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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자의 옷장 Oct 22. 2023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10)

소설의 제10장, 그리고 마지막.

청년은 어린아이와도 같이 우는 나를 가만히 두었다. 그는 자신이 위로를 할 수 없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청년에게 말했다.

  “저녁 즈음에 내 집으로 와줄 수 있겠나? 못한 얘기는 그때 하지. 지금은 혼자 있고 싶네.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제 무례함에 용서를 빌겠습니다.”

  “무례하다니. 오히려 고맙네. 나는 깨달았어! 일단 난 집에 얼른 가야겠네. 가기 전에 부탁하나만 하지. 연필과 편지지 한 장만 줄 수 있나.”

  “네.”

청년은 내가 부탁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오랜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왔다는 그것을 끊어 내야했기에 당장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먼저 해야 했다. 나는 다 적은 편지를 들고 청년에게 급하게 인사를 한 뒤 교회를 뛰쳐나갔다. 나는 구두를 닦을 일도 없으면서 내 구두를 닦아주던 청년을 찾았다. 일요일이라 있을까 싶었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을 생각으로 급하게 갔다. 다행히 청년은 구두를 닦고 있었다. 나는 인사도 없이 편지를 내밀며 말했다.

  “자네! 자네는 이 편지를 들고 여기 적힌 곳으로 가게나! 자네가 진심으로 구두를 사랑하고 구두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당장에 이것을 들고 가게!”

  “깜짝 놀랐습니다. 마스터, 갑자기 왜 이러시나요?

  “이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일세! 나를 용서해주게나!”

  “저는 마스터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자네는 구두를 만드는 삶을 살고 싶나?!”

  “저야 그게 꿈이기는 합니다.”

  “그게 만약 거기 적힌 그 곳이라면 어쩔텐가?”

  “그건 정말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영국 최고인 곳에 제가 어떻게 가서 배울 수 있겠습니까.”

  “방법이 있네! 이 편지는 내 추천서야 서명까지 다 해놓고 자네를 보내는 이유도 다 적어놨지. 그곳의 주인은 나와 오랜 친구일세. 내 추천서를 진지하게 받아 줄 거야. 진짜로 자네가 하고 싶다면 그냥 이것을 들고 가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 그 다음은 자네가 쟁취해야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배우게 된다면 라스트를 만드는 일부터 꼭 꼼꼼하게 배우게나. 남성복은 그렇게 존재해야하니 말일세.”

  “추천서와 조언은 감사합니다만 갑자기 왜...?”

  “그냥 받아! 그럼 난 가겠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음 내 집으로 찾아오고. 잘 있게나.”

나는 주소를 알려주고 자리를 피했다.

  “마스터!”

손님 때문에 자리를 피할 수 없던 청년은 나를 계속해서 불렀지만 나는 들은 채도 하지 않고 서두르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러한 선행은 나의 죄를 조금이라도 상쇄시키려는 발악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침대에 올려놨다. 죄를 마주하고자 했다. 나는 운을 떼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그저 잘못을 비는 아이마냥 일단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 이상의 말은 또 실언이 될까, 내 죄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몰려왔다. 나는 나의 잘못을 일일이 꺼내고자 하였다. 어린 날의 거짓말과 부모님께 지은 커다란 죄,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 죄, 말을 함부로 한 죄, 내 인생을 낭비한 죄, 교만한 죄, 내 자신이 항상 우선인 죄 그리고 삶을 소중히 하지 않고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랑이 그 고통과 감정이 나를 죽이고자 한 것을 받아들인 죄. 나의 죄는 끝도 없었다. 나는 놓친 것은 없나 꼼꼼히 찾으며, 소리치며 용서를 빌었다. 나는 죄를 고하였음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엔 시간이 없었다. 급하게 생각난 구두를 닦아주던 청년을 위하는 정도밖에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띵동-

도어벨이 울렸다. 아마 청년일 것이었다. 나의 생각보다는 일찍 왔다. 나의 몰골은 남이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나는 추위에 내 장단에 맞춰준 청년을 밖에 세워둘 수 없어 이불에 얼굴을 비비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청년이 아니었다.

  “자네 왔는가. 잘 왔네.”

  “안녕하세요. 곧 다시 돌아가게 되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친구의 아들이었다.

  “내 지금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일단 들어오게. 날이 춥지. 여기 앉게나.”

  “네, 그럼.”

  “뭐라도 마실텐가?”

  “아니오 괜찮습니다 금방 가야돼서요. 정말 인사만 드리려 들렸습니다.”

  “그렇구만.”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야. 난 한 게 없어 그때 만난 그 청년 기억하나?”

  “네.”

  “그 청년이 다 해주었네. 내가 한 건 없어. 내가 한 것이라고는 누워서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을 본 것뿐이 없다네. 정말 교회와 그 청년이 다 해주었지. 일면식도 없는데도 말이야. 참 감사할 뿐일세”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전하지 못했군요... 아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말해보게.”

  “옷을 다시 만드십니까?”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나?”

  “아버지께서 저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 그런 이야기가 적혀있어 여쭤보았습니다.”

  “이미 주인 잃은 옷이 된 것이 하나가 있지. 한 번 보겠나?”

  “네 그러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리로 오게나.”

나는 옷이 있는 방으로 인도했다. 나를 노려만 보던 그 옷은 온순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띵동-

도어벨이 울렸다.

  “또 올 손님이 계셨나요? 전 그러면 가보겠습니다.”

  “아니야. 아마 자네는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구만. 그 청년일걸세 여기서 기다리게나.”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조금 일찍 왔을까요?”

청년의 손에는 무언가 들려있었다.

  “아닐세 딱 맞는 타이밍에 왔어. 자네를 보고 싶어 하는 손님도 와있으니 얼른 들어오게나.”

  “네. 그리고 이건 죄송의 의미로 빵을 좀 사왔습니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오히려 내가 대접을 해야 하는데 말이지... 그래도 일단은 손님을 혼자 둘 순 없으니 자네도 이리 따라오게나. 이것을 보여주려고 불렀어.”

  “옷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여기 인사하지. 아까 말한 그 청년일세. 자네의 아버지이자 내 친구의 마지막을 지켜준 은인일세.”

  “그땐 경황이 없어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인사를 드립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그 빚을 갚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주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마음 한 편이 편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네요.”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제가 다른 의미를 품고 행동한 것처럼 보입니다. 제 순수한 존경심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인사가 끝났으면 이제 옷을 보지.”

우리 셋은 조용히 옷을 바라보았다. 친구의 아들은 조용히 구경 중에 입을 열었다.

  “이 옷은 그럼 어떻게 되는겁니까?”

  “이미 주인을 잃었으니 방법 있겠나. 그저 주인없는 천쪼가리가 된 것이지.”

  “제 아버지께서 유언으로 그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사실 그런 말을 하실 분이 아닌데... 자신의 옷장을 저에게 물려준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옷이 여기 있으니 가서 꼭 봐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친구도 참...”

친구는 우리가 나눈, 마지막으로 나눈 옷이 가진 철학적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것의 고귀함을 기억해주었다. 감사했다. 친구는 죽어서도 날 위해주었다. 나는 멈췄던 말을 다시 이었다.

  “친구와 사이즈도 비슷해 보이는데 자네가 그럼 한 번 입어보겠나? 이미 주인을 잃은 옷이지만, 유일하게 입을 자격이 있는 다른 주인이지 않나.”

  “그래도 되겠습니까?”

  “피팅일 뿐인데 안 될 것도 없겠지. 트라우저부터 갈아입고 저기 거울 앞에 서게나.”

친구의 아들은 트라우저를 갈아입고 나왔다.

  “자 이제 재킷을 입지. 내가 도와주겠네.”

  “네.”

  “이제 몸에 힘을 풀고 편하게 서보게나.”

완벽했다. 달빛에 비춰 아름다움을 느끼던, 친구의 죽음으로 내가 욕했던, 나를 노려만 보았던 그 옷은 너무나도 완벽하고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선 아름답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진정한 뜻이 내 친구가 아닌 여기에 있었던 듯 싶었다. 나는 또 내 감정에 휘둘려 눈앞에 것 밖에 보지 못했었다. 나는 속으로 다시금 회개하였다.

  “원래 주인이 자네인 것만 같이 잘 맞는군. 고칠 것도 없어 보여. 옷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자네를 위해 태어난 옷 같네.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무지한 인간이지만 옷이 참 편하고 좋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었군요...”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제가 선생님의 옷을 제대로 본 적은 없으나 제가 본 옷 중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건 옷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사람과 옷이 하나가 되어 그 어떤 것도 튀질 않습니다. 저는 이런 것은 처음 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옷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나는 이 옷을 완성시켜야겠네. 자네가 이 옷의 주인이 되어 주게나.”

나의 회개였다.

  “제가 받아도 되는 것입니까?”

  “물론이고 말고. 자네만이 이 옷의 주인이야. 그럼 이제 하나하나 손을 보지. 나를 좀 도와주게.”

  “네. 영광입니다.”

청년은 나를 도와 옷의 구석구석을 맞추어 나갔다. 마무리가 끝나고 친구의 아들은 나의 집을 나서려 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희 집안은 정말 많은 빚을 지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게. 내가 자네 아버지께 받은 것이 더 많아. 오히려 다행일세. 그럼 2차 피팅도 봐야하니 돌아가는 것을 조금 늦출 순 없겠나?”

  “얼마정도 더 있어야 할까요?”

  “2차 피팅까지 넉넉하게 1주면 좋겠군. 마무리까지는 한 3일만 더 있으면 좋겠고, 혹시 괜찮나?”

  “네 무리 없습니다.”

  “그럼 다음 주 일요일에 다시 여기로 와주게. 그때 피팅을 보고 그 다음에 마무리를 하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오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두 분 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잘 챙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게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옷의 새로운 주인은 집을 떠났다. 나는 청년에게 친구의 유언을 전할 참이었다.

  “자네를 내가 사실 오늘 보자고 한 것은 친구의 유언 때문일세. 친구가 자네를 제자로 받으라고 하더군. 자네에게도, 자네의 마스터에게도 무척이나 실례되는 일인 것을 알고 있네. 사실 가볍게 물어볼 심산이었지만, 나는 오늘 자네 덕에 알게 된 것이 있네.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어. 저 주인을 잃었던 옷을 다시 만들겠다고 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야. 그러나 나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기 때문에 자네에게 제자로 들어오라고 할 수도 없네. 그렇기에 부탁 하나만 하지. 정말 괜찮다면 저 마지막 옷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순 없겠나?”

청년은 고민에 빠져보였다. 나는 그 고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사실 나의 고집이자 부탁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제가 마스터에게 부탁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저는 오전에 말씀드렸듯 선생님이 쌓아 오신 테일러링의 역사와 마음가짐 그리고 옷을 향한 해석을 존경합니다. 그것이 테일러들의 진정한 길이라고 생각도 했고 말이죠. 그리고 오늘 본 그 옷은 제가 생전에 처음 보는 옷이었습니다. ‘옷은 원래 이렇게 존재해야하는 것이구나.’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옷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너무나 위대한 옷이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늘 제가 느낀 것은 그 아드님께서 어떠한 분인지를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를, 그 안에 옷이 어떻게 위치해야하는지 깨달은 것뿐이었습니다. 제 손이 그 위대한 옷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면 저도 무척이나 하고 싶습니다.”

  “고맙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게나.”

나는 연필과 편지지를 가져와 내 뜻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이거는 자네의 마스터에게 전하는 내 글일세. 부탁 할 때 꼭 전달해주게나. 내 회개에 동참해주어 고맙네. 나는 여태 구원받고자 했어. 그리고 저 옷을 만들 때 느껴지던 감정과 아름다움이 나의 구원인가 싶었고, 친구와 나눈 구원의 이야기가 이제야 실현되는 듯 했지. 그러나 친구가 죽고 저 옷이 천쪼가리가 되었을 땐 내 구원 평생에 없어지고 나는 고통인 줄 알았다네. 참 웃기지 않나? 나는 다 포기하고 또 욕만 했지만 진정한 뜻은 거기 없었더군. 그 구원조차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었네. 이리도 오만한데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나는 이제 무엇을 판단하기는 너무나도 두렵지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게 남은 것은 진심으로 저 옷을 마무리 짓는 것뿐일세. 그것이 나의 회개인 것을 자네와 친구의 아들덕분에 깨닫네. 이것이 진짜 내 구원이었어. 자네의 말대로 나는 너무 교만한 상태로 악마의 속삭임에 휩쓸려 많은 시간을 낭비했구만. 나는 저 옷을 마무리하며 내 모든 것을 자네에게 알려줄 생각이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남길 것은 없고, 남는다고 하더라도 고통밖에는 없을 줄 알았지. 내가 하던 일조차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니 아마도 그랬을 것이야. 근데 저 옷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런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고통안의 감사라니... 마치 가죽옷을 선물 받은 것 같구만.”

  “잘은 모르겠지만, 또 주제 넘는 이야기이겠지만 사랑을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사랑으로 그 옷이 만들어졌기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내가 저 옷을 만들며 든 생각과 감정들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어. 그리고 옛날처럼 집착하지도 분노스럽지도 않았지. 아예 내가 사라진 기분마저 들더군. 이 중요한 것을 마지막에나 되어서 깨닫다니... 역시 나는 너무 어린 애송이야. 내 삶이 아깝군...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자네덕분에 할 수 있음에도 감사할 일이구만.”

내 입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감사가 나왔다. 평소처럼 의식하거나 버릇처럼 말하는 감사가 아닌 진정한 감사였다. 나는 나에게 놀랐지만 이제는 이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제가 내일쯤 소식을 들고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주면 정말 고맙겠네. 자네를 알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군.”

  “저도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맙네. 조심히 들어가게나.”

나는 아까와 달리 평온해졌다. 많이 울고 에너지를 쏟아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나는 청년이 사온 빵으로 대충 요기를 한 뒤 이 감사를 나의 나약함을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분명 벅참의 눈물이었다. 갑자기 그 벅참과 상관없이 내 심장은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이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죽음이 다가온 것이다. 살고 싶었다. 나는 죽음이 무서워졌다. 그리도 바란 죽음이었지만 이제 와서 죽음이 무서웠다. 딱 2주 만이라도 더 살고 싶었다. 내 죄에 대한 회개를 끝마치고 싶었다. 나는 그러나 탓하지 않았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편지지를 꺼내 유언을 쓰기 시작했다. 유언을 다 적고 다이어리를 꺼내 옷을 대해야하는 마음과 옷의 본질, 패턴을 짜는 법, 가위질을 하는 법, 바느질을 하는 법, 다림질을 하는 법 등등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 그리고 마음가짐을 적어 옷장에 넣어두었다. 옷장은 내가 유일하게 받은 유산이기도 하지만 내 가장 소중한 것이기도 했다. 나를 오랜 시간 지켜주고, 내가 사유로 만든 것이었다. 내 사유와 삶의 본진에 이를 넣어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의 회개의 날은 그렇게 살아남과 동시에 죽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이 밝고 나는 청년을 맞을 준비를 했다. 청년이 언제 올지는 몰랐으나 나의 조급함은 행동으로 나타났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여 가만히 앉아 청년만을 기다렸다.

띵동-

나는 버선발로 달려 나가 문을 열었다.

  “자네 왔나!”

  “네.”

  “얼른 들어오게나. 결론은 어떻게 되었지?”

  “잘 허락을 받았습니다.”

  “정말 다행이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얼른 앉게나.”

청년과 나는 책상에 앉았다.

  “자네는 좋은 소식을 들고 왔지만 나는 좋지 않은 소식을 하나 갖고 있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몸이 좋지 않아. 어제 자네가 간 후로 잠깐 심장이 이상하게 뛰더군. 90년 넘게 이 몸뚱아리를 지탱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러니 내가 꼭 전해야하는 말과 부탁을 먼저 하지. 부담스럽겠지만 운명이다 하고 들어주게.”

청년은 당황했지만 내 시간은 청년의 당황을 들어주기에는 긴급했다.

  “일단 내가 죽는다면 이 집은 자네의 것일세. 그리고 자네가 처음에 마음에 들어 하던 저 옷장도 자네의 것이지. 아니 내 모든 것을 자네에게 남기고자 한다네. 그리고 이는 유언장에도 적어놨고, 그 이상이 유언장에 적혀있으니 그건 내가 죽으면 옷장을 열어 확인하게나. 그리고 부탁은, 자네에게 기회가 된다면 이 집의 1층에 자네의 매장을 열게나. 나와 같은 삶이 아닌 자네의 삶을 베풀며 살아가게. 내가 못한 것을 자네가 해주길 바래. 거기에는 내 의지와 향기도 실렸으면 좋겠으니 그것에 대한 것은 다이어리에 적어 유언장 옆에 같이 두었네. 그곳에는 나의 모든 것이 적혀있으니 제대로 봐주게. 그리고 따라오게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청년을 데리고 옷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나의 마지막 옷이고, 더 이상 남지 않을 것 같아 패턴지에 패턴을 그릴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렸네. 내가 남기는 유일하고 마지막인 패턴이니 이것을 공부하고 싶다면 한 번 공부해보게나. 그럼 급하니 얼른 만듭세.”

  “네. 알겠습니다.”

내가 몰아붙인 탓인지 청년은 얼떨결에 대답한 듯 보였다.

  “자네는 내가 바느질을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마무리 지으면 다림질을 좀 해주게나.”

  “네.”

나는 재단대에 걸터앉아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잔소리도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는 곳도 확실하게 바느질을 해야 하네. 그것도 아주 진심으로 말이야. 손님에게 그 바느질이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어. 우리에겐 그 바느질이 보이지 않나. 꼼꼼하게 그리고 지독하게 깊게 파고 들게나.”

나는 말을 마치고 묵묵히 바느질을 계속 이어나갔다. 청년은 바느질을 처음 배우는 견습생같이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허공에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늙으니 잔소리만 더 나오는군. 우리는 원단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야. 원단들은 어디서 왔나.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닌가. 그러니 자연에 감사하며, 우리도 자연인 것을 잊지 말게. 자연으로 옷이 지어졌을 때, 그것을 입었을 때 자연에 반하는 것을 만들면 안 돼. 자연과 자연이 항상 맞닿을 수 있게 만들게나. 그러려면 항상 원단을 잘 읽고 해석하며 느껴야 한다네.”

나는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이런 잔소리만 늘어놓고 청년은 묵묵히 머리에 새기며 듣고 있었다.

  “자 이제 이건 바느질이 끝났으니 다림질을 해보게.”

  “네. 알겠습니다.”

청년은 다리미의 온도를 올리고 다림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에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재단을 하고 바느질을 하지. 이것은 뼈와 살을 만드는 것이야. 그럼 숨도 불어 넣어야 하지 않겠나. 다림질은 숨을 불어넣는 행위라네 그렇기에 제대로 집중하여 해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만드는 생명이 정확히 살아날 수 있네. 집중하여 옷의 형태를 생각하게나.”

  “네!”

청년의 대답과 눈빛은 나의 모든 것을 뺏어 가려 듯 진지했다. 나는 잔소리도 끝났겠다 청년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바느질을 다시 시작했다. 나와 청년은 시간이 늦어지는 것도 못 느낀 채 옷에만 집중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너무 늦었으니 이제 돌아가 보게나. 늙은이의 장단에 맞춰주어 고맙네.”

  “오늘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유언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고 제가 받아들이기에도 너무 성급한 것 같습니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네. 그래도 고민은 해주게나. 고맙네. 들어가보게”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내일 또 뵙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렇게 다가오는 일요일까지 우리는 옷에 집중했고, 옷은 점점 주인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 나와 청년은 밤마다 그 옷을 바라보며 아름다움과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내 심장은 더 자주 이상하게 뛰기 시작하며 점점 아파왔다.


  드디어 온 일요일에 우리가 만든 옷은 더 이상 흠을 잡을 것 없이 피팅을 마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교회에 들러 다시금 회개와 감사의 기도와 예배를 드리고 청년과 같이 집에 가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띵동-

옷의 주인이 왔다. 나는 심장 때문인지 거동이 조금 불편해져 청년이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

  “왔는가.”

  “네 잘 지내셨나요.”

  “그렇고말고. 나는 여기 앉아 있을 테니 얼른 들어가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보게.”

  “네.”

친구의 아들은 옷을 갈아입고 나와 거울 앞에 섰다. 나는 이 감동을 감히 내가 받아들여도 되나 싶었다. 그 옷은 멋진 것도 위대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삶이자 본질이었다. 그래도 나는 손님을 확인해야 했기에 몇 가지를 확인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나? 아님 자네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전혀 없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좋은 유산을 남겨주신 것에 감사함을 느낄 뿐입니다.”

  “잘됐군.”

나와 청년은 꼼꼼히 살핀 뒤 마무리를 지었다.

  “그럼 수요일 쯤 이 시간에 와주게나. 아마 그땐 완성된 옷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것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받아도 될지 모르는 건 자네가 아니라 날세. 수요일에 보도록 하지.”

  “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조심히 들어가.”

  “자, 그럼 우리는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지.”

  “네!”

나와 청년은 나의 회개를 마무리 짓기 시작했다.

띵동-

  “무언가 놓고 갔나보군. 내가 나가보지.”

나는 문을 열었고 거기엔 구두닦이 청년이 서있었다.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야?”

  “아닙니다. 마스터.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 왔습니다.”

이미 구두닦이 청년의 눈가는 퉁퉁 부어있었다.

  “들어오게.”

  “아닙니다. 금방 가봐야 해서 인사만 드리려 왔습니다.”

구두닦이 청년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제 삶이 이대로 끝난 줄 알았습니다. 꿈꾸면 안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스터께서 제게 내어주신 손길 하나에 제 삶은 달라지고 저는 꿈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구두닦이가 아닌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스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화공(靴工)이 된 청년은 펑펑 울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나를 위해 객기로 선행을 했을 뿐인데, 오히려 그것이 회개와 구원이 되어 돌아왔기에 이러한 반응은 어색했다.

  “잘됐군 정말 잘됐어. 제대로 하게나.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만들게. 익숙해지면 아마 과거는 잊히고 불평이 생각나겠지. 그럴 때는 오늘의 눈물을 기억하게나.”

  “네 마스터.”

화공은 그렇게 문 앞에서 계속하여 울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떠났다. 나는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옷을 지으며, 방금 화공의 감사를 들으며 나에게 원하신 것이 내가 쫓던 것이 아닌 다른 종류의 사랑임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나는 다시 마무리를 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누구였습니까?”

청년은 물었다.

  “자네가 나에게 가르침을 준 그날 있지 않나. 나는 그날 아마 사람을 한 명 구한 것 같네.”

  “그렇습니까? 근데 이제와 이야기하지만 저도 그 날 구함을 받기는 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유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인가?!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제 정말 이 옷을 마무리 하는 것 말고는 여한이 없군. 내가 이런 벅참들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 고맙네.”

나는 홀가분 해졌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일은 일이지. 얼른 마무리하도록 하지.”

  “네.”


  이틀 뒤 저녁, 옷은 전부 완성이 되었다. 아마 다시 만들라고 하면 나는 다시는 이런 것을 못 만들 것이다. 나는 감사함에 계속하여 속으로 기도를 했고, 청년은 감탄한 듯 옷을 바라만 보았다.

쿵!

나는 쓰러졌다. 심장은 멈추기 전 요동치듯 발악을 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청년은 놀라 쓰러진 나를 급하게 침대로 옮겼다.

  “얼른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

  “됐네. 내 몸은 내가 알아. 아마 자네가 나가면 내 숨이 끊길 걸세. 그냥 내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주게나.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지만 내 모든 것은 자네의 것이야. 내 모든 것은 적어서 옷장 안에 뒀으니 확인을 해보게나. 그리고 그 옷을 직접 전하지 못해 친구의 아들에겐 미안하구만... 내일 꼭 잘 전달해주게.”

청년은 울기 시작하며 말했다.

  “저는 아직 다 배우지 못했습니다. 더 가르침을 주십시오!”

  “아냐. 자넨 이미 다 배웠어. 이미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러 왔을 때부터 다 배운 상태였지. 그 다음부터는 마음가짐의 문제야. 제대로 적시하게나. 아... 이제 와서 죽기 싫다니. 그래도 혼자 죽을 줄 알았는데 자네가 내 죽음을 지켜줘서 다행이야. 그리고 내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음에 얼마나 감사한지! 자네 기억하나. 내 꿈이 바늘만 잡다 죽고 싶었다고. 아닌가 내가 말한 적이 없나. 이젠 정신도 제상태가 아니구만. 나는 그 목표를 포기했었는데 이렇게 되었구만. 다시 바늘을 잡기 잘했어.  고맙네. 나는 드디어 내 해야 할 일을 다 한 것 같구만... 나는 구원받은 것만 같아.”

청년은 울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꼭 잡고 기도를 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의 죽음을 잡아당기는 듯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뭐라고 하는 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너무나 따뜻했다. 두렵지만 따뜻했다. 주셨던 모든 것에 감사함이 느껴졌고 광야 생활이 끝나고 성문이 열리는 듯 했다. 그 감사함 속에 나는 마지막으로 외쳤다.

  “주님! 저 존(John)은 오늘 죽습니다!”


-完-



* 이 글 등 남자의 옷장으로 적히는 모든 글의 저작권 및 아이디어는 남자의 옷장 본인에게 있습니다.


22OCT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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