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자의 옷장 Oct 22. 2023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8)

소설의 제8장

  “갑자기 무슨 말인가?”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물론 그것이 거짓이어야 했다.

  “친구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게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천천히 밀려오는 현실과 슬픔을 대책 없이 마주해야만 했다. 나와 청년은 그렇게 멍하니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정신을 차리고 청년에게 물었다.

  “일단 슬픈 소식을 전해주어 고맙네. 정말 고마워... 근데 자네가 어찌 알고 이리 전해주러 왔나?”

  “크리스마스날, 먼저 자리를 떠나신 그 날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부디 알려달라고 말이죠...”

  “그렇구만... 그랬어. 먼저 알고 있었구만 그 친구는...”

  “네,... 런던에 온 것은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보러 온 것이었고 자신의 죽음을 친구가 직접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청년은 편지 한 장을 건넸다.

  “이 편지는 호텔의 책상 위에 있었습니다. 아마 선생님께 전하는 편지 같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편지를 건네어 받았다.


나의 소중한, 가장 친한 친구에게.


편지봉투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 글귀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려왔다. 나는 조심히 편지를 칼로 뜯었다.


아마 전해진다면, 자네에게 적는 마지막 편지가 되겠군. 오늘은 크리스마스일세. 방금 전까지 자네와 이야기를 나눈 그 밤이지. 오늘 자네의 많은 이야기를 들어 무척이나 좋았네. 자네는 항상 많은 고통을 혼자만 가지고 가려 했지. 자네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도 자네는 항상 그걸 숨기곤 했어. 내가 이제야 자네를 조금 알게 된 것 같구만. 뭐 하여튼, 이 편지를 받게 되면 나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난 병에 걸렸어. 이 나이에 그런 병이 없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런던으로 온 것은 자네에게 하고 싶던 부탁 이외에, 의사를 만나기 위함이었어. 사실 자네 집에 묵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의사를 만나러 가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였네.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 의사 말로는 나이가 많아 더 이상 몸이 버티질 못한다고 하더군. 한 달이라도 버티면 기적이란 말까지 들었으니 말 다 했지 않나. 나는 내 몸이 그렇게 안 좋은 줄은 몰랐네. 의사에게 이 말을 듣고 자네에게 옷을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몰라. 더군다나 오늘 자네가 옷을 만들어준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옷을 못 볼 수도 있지만 욕심이 생기더군. 내 이기심이지. 내가 죽는 날에 자네의 옷을 꼭 입고 싶었어. 자네는 기억하나? 내 옷을 지으면 자네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그 말 말이야. 이제 그 의미를 여기 적어야겠구만. 나는 자네가 손님이 아닌 친구의 옷을 짓기를 원했네. 자네를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도 고통이었어. 그 광적인 집착을 나는 바라볼 수밖에 없지 않았나. 누군가에게 쫓기듯 도망치며 집착하는 자네의 모습엔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물론 내 눈에 그랬다는 것이야. 사정은 자네가 더 잘 알았겠지. 그러나 오늘 자네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네의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 감정이 이해가 가더군. 친구여. 우리는 80년이 넘는 삶을 같이 살았잖나. 그 오랜 시간 옆에서 자네와 함께 했음에도 나는 자네의 고통을 같이 해준 적이 한 번도 없더군. 그래서 생각했지. 자네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말이야. 나의 결론은 자네에게 내 마지막 옷을 맡기는 것이었네. 자네가 느끼는 고통을 내가 입고 싶었어. 그것이 자네의 집착과 고통을 분담하며 자유를 선사해주지 않을까 했거든. 마치 우리가 어린 시절 동산을 뛰어 놀 때처럼 말이지. 그때의 우리는 그 어떤 고민도 고통도 없이 그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뛰어 놀지 않았나. 나는 그저 자네가 옷을 만들며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 자유를 다시 마주하기를 바랬을 뿐이야. 우리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그 자유의 시절 말이야. 얼마나 좋았는지...

 나는 기억하네. 자네가 고향을 떠나 옷을 만들겠다며 선언한 그 날을. 그때 친구들을 모아두고 자네는 선언했지. 우리는 비웃었지만 자네는 진짜로 떠났어. 얼마나 매정하던지. 자네의 어머님은 매일 같이 우셨지. 물론 우리는 행동으로 옮기는 자네가 멋지다며 치켜세웠지만 말이야. 모순됐지. 그래도 모두가 실현하지 못하던 것을 하는 자네가 우리는 자랑스러웠다네. 성공할 것은 당연히 알았고 말이지. 나는 그곳에 자네의 자유가 있을 줄 알았어. 자네는 자유를 찾아 떠났으니까! 그런데 자네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네. 당장 오늘까지도 말이지. 그리고 오늘 확신했지! 자네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집착과 고통은 우리를 좀먹을 뿐이야. 자네가 옷을 만드는 것에 대해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지만, 우리는 우리만이 아는 자유를 이야기할 수 있지. 우리의 어린 날의 추억엔 고통이 없었어. 제발 그 날들을 잊지 말아주게나.


끝난 것 같던 편지는 몇 장이 더 있었다.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보이려 노력하며 장을 넘겼다.


  오늘 자네가 나의 옷을 만들어준다고 했지. 나는 일찍 일어나 자네의 집으로 가야하지만 잠이 오질 않아. 내 이기심과 오판에 자네를 또 다시 고통으로 밀어 넣은 것만 같거든. 나는 죽음이 두렵네. 죽음을 원해본 적도 없어.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을 때만큼은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죽기는 무서운 이기심이 들었어. 나는 이렇게 나약한 존재일세. 이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

  나는 욥의 친구들처럼 자네에게 말 할 자격도 없네. 그 교만조차 부릴 여유가 없어. 그 죄인조차도 못되는 나지만, 나는 그저 내가 그 안에서 구원받고 삶의 의미를 깨달았듯이 자네도 그 축복을 깨닫기를 원했어. 그래서 교회로 자네를 이끌었지. 그러나 나는 모르겠네. 나는 옳다고 생각했어. 자네를 다시금 교회로 이끈 그것이 말이지. 그러나 나는 욥의 친구들처럼 죄인이 되어버렸지. 나는 아직도 주님이 나를 왜 그렇게 이끄셨는지를 알지 못하겠네. 자네를 왜 고통에 두시는지 알지 못하겠어. 물론 나 같은 범인이 그것을 어찌 알겠나. 그렇지만 정말로! 진심으로! 나는 자네를 고통 안에 두기 싫었어! 그러나 원치 않는 죽음이 나를 기다리니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심지어 나의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은 것도 모르고 오늘 자네의 다짐과 확언을 들으니 더욱 죄책감에 빠지게 되는군... 미안해. 정말 미안하네. 이 괴로움과 죄책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일 자네의 얼굴을 어찌 볼까 싶어. 자네는 또 고통에 빠지겠지. 부디 내가 그 옷이 마무리될 때까지 살고 싶군... 이 나이에 이렇게도 삶을 구걸하다니. 나를 용서해주게나... 자네가 나를 용서해줬으면 좋겠네. 진심으로 말이야. 그러나 잊지 말게. 하나님은 자네를 사랑하셔. 그리고 자네를 이끄시지. 자네는 버려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욥을 보게나. 욥의 회개를 기억하게. 나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편지가 자네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네.

자네를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 데이빗(David)으로부터.



나는 친구의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다시 고이 접어 편지봉투에 다시 넣으려 보니 그 안에 휘갈겨 적은, 조금은 꾸깃한 작은 종이가 하나 더 있었다.


P.S. 마지막으로 자네에게 부탁 두개만 하지. 하나는 청년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꼭 해주게. 내 마지막 부탁은 그 청년에게 전해졌거든. 아마 이 편지를 보게 될 것도 그 청년 덕분일걸세. 둘째는 내가 못한 일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네. 자네도 제자를 받는 게 어떤가. 나이 때문에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늘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자네도 제자가 있으면 어떨까 싶어. 그 청년은 어떤가. 내 눈에는 참 좋은 사람인 것 같던데.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고통스럽다면 우리는 그저 항상 나약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주게나. 나약함을 인정하고 그저 엎드리게.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야.


아마 친구의 마지막 유언인가 싶었다. 그러나 나에겐 그것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친구의 죽음은 나에게 전혀 준비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의 편지에 적혀있듯이 나는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임이 분명했다. 나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마네킹에 걸려있던 그 아름답던 수트는 이제 증오스럽기까지 하게 느껴졌다. 내 마음속에는 슬픔과 분노가 복합적으로 몰려왔다. 나는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내다보았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도 안개가 심한 것 같군. 마치 내 상황과 같아. 이기적이군... 이기적이야... 어찌도 이렇게 이기적이게 떠날 수가 있나...”

청년은 가만히 책상만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자네에게 미안해. 왜 이다지도 힘든 일을 자네가 지금 감당하고 있는지를 모르겠어.,, 크리스마스 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군... 나에게 그날 자네에게 친구가 부탁한 것들을 이야기해줄 수 있겠나?”

  “네, 물론입니다... 친구분께서는 선생님의 걱정을 무척이나 많이 하셨습니다. 누구보다 강해보이고 굳건해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여린 사람이라 말씀해주셨죠. 자신은 그것이 너무 서글프다고 그러셨습니다. 선생님을 고통에서 꺼내고 싶어 하셨지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는 것에 무척이나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그 어떤 피해도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큰 폐를 끼치고 있음에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받으실 고통을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이기적인 친구군... 초면인 사람에게 그렇게 부탁을 하니 말이야. 사실 아직도 나에겐 친구의 죽음이 거짓같아. 이 편지조차도 친구의 장난인 것만 같네. 장난을 좋아하던 친구였으니 말이지...”

나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얼마만큼의 침묵 후 나는 다시 청년에게 물었다.

  “친구의 죽음이 정말 사실인가?”

  “저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맞습니다.”

  “그럼 지금 옷을 입고 나가지. 친구를 봐야겠네. 내가 확인을 해야겠어. 어디로 가면되나.”

  “지금 교회에서 장례를 준비 중입니다. 아마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준비가 다 끝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봐야겠네.”

  “그럼 일단 같이 가보시죠.”

  “바로 옷을 입고 나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

나는 빠르게 옷을 입고 나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빨리 가지.”

나와 청년은 짙은 안개를 뚫고 교회로 향했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심한 안개와 겨울의 추위는 나를 더욱 고립시켰다. 청년은 눈치를 보며 나를 이끌었다. 도착한 교회는 잔인하리만치 고독하게 느껴졌다. 도착한 교회의 문을 열기가 나는 너무나도 두려웠고, 청년은 나를 이해했는지 조용히 양해를 구하고 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목사는 나를 보고 인사했다.

  “제 친구! 제 친구는 어디 있습니까?!”

  “저를 따라 오시지요.”

나는 주위를 살필 정신도 없이 목사를 닦달하며 따라갔다. 친구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편지는 거짓으로 쓰여진 것 마냥 평온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이기적인 친구는 그렇게 누워있었다. 나의 다리는 무너졌다. 그러나 눈물은 나지 않았다. 누워있는 친구를 보니 앞선 호들갑은 사라지고 오히려 나는 멍해졌다. 슬픔과 고통보다는 그저 친구의 죽음을 탓하기도, 인정하기도 싫은 복잡한 마음이 앞섰다. 친구의 말처럼 우리는 나약한 존재였다. 무턱대고 찾아온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이다지도 오만하며 나약한 존재는 아마 우리 인간이란 존재들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강하고 건물이 떠나가게 웃던 그 친구는 생전 처음 보는 평온한 미소로 이 곳을 떠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멍하니 그의 미소만을 바라보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풀렸던 다리를 일으키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으나 겨우 일어나 조용히 기도하고 있던 청년에게 물었다.

  “아들한테도 연락을 해야 할텐데.. 편지는 늦을 것 같고...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찌 방법이 없겠나?”

  “아드님께서는 아마 내일 오실 겁니다. 친구분께서 이미 연락을 드려놨고 저희도 부탁대로 다시 한 번 연락을 했는데 이미 출발하셨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그렇군... 고맙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일면식도 없던 자네가 다 해주었구만.”

나는 청년에게 감사를 전했다.

  “정신이 없어 깜빡할 뻔 했군요. 아까 제 무례를 용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정신이 아니었어서...실례가 정말 많았습니다.”

나는 목사에게 무례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괜찮습니다. 다 이해합니다. 저였으면 더 심하게 행동을 했을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게 되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죄송하다뇨. 제가 너무 감사드립니다. 너무 갑작스러워 정말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럼 편하신 만큼 같이 계셔주시지요. 내일 오전에 오시면 장례가 다 준비되어 있을겁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자네도 정말 고맙네.”

목사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청년도 자리를 피하는 목사에게 인사를 하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나는 이제 집에 가야겠어. 친구 얼굴을 더 보고 있기 힘들구만...”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괜찮네. 자네도 얼른 쉬지 그러나. 내일 또 일도 하러 가야하지 않나.”

  “아닙니다. 일단 나가시죠.”

  “그럼 염치없이 부탁하지. 고맙구만.”

청년은 다리 힘이 풀린 나를 부축하고 교회를 빠져 나왔다. 청년은 힘든 내색 없이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집으로 나를 인도했다.

  “오늘은 정말 고맙네. 내가 평생 못 갚을 빚을 졌군. 그럼 조심히 들어가게나.”

  “네. 푹 쉬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청년은 그렇게 돌아갔다.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듯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집은 나를 밀어내는 듯 했다. 나는 다시금 집안의 온도를 올리고 자리에 누웠다. 이상하리만치 냉철한 그런 밤이었다. 폭풍 전 고요일까. 친구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어젯밤의 충격이었을까. 아니면 피로가 쌓인 탓이었을까. 나의 아침은 평소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교회로 향했다. 친구의 아들과 그 가족이 보였다.

  “오랜만일세.”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인데 이런 일로 보게 되어 마음이 착잡하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좋은 일로 뵙게 되었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인사드려 할아버지 친구분이시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친구의 손자들은 가정도 생기고 아저씨가 다 되어있었다.

  “어릴 때 봤었는데 벌써 이렇게 크고 가정들까지 꾸려 애도 낳고 아저씨가 다 되었다니. 내가 늙긴 했나보군. 그건 그렇고 정말 일찍 왔구만.”

  “두 달 전 아버지께서 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몸이 안 좋으셔서 런던에 의사를 찾아 간다 하셨죠. 어차피 저도 은퇴하여 할 일도 없어 같이 오겠다 했는데 아버지께선 극구 말리셨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친구도 있으니 걱정 말라고도 하셨죠. 그러나 며칠 전 아버지가 보내신 편지에서는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고 다시 돌아가기도 힘드니 저보고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틀 전 급한 전화로 가족 전부를 찾으셔서 이렇게 늦지 않게 도착했습니다.”

  “다행이군. 예나 지금이나 참 준비성이 많은 친구야. 근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준비할 시간을 주지도 않았구만... 아버지의 얼굴은 뵀나?”

  “저는 아직입니다. 막상 보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고,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몰려와 일단 가족들에게만 부탁하고 저는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말게나. 그건 내가 내 부모에게 했던 죄와도 같은 걸세. 자네도 알지 않나. 일단 얼른 들어가서 인사를 드리게. 그게 지금 자네가 가장 먼저 할 일이야.”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친구의 아들을 기다려주었다. 기다림 안에는 꽤나 많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감정은 동요되었으나 아직은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아. 멍하게 서있기만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청년이었다.

  “자네는 출근도 하지 않고 왜 여기 있나?”

  “아침에 출근하여 사정을 말씀드리고 휴가를 내었습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제 마음이 그래서 그랬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좀 괜찮으신가요?”

  “잘 모르겠네.”

  “아마 곧 목사님께서 오셔서 기도를 시작하실 겁니다. 이제 진짜 마지막으로 친구를 보실 수 있습니다. 빨리 들어가시죠.”

나의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의 아들과 같이 나의 발도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어떤 죄책감도 없었다. 그럼에도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두려움이었으리라. 그렇게 친구를 보게 되면 친구를 정말 보지 못한다는, 이제 내 인생을 기억해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현실이고, 내가 부모의 장례를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나지막한 후회가 생각이 나 나는 움직이지 않는 발을 어떻게든 친구에게로 끌고 갔다. 친구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의 손을 잡고 펑펑 울고 있었다. 이미 친구의 아들의 나이가 70에 가까우니 인생 풍파를 다 겪고, 인생의 마침표가 더 가까운 할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인생에 절대 준비가 되지 않을 눈물은 더욱이 아파보였다. 나는 들썩이는 친구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되지 않을 위로와 함께 속으로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만약 그 말이 새어나왔다면, 친구의 아들은 아버지를 보내는데 더 고통스러워 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나는 새어나오는 목소리를 어떻게든 참으려 노력했다. 얼마 뒤 목사가 들어왔다. 목사는 여태 본 그 어느 때보다도 경건한 모습이었다. 목사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형제 데이빗을 위하여 기도드리겠습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고 그것이 현실이었다. 나도 모르게 부정하고 있던 친구의 죽음은 이 기도로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당장에 목사의 입을 막고 싶었다. 급작스럽게 닥쳐온 현실은 나에게 감당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현실을 부정하는 동안 기도는 끝나고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흐느꼈으며, 울며 소리치기도 했다. 그들에게서는 아버지를 혹은 할아버지를 위한 사랑과 존경이 느껴졌다. 또한 친구의 삶과 행실이 어땠는지도 보였다. 나도 마지막으로 친구 앞에 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마지막으로 친구의 손을 잡고 전하지 못한 말을, 후회하지 않을 말을 찾으려 노력하고 겨우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고맙네.”

친구의 아들은 나의 마지막 인사를 듣고 눈물로 범벅인 얼굴과 함께 내 손을 잡고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에겐 그를 위로할 말주변은 없었음에 그저 조용히 그를 안아주었고, 친구의 관은 닫히기 시작했다. 이제 친구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 이 글 등 남자의 옷장으로 적히는 모든 글의 저작권 및 아이디어는 남자의 옷장 본인에게 있습니다.


22OCT2023

이전 07화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