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일 차 아기 육아일기
출산 전에는 고위험 산모라서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외출을 최대한 삼가고 집에만 있었다. 출산 후에는 날씨는 춥고 아기는 어리니 겁나서 집에만 있었고. 그래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밖순이가 작년부터는 꼼짝없는 집순이로 살았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고 집순이 생활도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다. 아기랑 나갈 수 있다면 어디라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조리원에 있는 동안 서울대공원에 단풍을 보러 갔는데 아기와 함께 있는 가족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첫나들이 장소를 야외로 하고 싶었으나 날이 따라주지 않았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차선으로 연애 시절 데이트했던 여의도 더 현대에 가기로 했다.
더현대는 평일임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그 명성에 비하면 비교적 조용했다. 그래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여유를 즐길 수도 있었고, 정원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아, 물론 이 모든 것은 축복이가 조용히 자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초 목표는 '축복이 구경시켜 주기'였는데 어느새 엄마, 아빠의 데이트가 되어버렸다. 효녀 축복.
조용하던 축복이도 한번 끙끙거리긴 했는데, 수유시간이 다됐기 때문이었다. 하던 일을 중단하고 황급히 수유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수유실 입구에 마련된 유모차 주차 공간부터가 기대 이상이었다. 진짜 주차장처럼 라인이 그어져 있고 유모차가 질서 정연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아기와 마주 볼 수 있는 이유식 탁자, 모든 게 갖춰진 기저귀 갈이대, 모유수유도 문제없는 프라이빗 수유실까지.
조사 없이 간 P성향인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내가 깜박하고 안 챙겨 나온 기저귀 시트가 있는 걸 보고는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더 현대, 더 현대 하는구나.
아기와 부모들로 북적이는 통로를 뒤로 하고 2번 수유실에 들어가 모유수유를 하고 있자니, 내가 밖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육아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리고 이들과 연결돼 있는 것 같은 동질감마저 들었다. 이제는 쇼핑몰에 어떤 브랜드가 있는지, 맛집은 어딘지는 몰라도 수유실이 있는지는 알아야 하는 엄마가 된 것이다.
수유한 후에도 아기 옷 아이쇼핑은 계속됐다. 최근에 아기옷 당근 이슈로 아기 옷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터라 구경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구경하면서 선물 받은 옷이 이렇게 비싼 옷인지 알게 되고 역시나 아기옷이 비싸다는 결론을 내고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제야 주차비 생각이 났다.
더현대 주차요금은 10분당 2000원. 사악한 가격이었다. 이대로라면 주차요금으로만 3만 원 돈을 내야 했다. 황급히 옷가게로 돌아갔다. 마음에 들었던 옷 중 가장 저렴한 옷을 샀다. 그리고 우리는 뛰다시피 동동거리며 주차장으로 갔다. 그래도 8000원을 냈다. 에잇, 비싸.
결국 P들의 무계획적인 나들이는 이렇게 웃기게 끝나는구나.
주차비에 대해 늦게 안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그 여유롭고 평화로운 기분을 뺏겼을지도 모르니까.
우리 가족의 첫나들이,
이 정도면 내 숨통을 터주기에 충분했다.
좋은 곳을 함께 다닐 날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