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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자의 옷장 Dec 23. 2022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1)

소설의 제1장

안녕하세요. 패션 알려주는 남자입니다.


소설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이 소설의 시작입니다.


아마 중단편 정도의 분량을 예상합니다.


재밌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장



  “신이시어, 저는 오늘 죽습니다.”

  “아니. 너는 오늘 죽지 않는다. 너는 아직 사람을 구하지 못했느니라.”

잠에서 깼다. 92세의 나는 오늘 죽을 작정이었다. 내 의지가 아닌 내 나이이자 내 몸이 그렇게 말했다. 사실 난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죽음의 문턱 앞에서 신을 찾게 됐다. 꿈속에서 내가 찾은 신은 누구인가. 나에게 대답한 이는 나인가 아니면 신인가. 복잡한 머리속을 뒤로 한 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늘은 아직 어둡고 찬 바람은 창문 틈으로 들어왔다. 머리를 맑게 하고자 창문을 열었지만 거리는 온통 안개로 꽉 차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집들에 불들이 켜지는 것을 보니 출근을 준비하고, 길을 보니 이미 수레에 짐을 잔뜩 실어 하루를 시작한 이들과 술에 취해 길에 누워있는 이들이 보였다. 그 순간 추위에 나의 입김이 겹쳐 보였다.

  “확실히 살아있구나.”

나를 떠난 숨의 모습을 보며 안도감과 무언가의 경외심이 들었다.

‘92년 평생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꿈에서 외친 누군가의 말대로 사람을 구한 적이 있는가?’

머리를 맑게 하고자 창을 열었지만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이 나이에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다. 나이에 떠밀려 은퇴한 나는 출근 준비를 할 일도 없어 쇼파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는 신문도 책들도 지겨운 것들 뿐이다. 그렇다고 사색이 좋지만도 않다. 나에게 매일은 이세상을 떠나 죽음을 맞이하는 하루임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나는 누군가를 구했는가..’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어린 시절 냇가에서 얼굴이 기억도 나지 않는 친구를 구한 것이 구한 것인가.

  “그게 구한 것이었으면 난 오늘 죽었겠지..”

나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꿈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나 하나 남은 친구한테서 만나자는 편지가 도착했다. 하나 남은 친구라기엔 평생을 같이 한 친구는 그 친구 하나뿐이긴 하다. 서로 거동이 힘들어져 10년 넘게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편지만 가끔 주고 받고 있다. 받은 편지는 내 손의 주름마냥 꼬깃꼬깃했다. 이 친구는 항상 그랬다. 자유로운 초인과 같았다. 이 편지도 그 자유로움속에 쓰여졌으며 어디 자유로이 뒀다가 보낸 것이라 믿으며 나는 편지를 뜯었다.


그리운 나의 오랜 벗에게.

오랜 친구여 잘 지내고 있나. 난 작년에 아내를 잃었다네. 혼자는 힘들구만. 그래서 난 나를 정리하기 위해 가벼운 여행을 떠나려 하네. 자네를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지. 이 이야기를 급작스레 해서 미안하네. 아내의 죽음을 늦게 이야기 한 것도 말일세. 자네가 서운해 하지 않았으면 한다네. 나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야. 자네와는 나눌 이야기가 아주 많네. 우리의 옛날 이야기들을 나누자면 죽을 날까지 시간이 부족하겠지. 자네와 이런 과거의 대화를 나누면 이 성난 마음이 좀 가라앉을까 싶네. 이젠 나의 과거를 기억해주는 이가 없기에 자네는 나에게 더욱 소중하네. 보름쯤 뒤에 자네 동네에 도착할 것이야. 그 전까지 살아있길 바라네. 그럼 그때 꼭 보세.

자네를 그리워하는 오랜 친구가.


편지에는 자유와 고통이 적혀 있었다. 꼬깃꼬깃함은 그의 자유로 인한 무심이 아닌 고통에 의한 우울인가 싶기도 하다. 걱정이 앞선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나는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알지 못한다. 그 고통을 공감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내 오랜 친구를 어떻게 맞아야 할 지 모르겠다. 아마 내 친구는 항상 그랬듯 웃으며 나를 맞을 것이다. 나는 웃으며 친구를 맞을 수 있을까. 내 얼굴 주름이 못 웃을 내 입을 대신하여 웃음을 표현해주었으면 한다.


보름이 지나 아침 일찍 벨이 울렸다. 벨이 울릴 일은 딱히 없으니 친구가 도착한 것임에 틀림없다. 청년과 같이 설레는 마음으로 난 문을 열었다. 친구가 아니었다. 어떤 청년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성탄절을 기념해서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이번 성탄절 교회에서 큰 행사가 진행되니 오셔서 은혜로운 시간과 맛있는 음식을 같이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전단지를 받아 들었다. 어린 시절 런던에 처음 왔을 때, 아는 사람을 만들고자 하여 몇 번 나갔던 교회였다.

‘아직까지 내 개인정보가 있나..?’

생각도 잠시 청년이 날 불렀다.

  “저기요..?”

내 생각보다 생각을 오래하며 서있었나보다. 청년의 시린 손이 보였다.

  “그래 내가 시간되면 꼭 가겠네. 추운데 고맙네 와서 차라도 들게”

어디서 나온 오지랖이었을까. 내 외로움이었을까. 아니면 저런 손자도 보지 못한 나의 죄에 대한 마주함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종교를 갖지도 않고 사람만을 사귀기 위해 들린 내 이기적이었던 과거에 대한 회개였을까.

  “그럼 잠시 괜찮을까요? 실례하겠습니다. 사실 정말 추웠습니다.”

청년은 내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늙은이 혼자 사는 집이 신기하기라도 한 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의 집을 둘러보았다.

  “잠시만 저기 앉아 기다리게. 내 금방 차를 내오겠네.”

나는 차를 준비했다.

  “집에 참 멋진 물건이 많네요. 특히 저 옷장은 정말 멋집니다.”

청년이 말했다.

  “난 옷을 짓는 일을 했네. 옷은 위대해. 그 위대함을 담는 곳은 더욱 대단해야 한다네.”

옷 짓는 일에 자부심도 없던 나는 어디서 나온 허세인지 모를 허세를 부렸다.

  “저도 옷을 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족한 것이 많지만 열심히 배우려 노력중입니다. 그래도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제 옷도 나중에 저런 옷장에 걸렸음 좋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옷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대답을 피해야했다.

  “자 여기 차네. 나는 조금 진하게 먹는 편이라 진하게 내렸는데 자네 입맛에 맞을 지 모르겠네.”

  “저도 진한 차를 좋아합니다.”

  “자네는 어쩌다 이 추운 날 전단지를 돌리고 있나. 그리고 아까 옷 짓는 일을 한다 그랬는데 지금은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이 아닌가.”

  “저는 사실 고아입니다. 교회에 버려져 지금껏 목사님 손에 자라왔습니다. 매년 성탄절은 제가 가장 행복한 날들 이었습니다. 마스터한테 이야기하니 웃으며 도우라고 보내주더군요. 정말 감사한 일들 뿐이네요.”

  “감사라.. 자네는 삶에 감사한가?”

  “물론입니다. 제 삶은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일을 하고, 매끼 밥을 먹으며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방금은 추워서 쓰러질 뻔 했는데 이렇게 들어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멋진 물건들도 구경하고 있지 않습니까. 감사함 뿐입니다. 제 삶은.”

나는 멍해졌다. 내 질문의 요지는 부모의 부재와 그들의 행동에 대한 고통이었다. 이 젊은이는 그 모든 것을 잊은 채 자신의 삶에 감사함을 표하고 있었다.

  “나는 꽤 오래 살았다네. 그만큼 전도하겠다고 나에게 붙는 사람들도 많이 봤지. 그들은 나에게 지옥을 얘기하며 나를 절대 죄인으로 만들었다네. 근데 자네는 이 집에 들어온 이후 종교에 대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자네를 고아로 만들었을 부조리한 신에 대해서도 원망없이 감사함으로 가득찼구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말을 마치고 청년의 표정의 변화를 보며 나는 내 말이 잘못 됐다는 것을 알았다.

  “미안하네. 늙은이의 실언이라고만 생각해주게.”

젊은이는 표정을 풀며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많이 듣는 이야기일 뿐인데요 뭐. 차 정말 잘마셨습니다.”

청년은 정리하며 일어났다.

  “성탄절날 꼭 뵀음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들어가게”

청년이 떠나며 한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평소였으면 흘릴 말이었을거다.

‘성탄절날 꼭 뵀음 좋겠다라.. 나는 실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았구만..’

그 순간 멀리서 누군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자네 문앞에서 뭐하고 있나! 정말로 그리웠다네 내 오랜 친구여!”

내 친구는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모를 느린 걸음으로 나에게로 와 껴안았다.

  “자네는 잘 걷지도 못하면서 목소리는 아직도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하구만 하하! 정말 오랜만이네! 정말 반가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은 그의 목소리만큼 호쾌하며 밝았다. 다행이었다.

  “문 앞에 그만 서있고 얼른 들어가세 친구여! 나눌 이야기가 산더미네!”

  “그래! 들어가세 자네는 분명 차를 연하게 마셨었지 내 금방 내오겠네.”

  “기억하고 있구만!”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만큼 집이 북적거린 적은 이 동네에 온 이레 처음인 것같다.

  “친구여, 아직 옷 짓는 일을 하고 있나?”

친구가 웃으며 물었다.

  “이보게.. 아닐세 나는 옷 짓는 일을 그만 두었네. 자네도 알지 않나. 나는 그 일에 아주 학을 떼었다네. 이 나이엔 너무 고되고 고통스러운 일이야.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세. 그만 둔지 십년은 훌쩍 넘었지. 아.. 이건 내가 말한 적이 없구려.”

내 말을 들은 친구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내가 또 실언을 했나 하여 곱씹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실언이 될 것은 없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별 거 아닌 일이네. 난 평생 먹고 살 돈을 벌었다네. 난 식솔도 없으니 이정도면 차고 넘치지. 걱정할 필요 없다네. 그리고 이젠 손도 젊은 날처럼 움직이지 않아.”

친구가 심각한 표정을 뚫고 운을 뗐다.

  “친구여 나는 자네의 재정상태를 걱정하여 이런 표정이 나온 것이 아니라네. 표정에 상처를 받았다면 미안하네. 너무도 편한 사람이라 그랬나보네. 사실 나는 큰 부탁을 하러 왔다네. 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입을 옷을 하나 지어주길 바랬지. 근데 불가능할 것 같구만.”

이런 부탁은 들어본 적도 적힌 적도 없었다. 누군가 죽는 날 입을 옷을 지어달라니! 이건 너무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아닌가. 다들 새 옷을 받으면 뽐내며 나가는 일이 대부분인데 자신의 마지막 날을 위해 지어달라니. 죽을 때 마저 멋지고 싶은 것이 내 친구의 마음인가! 나는 그렇게 가벼운 사람을 사귀었다는 것인가. 아니 내 친구는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었던가!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죽는 날에 입을 옷이라니. 나는 그런 옷을 들어본 적도 없다네. 무엇때문에 그런 부탁을 하는 건지 난 모르겠네.”

내 목소리는 조금은 높아졌다.

  “이보게 친구여.. 나는 멋지게 죽는 것은 원치 않아. 그것이 아니라 나는 제대로 죽고 싶을 뿐이야. 내인생을 이세상에서 가장 잘아는 사람은 자네뿐이고, 그런 내 인생을 표현해줄 수 있는 사람도 자네뿐일세. 나는 내 죽음에 완벽하게 오롯이 나인 모습으로 죽고 싶을 뿐이야. 절대로 멋같은 게 아니라고.. 아마 옷을 평생 지은 자네는 잘 알겠지 내 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 없었다. 이 말은 내가 바늘과 가위를 잡아온 70년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네. 나는 죽음을 위해 옷을 지어본 적이 없네. 아니 더 나아가 나는 멋쟁이를 위한 옷을 지었네. 내 옷이 멋지다며 나가는 손님들의 웃음에 나는 행복을 느꼈을 뿐이야. 내 옷은 멋져야만 했네. 그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었고 내 가치관이었네. 그들은 내가 추구하는 멋에 돈을 지불했고 나는 거기에 만족했지. 내 가치는 거기 있었다네. 내가 지은 옷으로 누군가 즐겁다면 그것이 얼마나 의미있고 벅찬 일인가!”

나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자네의 옷엔 삶의 쾌락이 함께 했구만. 쾌락을 지었어. 당신이 처음 바늘을 잡았을 때 했던 말을 난 기억하네. 옷이 아닌 사람을 짓겠다 했었지. 난 그 말을 70년 넘도록 믿었고, 자네가 그렇게 말을 하더라도 지금도 난 그렇게 믿고 싶네. 왜냐면 아직 자네의 손과 발은 제대로 움직이고 자네의 눈은 안경만 낀다면 제대로 보이지 않나. 자네가 십수년전에 바늘을 놓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자네의 경험을 믿는다네. 다시 바늘과 가위를 잡는 것이 어떻겠나. 아직 자네는 사람을 지을 수 있어.”

이 친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초인이라도 된 냥 내 위에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항상 그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만나도 나는 그의 말을 듣는데 화가 났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 말한 것 까지 들먹이는데 난 할 말이 없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던 기분이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하더라도 나는 너무 늙었다네. 더이상은 힘드네.”

커졌던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

  “나를 부디 구해주게.”

친구가 말했다. 구해달라! 초인과도 같던 그의 입에선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구해달라는 말인지 이해는 하지 못했으나 구해달라니! 나는 누군가를 구할 수 있나! 드디어 나는 죽을 수 있나!

  “구해달라.. 그 답은 지금 하지 못하겠네. 자신도 없고 말이지. 근데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네. 구해달라고 하여 생각난 것이야.”

친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게 무엇인가?”

나는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며칠 전 꿈을 꾸었다네. 누군지 모를 신에게 난 고했지 ‘오늘 죽습니다.’라고! 근데 그 신이 나에게 뭐라 했는지 아나?! 나보고 아직 사람을 구하지 않아 죽지 못한다는 것이네! 나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 근데 자네가 나보고 구해달라 한 것이네! 꿈이 마치 현실이 된 것 마냥 말이네!”

친구는 박장대소하며 대답했다.

  “오랜 친구여, 아직도 죽음을 노래하나. 자네는 그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노래했다네. 자네는 기억하나? 우리가 10대 중반인 어느 날부터 세상은 자네를 버렸다면서 죽음을 이야기했지. 20대 초반에도 그랬다네. 첫사랑과의 헤어짐때는 또 어땠나. 자네는 그때 죽음을 최고로 원했다네. 자네는 항상 그랬지. 매순간 그랬어. 자네는 아직 죽음을 노래하기에 나보다 훨씬 젊구만.”

친구는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며 내 눈을 뚫어지듯 응시했다. 그리고 잡아먹을 듯한 두려움을 나에게 내뿜으며 친구는 말을 이었다.

  “아직 우린 젊다네. 우리는 영원히 젊을 것이야. 아니 오히려 갓난아기때와 같을 수도 있지. 늙는 것은 이 몸뚱아리 뿐이거든! 자네의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자네가 구해야 할 것은 아마 내가 아닐세. 아니고 말고. 내가 구해달라는 것은 내가 아니야. 오히려 자네라고 하면 그게 맞겠군. 자네가 자네를 구하는 것이 나를 구하는 것이라네. 그렇기에 자네는 내 죽음의 옷을 지어야 해. 그게 아마 자네의 구함을 위한 시작일걸세.”

친구는 또 다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신이 누군지 알 것 같구만.”

친구는 또 내가 알 수 없는 말을 떠들었다. 짧게 끝내고 싶던 내 고민은 이제 깊은 심연으로 빠졌다. 나는 그의 말에 굴복했다.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네. 이 말을 기어코 또 하게 만드는 군 자네는. 나는 조금의 변명을 해보겠네. 나는 아주 불운해. 운이라고는 타고나지 않았지. 자네가 말한 십대 중반의 나는 실패자임을 깨달았어. 물론 지금까지도 똑같다네. 난 계속 실패자야. 내가 실패자임을 깨달은 것은 내 삶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감을 알았을 때라네. 나는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길이 있었어. 집에선 반대가 심했지만 나는 있었네. 그게 내가 집을 나온 이유야. 집은 따뜻했지만 밖은 그렇지 않더군. 나는 매일을 그 차가운 고통속에 버텨야 했다네. 그 누구도 나를 이끌어 줄 수 없었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여기 새빌로로 와 양복점에 들어갔어. 그리고 무릎을 꿇어 빌었지. 제발 받아달라고 말일세. 마스터는 사람이 참 좋았어. 그런 나를 받아주고 나를 키워주었지. 나의 부모님보다 나를 믿어줬다네. 나는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는 게 재밌었다네. 아까 말했듯 멋을 짓는 일이 좋았어 나는 그것을 부모님의 옷장을 보며 배웠기에 말일세. 하지만 난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깨달았지. 나는 마스터와 같은 테일러는 될 수 없었다네. 그렇게 나는 뒷방에서 옷만 짓다 나에게 지쳐 은퇴했다네. 부모님이 옳았을 수도 있겠군. 내 인생은 잘못되었어.”

친구의 표정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침묵했다. 친구는 침묵을 깨고 입을 뗐다.

  “자네의 말엔 어폐가 있군. 자네는 불운하다면서 운을 이야기했네. 새빌로에 몸을 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그 어려운 곳에 들어간 것도, 그곳에서 좋은 마스터를 만난 것도 운이 아니고서야 어찌 해석할 수 있겠나. 그리고 그 늦은 나이까지 자네가 새빌로를 지켰는데 그것은 또 운이 아니면 어떻게 설명할 건가. 자네는 운이 있었어. 실력도 있었지. 자네는 이상이 너무 높았을 뿐이네.”

  “내가 내 고통에 대해 말을 덜 한 것 같구만. 그것이 운이라면 운이겠지. 근데 그것이 운이 아니라 운을 가장한 불운임을 알면 사람은 붕괴된다네. 마치 나의 사랑의 실패가 그랬지. 우리는 어린 시절 단테를 존경했어. 그의 사랑의 방식이 가장 옳다 생각했지. 우린 베아트리체를 만나고자 했지 않나. 나는 베아트리체를 만났다네. 근데 그녀는 매몰차게 떠났어. 자네와 내가 사랑한 베아트리체는 그냥 단테가 집착한 사랑의 방식이었을 뿐이야. 그것이 순수하긴 하지. 그것보다 순수한 것이 어딨겠나. 하지만 우리는 놓쳤어.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둘이 평생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야. 단테를 보게 얼마나 고통속에 살았나. 그 고통은 평생에 목을 죄어오는 고통이야. 나라고 그렇지 않았겠나. 나는 단테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그를 너무 닮아버렸다네. 사실 내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야. 일이 바쁘다? 내 실력을 더 키우겠다? 그건 다 개소리였을 뿐이야. 나를 위한 보호장치였을 뿐이지. 나는 거짓말쟁이로 살아왔네. 이 순수함도 이상이라면 이상이겠지. 단테처럼 나는 나만의 베아트리체를 천국에 올려놨을 뿐이야. 그녀를 만났을 땐 다 좋았지. 심지어 나는 신에게 감사기도 또한 올렸었네. 얼마나 감사한지! 내 인생에 그렇게 큰 감정의 동요와 목적의 동요는 또 없었을 거야. 그것이야 말로 큰 운이었지. 근데 그것이 꺾이면 우리는 가늠하기 힘든 고통을 맞이하네. 난 그녀를 천국에 올려 놓았지만 평생을 지옥에 살고 있단 말일세. 이 이후로 삶의 목적이 없어. 그 누구도 나에게 삶의 목적과 뜻을 제공하지 않았단 것이네. 이것보다 고통과 부조리한 삶이 또 어딨겠나. 삶에는 목적이 있어야 해. 그래야 우리는 삶을 포기할 수 없지 않나. 나는 고통에 대한 죽음을 이야기 했다면 그녀가 떠난 후로는 목적의 부재에 대한 죽음을 이야기 했네. 나는 이 모든 것을 빨리 끊어버리고 싶었어.”

친구는 말했다.

  “자네는 너무 감정적이야. 감정의 이상이 너무 높아. 우리는 현실을 볼 줄도 알아야 해. 자네도 알지 않나 현실과 이데아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아니!”

나는 소리쳤다.

  “사람은 감정이 전부일세! 감정의 동요가 없다면 그것은 죽은 사람일 뿐이야! 감정이 없는 사람은 시체와 다름없지 않은가!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네!”

  “그럼 자넨 어떤 감정으로 옷을 지었나. 사랑? 분노? 오늘 자네의 말을 듣기로는 자네 옷엔 사랑이 없었을 것 같네. 자네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삶에 대한 분노로 옷을 짓지 않았나? 아까 말한 자신의 실력 부족은 또 자네가 만들어 둔 방어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들리는데 그것이 맞나?”

나는 침묵했다. 무언의 긍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으로 옷을 지어주게. 나를 사랑한다면 말일세. 난 자네에게 무엇을 부탁한 적이 없지. 이것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일세. 자네를 구해주게.”

나는 고민했다. 아마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격해진 감정속에 차가 있었던 지도 까먹었는데 고민이 끝나고 차에 입을 대니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알겠네. 내 노력해봄세. 근데 나에게 그 의미를 고민할 시간을 줘야 해.”

친구는 미소를 띠었다.

  “고맙네! 시간을 주고 말고! 역시 자네라면 가능할 것이야.”

나는 한가지 질문을 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아까 말한 신을 알겠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신이라.. 이미 자네도 알고 있을 것 같네. 여기 이 전단지도 있지 않나. 성탄절에 약속이 없다면 나랑 이 교회에 나가보세. 당장에 모레군!”

  “하하 그 부조리한 신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그 전단지는 부조리를 타고난 어느 젊은이가 주고 간 것이라네. 난 그 젊은이의 삶에서 슬픈 부조리를 보았어. 나는 부조리를 마주했을 때 죽음을 말했지만 그는 감사를 말하더군. 난 그 의미가 궁금했지. 근데 참 웃기지 않나? 나도 그 신을 알아. 그 신을 찬양하는 예배당도 다닌 적이 있지. 거기는 이유없는 감사와 찬양이 가득 찼었네. 근데 더 가관인 것은 뭔 줄 아나? 다들 고통속에 자신을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야! 그것이 어떻게 감사이고 찬양인가! 나는 그런 부조화는 본적이 없네. 그렇게 전지전능하다면 고통을 해결해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 신이 아닌가. 자식이라면서 고통속에 두는 것이 부모의 도리인가? 난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런데도 그 젊은이는 그 어떤 불평 없이 감사를 표하더군. 그래서 내가 보고 이해한 것들이 틀렸나 생각했네. 다시 한 번 나가서 내 눈으로 보고 싶었어. 혼자 가긴 좀 그랬는데 자네가 있다면 좀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구만.”

  “하하하 자네의 말은 틀린 것이 없네. 오랜 친구여 자네는 아주 제대로 보았어. 이미 사랑의 첫 단추를 잘 꿰었구만. 역시 옷을 짓는 사람은 뭐든 잘 꿰는군. 자네가 본 것은 첫 단추일 뿐이야. 그 다음 단추는 모두가 다르다네. 같은 것이 아니야. 그 단추는 나도 내 것 밖에는 알지 못하네. 자네의 것은 자네가 풀어야 해.”

친구는 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했다. 지쳤다. 나는 주제를 돌려야 했다.

  “근데 자네 숙박은 어쩔 셈인가? 우리집에서 자게. 나 혼자 있기엔 집이 너무 넓네. 방도 충분하고 말이지.”

  “아냐 이 앞 호텔을 예약해두었네.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이상 난 손님이야. 손님이 자네 집에 머무를 수 없지. 근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난 가볼 곳이 있다네. 젊은 시절 아내와 갔던 곳을 돌아다닐까 한다네.”

맞다. 이 친구는 아내를 잃었다. 만난 순간부터 완벽히 잊고 있었다.

  “식사라도 하고 가지 어디를 간다는 것이야. 나갑세. 같이 걸으며 식사도 하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게. 내가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닐세. 혼자 다니고 싶어. 자네와의 식사는 성탄절로 미루지. 그럼 그 날 아침 9시에 교회 앞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고 난 이만 일어나보겠네.”

나는 그의 슬픔과 기억을 이해해 주었어야 했다.

  “그래 그러지. 그럼 성탄절에 보기로 합세. 날도 추운데 늙은 몸을 이끌고 고생이 많겠구만. 조심히 가게.”

  “조심해야할 나이긴 하지. 이 나이가 아직도 난 익숙치 않구만.”

우리는 웃었다.



* 이 글 등 패션 알려주는 남자, 남자의 옷장으로 적히는 모든 글의 저작권 및 아이디어는 패션 알려주는 남자, 남자의 옷장 본인에게 있습니다.


23DEC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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