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1
이제 오경석의 개화사상 형성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오경석은 일본이 미국에게 개항되기 1년 전인 1853년부터,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이 일본에게 개항되기 1년 전인 1875년까지 20여 년간 총 13차례 중국을 방문합니다. 거의 2년에 한번 꼴이지만, 체류 기간이 다음 해를 넘길 때가 많았으므로 거의 매해 중국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1)
시대가 급변하고 있던 시기인 만큼 그 20여 년 동안 국내 상황에 안주하던 양반 지배층과 중인 오경석의 사상적 간극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경석은 1853년, 23세의 나이로 처음 베이징을 방문합니다. 외국과의 교류가 전혀 없던 폐쇄적인 나라에서 처음 국외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리고 그곳에서 이국적인 경관을 목격했을 때 청년 오경석이 느꼈을 감동은 지금 우리가 처음 경험하는 해외여행 때의 그것보다 훨씬 컸을 것입니다.
공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외국에서 각자 다양한 활동을 할 것입니다. 숙소에 틀어박혀 음주가무에 시간을 소비할 수 있고, 귀중품이나 서적 등을 수집하거나 풍경 좋은 장소를 방문하는 일에 열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경석은 11개월의 기간을 체류하며 중국 문인들과 교우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가 교류한 중국인은 대략 60여 명이나 되는데, 이들 중에는 오경석 또래의 청년이 많았으며, 그들은 당시 청의 보수정치에 불만을 품고 개혁을 주장하던 청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훗날 중국 양무운동(중체서용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화 운동)의 개화사상가가 되고,2) 청년들 중 한 명은 갑신정변 직후 흠차대신(황제의 특명을 반포하는 관직)의 직책으로 조선을 방문하여 조선에 개혁을 건의하는 사람이 되었으니3) 이들이 오경석의 개화사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학문적 교류가 중심이었겠지만 대외적으로 조선과 중국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청년 오경석은 중국의 청년들과 함께 개혁을 갈망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중인이었기에 조선에서 쉽게 의논할 수 없었던 문제를 중국의 개혁가들과 대화하며 홀가분하게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 중국을 방문한 이후 4차례 더 중국을 방문한 오경석은 『해국도지』, 『영환지략』 등의 서적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두 책은 모두 세계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책으로 『해국도지』는 앞에서 설명했고, 『영환지략』은 1차 아편전쟁이 끝나고 5년여에 걸쳐 각국의 지도와 서적을 참고해 만든 세계지리책입니다.4) 오경석은 중국에서 돌아온 후 이를 자신의 친구인 유홍기와 함께 공유하며 서서히 개화사상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5)
오경석이 유홍기와 각 나라의 흥망사를 연구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기술문명을 바탕으로 서양이 동아시아를 침략해 오고 있다는 시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걱정은 자연스럽게 조선의 위기 상황으로 이어졌고, 오경석은 언젠가 조선에 큰 비극이 일어날 것이라며 한탄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의 한탄은 현실이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중인 2명이 당시의 조선을 단번에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 둘은 그들의 상황에서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오경석은 양반이 아니었기 때문에 복잡한 정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중인 신분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을 추진하려는 현실적인 안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분제도에 저항하지 않았고 국제적 상황에 대해 조선의 지배층이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하지만 오경석은 현재 권력을 장악한 양반 기성세대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그들이 아닌 그 ‘다음 세대’를 바꾸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북촌의 양반 자제 교육 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실행에 옮깁니다.6)
1)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 역사학회, 1985.9, 133쪽
2)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 역사학회, 1985.9, 137, 140쪽
3)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 역사학회, 1985.9, 141쪽
4) 손경옥, 「중국어 外國 地名 번역 연구」, 『중국어문학』83, 영남중국어문학회 ,2020.4, 275쪽
5)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 역사학회, 1985.9, 147쪽
6)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 역사학회, 1985.9, 1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