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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낳았으면 키워야지. 왜 나만 입양된 거냐고!

생모를 향한 봄이의 분노를 알게 되다

by 크레이지고구마
봄이의 생모가 태교일기에 고이 넣어준 봄이의 첫 네잎클로버. 생모가 저 네잎클로버를 어떤 마음으로 찾아서 보내주었는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해져온다.


2015년 9월 13


오랜만에 봄이와 성당에 갔다.

우리는 미사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고

조용한 성당 안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무슨 기도를 해?”

봄이가 물었다.


“엄마는 우리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늘 기도하지.

그리고 봄이를 낳아주신 분을 위해서도 늘 기도해.”

봄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너를 낳아주신 분이잖아.

생모가 너를 낳지 않았더라면

난 너같이 예쁜 딸을 못 만났을 테니까, 고맙잖아.

그래서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넌 낳아주신 분이 고맙지 않아?”

“어! 내가 왜 그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되는데???”

봄이의 목소리가 살짝 커지면서 격앙되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봄이의 그 목소리에 나도 조금 놀랐다.


“너를 낳아주셨으니까.

안 그랬음 넌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거야.

너를 낳아주신 분이 얼마나 힘들게 지켜냈는지 몰라.”


“날 힘들게 지켜냈다면서,

왜 낳아서 직접 안 키웠어?”

봄이의 표정은 굉장히 애매했다.

이해가 안 되고 어이없다는 표정인 동시에

약간 화가 나 보이기도 했고,

미안한 표정이기도 한 듯했다.

설명하기에 뭔가 복잡하고 어려운 표정이었다.


“너를 정말 키우고 싶어 하셨대.

그런데 키울 수가 없었대.

그래서 너를 입양 보낸 거야.”


“왜? 돈이 많이 들어서? 그럼 남편은 없어?

남편이 돈 벌어오면 되잖아!”


여기서 정말 난감했다.

생부에 대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사실대로 말하기엔 너무 상처가 될 듯하고

그렇다고 거짓으로 포장을 할 수도 없고...

짧은 시간 동안 수백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잠시 고민 끝에 나는 사실대로 말하기를 선택했다.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간단하게 그리고 사실만을 전달하기로 했다.


“봄이 너의 생부 그러니까

널 낳아주신 분의 남편 같은 사람은...

아기 낳기를 원하지 않았어.

그래서 아기가 뱃속에 있는 걸 알고는

헤어지고 멀리 떠나버리셨대...”

“하......!”

대답을 들은 봄이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한 글자만 내뱉었다.

기가 막힌다는 듯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 분노가 서린 듯 깊은 한숨소리는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바로 옆에 있는 듯 생생하다.


“그게 무슨 남편이야?! 결혼했으면 같이 살아야지!

그리고 집도 있을 거 아니야! 왜 아기 있다고 도망가?

그래도 나를 낳으신 분이 혼자서 키울 수도 있잖아!”


“봄아~ 너를 낳아주신 분과 남편 같은 사람은

결혼한 게 아니야.

결혼한 게 아니라서 집도 없었어.”


(생부를 어떻게 지칭하고 말해야 할지 몰라,

봄이가 남편이라고 말해서

'남편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집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

길거리에서 살았던 거야?”

봄이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매서웠으며

차분하거나 다정하지 않았다.


“아니. 낳아주신 분은

그분 엄마 아빠가 있는 집에서 살았지.”

“그럼 나도 낳고 그 집에서 키우면 되잖아.

왜? 나를 싫어했대?”


“아니. 네가 싫어서가 아니야.

아기를 키우는 데는 돈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해.

그런데, 너를 키우는데 필요한 돈을 벌러 가면

넌 혼자 집에 있어야 되는데 괜찮겠어?”


“왜 날 집에 혼자 둬?

나 아기 땐 작으니까 업고 일하면 되잖아.”


“아기를 업고서 일하게 해주는 곳은 거의 없어.”

“그럼 아기띠로 안고서 하면 되잖아!”


“아기를 업든 아기띠로 안든,

아기를 데리고 가서 일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어.

아무도 일을 시켜주지 않아.”


“그래도 낳았으니까 키웠어야지!

우리 반 친구들도 입양된 아이 한 명도 없어!

다 낳아서 키우는데, 나만 입양된 거잖아!

엄마니까 낳았으면 직접 키워야지!!

만약에 엄마가 결혼 안 하고 임신했다면

엄마는 아기를 안 키웠을까?

내 생각엔 엄마는 직접 키웠을 것 같아.

부산할머니와 할아버지 집에서 같이.

아니야?!!”


봄이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봄이는 화가 많이 나있었다.

답을 알고 있는 듯 한 봄이의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임신을 할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봄이의 질문에 나는 과연 어떻게 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봄이가 알고 있는 답이 정답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키웠을 것이다.

나의 침묵과 머뭇거림이

정답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래. 보통은 낳고 직접 키우지만,

사정이 있어서 못 키울 수도 있어.

너를 낳아주신 분처럼.”

그래도 낳았으면 키워야지.

왜 나만 낳고 안 키운 거야?!

왜 나만 입양된 거냐고!

나는 엄마랑 사는 게 정말 좋고,

엄마가 내 엄마라서 진짜 좋은데,

나를 낳아주신 분은 싫어.

낳아서 안 키웠잖아.

그래서 낳아주신 분은 안 고맙고,

기도도 안 할래.”


“그래, 알겠어. 지금 네 마음이 그렇다면

일부러 낳아주신 분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는 없어.

봄이가 낳아주신 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거나

그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해.

그럼 엄마가 기도할 때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하실 거야.”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치열했다.




예기치 않게 하게 된 봄이 생모의 이야기에

전혀 몰랐던 생모를 향한 봄이의 분노를 알게 되었다.

친구들은 입양인이 아닌데, 왜 나만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니 더 분노가 차오르나 보다.


돌이켜보면, 입양가족 캠핑에서

봄이는 입양아가 아닌

그 가족의 친생자들과 친하게 지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입양가족들과 캠핑을 다녔었는데

아이들은,

입양된 또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어른들은,

입양에 대한 생각과 고민들과 입양가족으로써

저마다의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때를 되짚어 생각해 보고, 사진을 들여다보니

봄이는 입양아들과 같이 놀이하지 않았다.


오빠와 함께 놀거나,

입양아가 아닌 그 집의 친생자들과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봄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봄이는 늘 그랬었다.


7살이 되고, 가을이 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봄이는 입양가족들을 만나기를 거부했었다.


"왜 내가 그들을 만나야 하는데?"


이 한마디로,

우리는 더 이상 입양가족 캠핑을 가지 않았고

입양가족 모임, 교육 등

그 어느 것도 함께하지 않았다.

자기 의견이 정확하고 분명한

봄이의 생각을 따라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부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난해하고 힘들다.

작년까지 봄이는 지금 아빠가 생부라고 생각했었다.


아빠와 생모 사이에서 태어난 줄 알고 있었어서

그 사실이 밌기도 했었는데,

생부 이야기가 나오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처음 해보는 생부의 이야기는...

횡설수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갔는데,

생부에 대한 부분도 다시 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생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봄이는 더 화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었다.


봄이는 생모에게 화가 나는데

엄마인 나는 고마워서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한다니...

봄이는 내게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했을까ㅠㅠ

돌이켜보면 정말 모자람과 부족함 투성이의 엄마였다.


생모를 향한 봄이의 분노는 언제쯤 사그라들...


시간이 약이겠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고 버텨내야 한다는 것이

때론 참 힘들다.


지금 봄이는 생모가 궁금해서 보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직접 키우지 않은 생모에 대한 분노로

마음이 혼란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건강한 봄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힘든 시간들을 아파하고 이겨내야겠지만

나는 내 딸이 적당히 조금만 아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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