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7월 31일 월요일. 진짜 마지막 날이다. 한 달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새로운 일정이 추가되고 시간에 쫓길 때마다 '아 그냥 가지 말까'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지만 어쩐지 가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어떤 공간이 생기고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일에 이토록 마음 쓰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이게 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 감정이 조금은 미지근해지고는 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러기로 했다. 내가 좋아했던 공간이 사라지는 일은 나의 짧은 삶 속에서 처음 일어난 사건이니까. 앞으로 나이가 들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될 테니까. 부모님도 아끼던 곳을 많이 잃으셨을 테니까.
마지말 날에도 아빠와 함께 했다. 나는 아빠가 퇴근하시고 역에 도착하실 시간에 맞춰 서점으로 향했고 아빠는 지하철에서 내리셔서 바로 서점으로 오셨다.
언제나 그랬듯이 모든 공간을, 책 한 권 한 권을 자세히 쳐다봐주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사 본 적 없는 책을 사기로 혼자 마음먹었다. 예를 들면 과학이라든지, 정치, 사회, 경제 분야. 그런 책이 꽂혀있는 책장을 서성거리면서 세상에는 이런 책도 있구나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책을 고르는 우리 뒤에서는 서점이 진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책들이 책장에서 꺼내져 박스로 들어가고 있었고, 직원분들은 낑낑거리시며 무겁고 큰 박스들을 옮기시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사실 마지막 날이라고 무언가 다를 거라고 했던 나의 기대는 전혀 현실화되지 못했다. 늘 그랬듯이 사람은 몇 명 없었으며 그들은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조금의 아쉬움도 없는 듯이 찾는 책이 없으면 다시 밖으로 향했다.
나만 이렇게 아쉬워하는 것 같아 다시 서운해졌다.
어떤 책을 사서 내 책장에 꽂아 놓을지 고민하는 일. 그건 나에게 아주 중대한 일이다. 서점에 올 때마다 언제나 그렇듯이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하지만, 거기에 더해 '부평 문고에서의 마지막 책'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할 책을 고르느라 꽤나 허둥지둥했다. 지난번처럼 10권씩이나 골라버리면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무색해질 테고 1권은 너무 정이 없고. 깊은 고민 끝에 지난번에 적립한 남은 포인트를 쓰면서도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담길 정도, 딱 2권을 골랐다. 두 권 다 과학 분야였다. 한 권은 교보문고 앱 장바구니 저 아래에 담아둔, 넣어둔지 오래되어 거의 잊히지 직전이었던 책이다. 그 책을 사려고 계획한 건 아니고 책장에 꽂혀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반가워 내가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다른 한 권은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표지 디자인이 아주 예쁜 책이었다. 동네 서점이라는 곳은 의외의 발견을 하는 재미가 전부이니까 읽고 싶었던 책 1권과 새롭게 발견한 책 1권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제 정말 마지막 순간. 결제를 해야 하는 차례다. 두 번의 바코드를 삑. 삑. 찍으셨다. 그다음 들려야 할 문장이 들리지 않았다. 직원분이 처음으로 "포인트 있으세요?”라는 멘트를 하지 않으셨다. 대신 "포인트 전부 사용하실 거죠?"라고 하셨다. 포인트를 쓸 내일이 없으니까. 한 권을 먼저 결제하고 조금의 포인트를 적립한 후 나머지 한 권을 결제해 남아있는 포인트를 전부 사용했다. 마지막 영수증을 받았다. 말 수가 줄어들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정말 고마웠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온몸이 슬퍼져서 입이 차마 떨어지지않았다. 아무도 내 슬픔을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겨우 입을 열어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을 했다. 밖으로 나와 아빠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수증을 봤다. 아빠의 이름으로 된 회원 명 아래에 우리 가족 4명이, 특히 내가 서점에 올 때마다 책을 사고 적립하고 적립했던 기록이 숫자로 적혀있었다.
'총 구입금액 : 6,066,860
“600만 원? 아빠 이거 봐"
"이야.. 많이도 썼다."
"우리 옛날엔 거의 매주 오지 않았어?"
"거의 그랬지."
처음에는 600만 원밖에 안 되나 싶었지만 내가 부평 문고만 간 게 아니라 교보문고, 알라딘, 다른 동네 서점에서도 꽤나 책을 샀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동생에게 영수증을 자랑하고 내가 잘 읽지 않을 것 같은 두꺼운 해외 서적 사이에 영수증을 끼어두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책 사이에 낀 그 영수증을 발견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깊은 추억과 그리움이 담겨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