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마리아, #074 20세기 초 동아시아 정세
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Ⅳ
시대 읽기
#074 20세기 초 동아시아 정세
20세기 초 조선의 국권이 상실될 당시, 동아시아의 정치적 상황 역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중국에서는 마지막 전통 왕조인 청이 무너지고 동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이 수립됐지만, 곧바로 군부 독재자가 등장하여 중국은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새로운 천황이 즉위한 상황에서 헌법 질서를 무시한 내각을 민중이 퇴진시키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서양 열강들은 제국주의 경쟁을 벌이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킵니다.
의화단운동을 겪은 후 반식민지 상태에 놓인 청은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에 이어 다시 한번 신정(新政)이라는 자체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이 개혁 역시 본질적으로는 전근대적인 권력 유지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또한 민영으로 운영되던 철도의 국유화 발표는 청의 몰락을 가져온 신해혁명의 원인이 됩니다. 당시의 철도 국유화는 국가의 균형 발전을 위해 사회간접자본을 국가가 통제하고 운영한다는 건설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정난 타개를 위해 민영 재산이었던 철도를 강제로 빼앗아 이를 담보로 서양 열강으로부터 막대한 차관을 대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철도 국유화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 운동은 결국 민주주의 혁명인 신해혁명을 일으켜 마지막 전통 왕조인 청이 드디어 멸망하고, 1912년 동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수립됩니다.
그러나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 중화민국은, 청의 장군으로 신해혁명 진압을 위해 파견되었으나 오히려 청을 배신하고 혁명파에 붙은 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의 자리를 넘기게 됩니다. 위안스카이는 앞에서 살펴봤듯이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부임하여 갑신정변 이후까지 조선 내정에 간섭한 인물입니다. 그는 대총통이 된 후 민주화를 위해 힘쓰기는커녕 오히려 신해혁명 세력을 탄압한 후 독재체제를 확립합니다.1)
한편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국제적 지위를 획득했으나 배상금을 받지 못해 국제적 채무국이 되는데, 1910년 말이 되면 채무 규모가 국민총생산의 45%에 이르게 됩니다. 일본의 제국적 팽창에 기인한 만성적 재정위기는 국내의 불만을 일으켰고, 이런 상황에서 메이지 천황을 대신하여 그 아들인 다이쇼 천황이 즉위합니다. 이때 일본 군부는 신해혁명으로부터 조선과 만주를 지키기 위해 2개 사단 증설을 요구합니다.2)
만성적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은 2개 사단 증설이라는 군부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어 당시 민간 출신 총리가 이를 거부하는데, 총리는 군부와의 대립에 위협을 느껴 결국 총리직을 사임합니다.
민주정치의 최고직인 총리가 위협을 느껴 사임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이러한 상황이 가능했던 것은 일본 군부가 독자적 정치세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 군부 세력은 정치적인 중립을 지키지 않았고, 정부에 의해 쉽게 통제되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식민지 최고 지도자인 조선 총독이 문관이 아닌 군인 출신에서만 임명된 것, 정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만주 주둔 일본군이 독자적으로 만주사변을 일으켜 국제적 분쟁을 일으킨 사례,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까지 전쟁 발발을 주도하고 정부 내각의 총리를 암살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 등 일본 군부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침략 행위의 원인이자 주축이었습니다. 그래서 패전 당시 전쟁의 책임을 일본 군부로 한정하여 천황은 전쟁 책임이 없거나 오히려 천황이 피해자라는 억지 논리가 나오기도 한 것입니다.
사단 증설을 거부하여 퇴진한 총리를 이어 새롭게 임명된 총리는 천황의 권위를 빌어 정당을 억누르고 의회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러한 비헌법적 행동에 분노한 대중은 입헌정치를 옹호하는 정치 운동을 벌이게 되고 새롭게 임명된 총리는 결국 50여 일 만에 사퇴하게 됩니다. 이것이 1913년에 있었던 다이쇼 정변입니다. 민중의 힘으로 일본의 잘못된 정치를 개선한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며,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가 진전됩니다.3) 하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적 행태는 여전히 계속되었기 때문에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국익을 위해 참전했고, 논란이 되었던 2개 사단 증설안도 결국은 통과됩니다.4)
제1차 세계대전은 식민지 경쟁을 일삼은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당시 영국·프랑스·러시아가 연합하여 독일 등과 싸웠습니다. 일본은 영일동맹을 근거로 참전하여 독일의 조차지였던 중국의 산둥성과 태평양의 독일령 섬들을 점령했고, 산둥에서의 독일 이권을 일본에 이양하게 하는 ‘21개조 요구’를 위안스카이에게 제시합니다. 당시 독재 정치를 넘어 황제가 되고자 했던 위안스카이는 국제적 분쟁을 피하고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 비밀리에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수용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황제에 즉위한 위안스카이는 주변국의 황제제도 취소 권고에 의해 황제 즉위 2개월 만에 황제 제도를 취소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권력만을 탐했던 위안스카이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위안스카이 사후 중국은 독자적 군 세력인 ‘군벌’이 지역을 나누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열의 시대에 들어서게 됩니다.5)
반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은 군부의 영향력이 강화되었고, 주요 공업 부문 생산액이 약 5배, 무역액은 약 4배 증가하는 경제적 번영을 누립니다. 그러나 전쟁의 영향으로 일본 역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게 되고, 전쟁이 끝나가는 1918년 자연재해와 경제난이 겹쳐 일본에서는 쌀값 폭등에 의한 쌀소동이 2개월간 지속됩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방치한 채 시베리아 출병을 강행했고, 이에 민중은 격렬한 정부 반대 투쟁을 전개합니다. 정부는 질서 회복을 위해 군대까지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어 약 2만 5,000명을 체포하고 6,000명을 기소했지만, 사태를 성공적으로 수습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민중의 거센 저항을 바탕으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더욱 민주적인 분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6)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된 일본은 파리강화회의에서 21개조 요구를 인정받았고,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이 되자 세계 5대 강국 중 하나로 대접을 받게 되어 일본의 국제적 위상은 더욱 높아집니다.7)
하지만 일본은 군부와 우파에 의한 정치 주도로 제1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만주사변 사이의 10여 년간 무려 10번의 내각이 교체되고, 대외정책 문제로 3명의 현직 총리가 암살당하는 폭력적인 정치 상황을 경험합니다. 군부의 특권에 민간 정치인이 개입하려 할 때마다 어김없이 폭력이 행사되었던 것입니다.8)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달성했을지는 몰라도 모범적인 민주정치를 확립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1) 「신해혁명」,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2) 한정선, 「근대중국의 공화제 실험과 제국일본의 동요」, 『중국근현대사연구』, 중극근현대사학회, 2012.3, 22쪽
3) 마리우스 B. 젠슨, 『현대일본을 찾아서』2, 이산, 2013, 769-770쪽
연민수, 『일본역사』, 보고사, 2001, 244-245쪽
「다이쇼 정변」·「다이쇼 데모크라시」,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연민수, 『일본역사』, 보고사, 2001, 245쪽
5) 한정선, 「오만한 일본, 불안한 제국-다이쇼 시대(1912~1926) 일본의 국가정체성 변화와 대외정책」, 『일본비평』 20,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2019.2, 255쪽
「위안스카이」,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6) 정혜선,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배경」, 『일본사 다이제스트 100』, 2011, 네이버 지식백과
마리우스 B. 젠슨, 『현대일본을 찾아서』2, 이산, 2013, 771쪽
7) 마리우스 B. 젠슨, 『현대일본을 찾아서』2, 이산, 2013, 784쪽
8) 마리우스 B. 젠슨, 『현대일본을 찾아서』2, 이산, 2013, 773-77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