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일 차 아기 육아일기
주변 엄마들은 100일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이곳저곳 잘만 다니더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준비성이 없는 사람이라 유모차를 3월 중순에서야 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기는 글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큰다. 반대로 말하면 한 달 전만 해도 훨씬 작고 가녀렸다는 거다. 이 연약한 아기를 데리고 겨울 한파를 뚫고 어딜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기가 감기에 걸린다는 상상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이야기가 달라졌다.
축복이는 한 달 만에 조금 더 자랐고, 날은 따뜻해졌다.
봄이 온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는 아기 키우는 집이 정말 많다. 그래서 어렴풋이 축복이와 같은 24년생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단톡방으로 모이고 보니 생각보다도 더 많았다. 모인 인원만 15명. 전국적으로 저출산은 문제인데, 아기 키우는 사람들은 다 이리로 오나 보다.
날이 따뜻해지자 한 용띠맘이 자기 집으로 우리를 초대해 주셨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어색해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나이도 훨씬 많은 언니들이 많았다. 그래서 모임 당일 아침까지도 고민 고민을 했다.
그래, 결심했어!
가까운 이웃끼리 친해지면 더 재미있게 육아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모임에 나가보기로 결심했다.
당일에 가기로 결심했으니 마음이 바빴다. 약속 시간은 12시~1시. 아기들의 컨디션을 위해 아침 낮잠을 한 번 재우고 모이기로 한 거다. 그런데 축복이는 오늘따라 아침 낮잠을 자질 않았다. 보통 때는 10시쯤이면 한번 자는데 오늘은 졸려하고 칭얼대기만 할 뿐 잠들지 못했다. 결국 11시 반, 잠이 들었다.
자, 이제부터 준비 시작이다.
모든 준비는 축복이가 깨기 전까지 마무리되어야 했다.
아참, 이웃집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지! 뭘 가져가면 좋을까? 축복이를 안고 쇼핑을 갔다가 이웃집에 가는 건 초보맘으로서 무리였다. 집에 있는 것 중에 선물로 줄만한 건 어떤 것도 없었다. 직접 만들어야겠다. 베이킹 초보이지만 내가 자신 있는 메뉴는 '바나나빵'. 마침 바나나와 재료들이 있다. 급한 마음에 팔 아픈 줄도 모르고 반죽을 해서 오븐에 넣는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 떡진 머리로 갈 수는 없지. 부리나케 씻는다.
그리고 밥은 먹고 가야지. 12시가 넘었지만 나는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했다. 굶고 가서는 그 집에서 허덕일 게 분명했다. 내 밥을 차리고 있는데 축복이가 일어났다. 아직 밥도 못 먹었고, 빵도 안 됐고, 내 옷도 못 입었는데.
우선 축복이 옷을 입히고 수유를 했다. 그리고 잠깐 타이니모빌을 볼 틈을 타 밥을 먹고 옷을 입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여분의 옷과 치발기, 장난감, 담요, 기저귀를 챙겼다. 처음 만나는 자리인 만큼, 화장도 살짝 하고 싶었지만 과감히 포기했다. 이미 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화장까지 하다가는 오늘 못 나갈지도 모른다.
바나나빵을 꺼냈다. 식는데도 시간이 걸리는데 기다릴 틈이 없었다. 식지도 않은 빵을 급한 마음에 썰어버리니 다 부스러졌다. 부스러기를 맛보니 꽤 잘 됐다. 그런데 문제는 담아갈 곳이 없었다. 베이킹 초보라 한 번도 남에게 선물해 본 적이 없기에 예쁜 포장지가 있을 리가 없었다.
역시 무계획적인 MBTI P맘의 한계는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된 빵을 글라스락에 담는 수밖에. 모양은 그렇지만 나에겐 이게 최선인 걸.
준비하는 내내 생각했다. 원래 아기 데리고 외출하는 게 어려운 건가?이제 나가자.
엄마와 둘이 하는 첫 외출. 병원 가는 것 말고, 옆집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잠깐 피신한 것 말고, 순수 목적으로 집 밖에 처음 나가는 거다.
어제까지 미세먼지가 많았지만 다행히 공기는 깨끗하고 햇살은 좋았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축복이를 얇게 입혀 나온 게 후회됐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모르는 할머니의 조언에 따라 담요로 머리를 싸주고 축복이를 패딩 안에 꼭 안고 이웃집으로 향했다. 말은 이웃이지만, 단지가 커서 꽤 걸어가야 했다.
칼바람을 뚫고 도착하니 5명이 모여 있었다. 엄마들에 아기들까지 있으니 집이 북적북적했다. 축복이는 이런 시끌시끌한 환경에 처음 놓여있으리라. 신기한지 집 이곳저곳을 쳐다보고 친구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관심을 표했다. 친구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는 걸 보니 친구들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요즘 축복이가 많이 칭얼대고 소리도 많이 질러 걱정했는데 이웃집에서는 세상 얌전한 아기가 되었다. 엄마들이 축복이가 순하다며 칭찬했다. 속으로 동의하진 않았지만 당시에는 맞는 말이었다. 나는 축복이의 존재도 잊고 줌마들의 수다에 매료되었다. 내가 주변에서는 출산이 빠른 편이라 육아 공감대는 찾기가 어려웠는데 공감도 많이 되었다. 줌마들의 수다는 화끈하고 시원한 맛이 있었다.
그 후로 2명이 더 왔고 3명이 갔다. 아기 수유시간과 낮잠시간 텀이 짧은 터라 다들 오래 머물 수는 없는 처지였다. 나도 축복이가 배고파하는 것 같아서 집에 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울지 않고 버텨서 꽤 늦게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때, 집주인맘께서 오시더니 축복이의 손톱을 보시며 잘라주어야겠다고 하셨다.
손톱 자르기. 우리 부부는 거기에 아픈 추억이 있다. 축복이가 신생아 시절을 막 벗어났을 무렵, 남편이 손톱을 자르다가 그만 살을 자른 것이다. 그 이후로는 절대 우리는 손톱을 깎지 않고 있다. 남편은 당연하고, 나도, 산후관리사도, 친정부모님도, 그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축복이 손은 닿으면 아프다. 그걸 둘째맘인 집주인맘이 단번에 캐치한 거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 엄마는 바로 손톱 가위를 들고 와서 축복이의 손톱을 자르기 시작했다. 축복이는 불편한 감정에 울음을 터트리긴 했지만 살을 잘라서 운 건 아니었다. 손톱 깎기가 2분도 안 걸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엄마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우리 아기 발톱 좀 봐주세요."
"우리 아기 손톱도 깎아주세요."
갑자기 아기 네일샵이 되었다. 역시 둘째 맘의 내공은 대단하다.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칼바람을 뚫고 다녀오길 잘했다. 육아동지들의 사는 얘기들도 듣고, 다른 아기들도 보니 기분이 전환됐다. 이게 작지만 큰 행복이구나.
그렇게 얌전하던 축복이는 집에 와서 내가 신발을 벗자마자 울어재끼고, 잠에 들었다. 처음으로 세상 공부를 많이 했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이제는 진짜 봄.
적극적으로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