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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옷 당근하면 안 돼요?

156일 차 아기 육아일기

by P맘한입

중고가 싫어

나는 중고가 싫다. 누가 중고를 좋아하겠냐마는, 유난이라면 유난일정도로 깔끔 떠는 성격인 내가 남이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는 물건을 집에 들일 바에는 없이 살겠다는 주의다. 그런 내가 아기를 키우며 바뀌었다.


아기는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큰다. 그러니 그때만 꼭 필요한 물건들이 있어 '없이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새것을 구매하기엔 부담이 된다. 그래서 육아필수템 타이니모빌 장만을 시작으로 나도 당근 구매자가 되었다.




봄은 쇼핑의 계절

10월생인 우리 축복이는 거의 내복을 입고 지낸다. 주변에서 선물 받은 내복이 꽤 많아서 당연하게 내복을 입히고 있다. 그리고 축복이는 게워내는 스타일이 아닌 데다가 빨래를 매일 하기에 그다지 많은 옷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래서 아기 옷 쇼핑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봄이 온 것이다. 따뜻한 봄햇살이 거실을 환히 비추니 나는 얼른 축복이랑 나가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내복 입고 나가야 하나?



생각해 보니 밖에 나갈 외출복이 필요했다. 그래서 폭풍 검색을 했다. 예쁜 아기 옷이 너무 많았다. 가성비가 좋은 H&M에서도 사고 엄마들 사이에서 그렇게 인기라는 베베드피노에서 쨍한 색감의 옷도 샀다. 그렇게 우리 집 현관은 택배로 가득 차게 되었다.




패피 꿈나무 축복이

그런데 나는 맥시멀리스트다. 결혼 전 나는 옷 사는 걸 좋아해서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녔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잠자던 패션세포가 깨어났다.


그런데 출산 전 사놓은 예쁜 아기원피스를 단 한 번밖에 입지 못했는데 철이 지나서 못 입게 생겼다. 아기는 너무 금방 크니까 더 다양한 옷은 당근으로 알아볼까 싶었다.


아기옷을 검색하고 키워드 알람을 해놓으니 하루에 10개도 넘는 알람이 울렸다. 가격도 저렴했고 상태도 좋아 보였다. MBTI P에 맥시멀리스트 엄마는 눈이 돌아가서 즉시 몇 벌 구매했다. 우리 집 현관에는 택배가 더 쌓이게 됐다,




넌 중고를 입히고 싶니

노다지를 만난 듯 신나는 봄옷 쇼핑을 하고 이제 여름옷도 사볼까 하던 찰나, 친정엄마에게 당근 옷을 들켜(?)버렸다. 나는 외동딸이다. 부모님께서 한 번도 헌 걸 사준 적이 없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친정엄마는 속상해하시며 화까지 내셨다.

너는 귀한 아기에게 남 입던 걸 입히고 싶니


옷에 침도 질질 흘렸을 거라며 친정엄마는 한참을 속상해하며 중얼거리셨다. 그러자 내 안의 깔끔 세포가 깨어나며 내가 깔끔하지 못한 옷을 샀나 싶었다. 나도 안 입는 중고를 아기에게 입히려 하다니 스스로가 궁상떠는 엄마처럼 느껴졌다. 커피 한 잔 안 먹고 새 옷 사주는 게 맞겠단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자괴감.





아기 옷 당근 할까 말까?

다시 맑은 정신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 봐도 아기 옷 어느 정도 당근으로 사 입히는 거 괜찮은 거 같다. 우리 아기 옷도 한 번밖에 못 입고 철이 지난 걸 생각해 보면 상태 좋은 옷이 대부분일 거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이 불편해진 이상 당근 옷쇼핑은 안 할 거 같다. 귀한 축복이 더 귀한 대접해주려면 내 걸 조금이라도 더 아껴서 새 옷을 사줘야겠다. 브랜드 옷이 아니더라도 새 걸 사자는 내 원래의 패션철학대로. 그래야 내가 더 아기에게 떳떳하고 찝찝하지도 않을 것 같다.






아, 사이즈 착각했네

그렇게 현관 앞을 가득 채운 택배 박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열었다. 내가 산 사이즈는 전부 90.


웬걸. 축복이에게 너무 컸다. 사이즈 미스였다. 이제 막 5개월이 된 축복이에겐 80~85 정도가 적당한데 너무 크게 산 거다.


엄마가 고심해서 옷을 사줬지만 토끼인형에만 정신이 팔린 축복.


이번 봄에 입기엔 너무 크고 가을에야 맞으려나 모르겠다. 이래서 아기 옷은 많이 못 입는데! 당근 괜찮은데! 다시 생각이 원점으로 돌아가지만 친정엄마의 마찰을 상상하면 아찔하다. 아서라.


결국 아직 봄옷이 없다. 초보 엄마의 아기 옷 쇼핑은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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