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지호가 제가 지난달에 부모님들께 소개한 책 『그리(GRIT)』를 다 읽었다면서 얇은 포스팃이 많이 붙인 책을 갖고 와서 자랑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이 아니라 학부모님들의 자녀 교육서에 해당하는 책이긴 하지만 4학년이 그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해마다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3년 전 6학년 담임을 할 때도 『생각의 탄생』의 관찰 부분으로 수업을 공개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인상적이었는지 옆 반에 가서도 ‘관찰’ 수업을 해주라고 하더니 급기야 한 아이는 『생각의 탄생』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지성인이 뽑은 1위 도서라서 고등학교에서 필독도서로 선정한 학교는 있다고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6학년에게 쉬운 책은 아니라서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작년에 1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나 먼저 할래”가 일상이었던 1학년이었는데, 그 수준에 딱 맞게 바지에 오줌 싼 이야기책 『나 먼저 할래』를 매일 조금씩 읽어주었더니 며칠 못가서 여러 아이가 그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우리 반은 1학기부터 온 책 읽기(같은 책을 똑같이 읽으면서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활동)를 해왔습니다. 학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공감이 되었던 꼴뚜기를 시작으로 파브르 식물이야기, 어린이를 위한 사자소학, 80일간의 세계 일주, 초정리의 편지, 한밤중 달빛식당 등 벌써 10권이 되었네요.
아이들과 이 책들을 읽으면서 행복한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나이가 서른 살 이상 차이 나는 아이들과 친구가 된 이 느낌을 글로는 포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주에는 『청소년을 위한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기 시작합니다. 이 책은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쓰는 독서록 숙제를 드릴 예정입니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위해 현재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힘(grit, 끈기)을 길러 주고 싶은 부모님들은 이 책을 자녀와 함께 읽으면서 아이의 마음에 끈기, 참을성, 용기의 씨앗을 물이 스며들듯이 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독서가 세대, 직위, 성별, 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로 이어주는 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독서 외에도 학생과 선생님, 부모와 자식, 친구와 친구를 이어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학급에서 제가 아이들과 친구 되려고 했던 활동 몇 가지 소개해 볼까요?
첫째,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2주 또는 한 달에 한 1~2권의 책을 아이들과 같이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읽으라니까 책을 읽고, 선생님인 저는 독서 골든벨 퀴즈를 내기 위해서 더 꼼꼼히 읽기 시작했지만, 대화가 풍부해 졌습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읽으면서 어느 방향으로 여행을 가야 하루를 줄일 수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 과학실에서 지구본을 빌려다가 주인공이 간 여행 국가에 스티커로 붙여가면서 세계관을 키웠습니다. 파브르의 식물이야기를 읽으면서 수많은 식물의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었더니 아이들이 자기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을 소개하기 바쁘더군요.
둘째,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와 『매일 한 장 인문학 365일』을 읽으면서 명화를 감상하고, 교향곡을 함께 들었습니다.
아침 글쓰기 시간에 교과서에 나오는 페리귄트교향곡의 <아침의 인사>와 <산왕의 궁전>을 비롯하여 11곡을 일주일에 2번 이상 들려주었습니다. 터키교향곡이 나오면 피아노학원에서 치고 있다고 말하며 다시 들려달라고 하곤 합니다, 또 어떤 곡은 자기가 사는 아파트의 초인종 소리라고 하니까 그 말을 들은 한 아이가 자기네 아파트는 초인종 소리가 맘에 안 든다면서 이사가야겠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셋째,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수학’이 싫다는 아이들에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함께 보고 수학과 사랑에 빠지는 방법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서 가끔 수학 시간에 활용합니다. 수학은 문제를 읽고 생각하고 풀어야 하는데, 풀기만 하다 보니 수학이 싫어지는 것을 영화를 통해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수학 시간마다 칠판 가득 채워진 나만의 풀이법으로 알찬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넷째, 주말마다 제가 여행하는 곳을 소개했습니다.
‘일상이 여행이고, 여행이 일상이 되자’라는 생각으로 저는 주말마다 우리 집 근처부터 시작해서 이곳저곳을 다니고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월요일마다 소개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 되고 싶은 아이들은 그다음에 제가 갔던 곳을 다녀와서 자랑합니다. “저 유영국 전시관 다녀왔어요.”,“저는 화성식물원에 가서 밧줄 탔어요.”, “저는 여수 가서 여수밤바다 노래를 선생님께 보냈어요. 들으셨나요?”
4가지 이외에도 아이들과 친구되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 노래, 운동을 같이 하면 되겠지요. 주말마다 가족들끼리 가까운 산에 오르면서 체력도 다지고 함께 물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정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취미 속으로 함께 들어가서 친구가 되면 사춘기를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어 퉁명스런 말투로 대꾸하는 4학년 자녀, 그래도 사랑스러운 신의 선물들인 아이들과 같은 책을 읽으며 친구가 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