음으로 집중해서 해석한 그 기도들엔 ‘내’가 없었다. 내가 방금 깨달은 것은 사실 너무나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여태 나는 기독교를 잘못 알고 있었다. 더 나아가 나의 종교관이 잘못됐다고 생각도 들었다. 나의 종교관은 대피처이자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기도문에서 그것들을 찾을 순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지금 깨달은 내가 후회되진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고 이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내 믿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모르는 공식의 해법을 찾은 것만 같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냥 그 정도의 쾌락일 뿐이었다. 나는 그 쾌락을 안은 채 기도문만을 곱씹으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각각의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모습으로 교회에 존재했다. 이런 다른 존재들이 종교라는 곳에 뭉치는 모습은 신기해보였다. 예전에는 나 자신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남들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가 절박해보였다. 이 절박은 부정적인 느낌이 아닌 긍정의 느낌도 들었다. 그 모습들을 보며 ‘나는 절박한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부정의 절박은 너무나도 쉬운 것이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긍정을 간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긍정의 절박은 무엇인가. 나는 부정에서 절박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절박이고 뭐고 다 떠나보낸 곧 죽음을 앞둔 늙은 할아버지일 뿐이다. 근데 내 친구는 달랐다. 그는 절박했다. 나의 눈에는 그는 부정의 절박이 아니었다. 무엇이 그를 나와 다르게 했는지는 조금의 고민으로 해결이 되었다. 그건 이 교회라는 공간이었다. 나의 결론은 긍정의 절박은 기독교인이 갖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긍정의 절박을 무엇이 불러일으키는 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찬양대원들이 자리를 채우고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여러 악기가 비어있는 공간을 채웠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오랜만에 느끼는 황홀감이었다. 난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좋군.”

  “무엇이 좋나.”

  “음의 살아있음이 좋네.”

친구는 나의 답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곧 찬양이 시작될 거야. 더욱 좋아질 일만 남았구만.”

우리는 찬양의 시작을 기다렸다. 찬양대는 준비된 듯 조용해졌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아름다운 선율과 목소리가 합쳐지니 무언가 모를 벅참이 차올랐다. 나는 눈을 감고 찬양을 가만히 감상했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캐롤과 같은 찬양들이 이어지고 그 수가 무척 많았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두, 세 곡이면 끝나는 것이 그 이상으로 이어졌다. 음악이 끝났음에도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아 나는 눈을 떴다. 그 많던 노래를 부르던 성가대원들은 내려가고 몇몇의 성가대원만 남았다. 친구가 말했다.

  “기대하게. 엄청난 것이 나올 것 같구만.”

  “뭔데 그러..”


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음이 펼쳐졌다. 난 속으로 외쳤다. ‘베토벤!’


친구는 내 취향을 간파하며 말했다.

  “자네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아닌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맞네! 교향곡 9번의 4악장! 실러의 시지. 그 시는 너무나 아름다워 그리고 희망차지! 베토벤은 어떻게 그것을 이리도 완벽하고 아름다고 심지어 성스럽기까지 하게 표현했는지! 이 곡을 교회에서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운이 좋을수가”

친구는 선한 미소로 질문했다.

  “오길 잘했지?”

나는 약간은 흥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고 말고! 이건 정말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네! 이제 조용히 들읍세”

  “그럽세”

친구의 그러자는 대답은 들은 기억이 없다. 나는 어린아이마냥 신나서 들었다. 음악이 끝나가는 것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졌다. 찬양의 대서사가 마무리되며 예배가 시작되었다. 기도가 시작되었고 그 신나던 분위기는 성스럽게 변했다. 말씀이 이어졌다.


요한복음 12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크리스마스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듯 한 말씀이었다. 죽음이라니. 이 축복할 날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지한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나니 내 생각은 바뀌었다. 이것만이 유일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그런 말씀이었다. 나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 친구는 말씀을 들으며 눈물을 훔쳤으니 내 친구 또한 그랬을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래서 각오와 함께 친구에게 말을 했다.

  “내가 자네의 마지막 옷을 짓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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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JUL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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