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말소리 - 소설

소리 없는 말소리


뜬구름처럼 서울 간 손주에게

귀에 닿지 않을 할매의 말소리가

서운할지 모르진 않았는데,


사실 몰랐던 게

벌써 스무 해야.


할매의 마지막 소리 없는 말소리가

천둥처럼 닿았을 때,


내가 감히 울었어.


할매만큼 소중한 사람이

잊히는 게 두려워.


부족해도 할매의 말을 기억해야 해.


인간은 알아도 아는 게 아니지만,

평생 그랬던 것처럼


이번만은 용서해 주이소…….



여긴 또 어디야? 우선은 추워. 그만큼 짜증 나고.


온 사방이 눈으로 덮였어. 둥그렇게 놓인, 둥그런 조명이 그걸 증명하고 있거든. 적어도 난 숨을 쉴 순 있어. 검은 무언가가 땅에서 솟아, 날 납치했지. 신경이 좀 쓰여. 내가 거의 느낄 수 없는 숨이, 흐물거리는 안개가 되어 시야를 가렸을 때, 내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한 거야.


‘왜 난 보았을 때만 믿었던 걸까? 보았을 때만 확신에 차고, 흥분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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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네. 요즘은 모든 게, 그냥 성에 차지 않아. 뭔가···, 분명히 뭔가 더 있을 거 같은데, 중요할 때 도망을 가버리는 느낌이야. 뭔가 걸린다고 할까? 누군가 내 짜증에 묘한 쾌감을 느끼면서 즐기고 있을 거 같은 기분이야······. 정말, 안 그랬으면 좋겠네.


“지금 뭐 하는 거야!”

섬뜩하게 그렁거리는 목소리야. 내 앞에는 거대한 기관차가 서 있어. 마치 어느 크리스마스 영화 같은 상황이지만,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 하필 이럴 때 그 영화가 생각나다니!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또 그 목소리를 느낀 순간, 조종석에 들어와 있어. 뭐지? 어떻게······.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되나?”

내 앞에 선 존재는, 뼈만 남은 해골이야. 친절하게도, 검은색의 로브를 온몸에 두르고 있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사신의 모습으로 서 있어.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여긴 과정 없이 이뤄지는 세계야. 내 정체를 확인하려 이 칸에 들어오고, 하나라도 돌파구를 찾는 것처럼 말이지.”

“…….”

“아, 더 쉽게 얘기해 줄게. 네가 무작정 푸른일 찾아낸 거라던가, 꼬마 친구들이 자기 땅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거라던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현상들 말이야.”

“아~~~~, 알 거 같아요.”


그는 내 몸을 훑어봤어. 맞아.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난 이런 게 짜증 나.


(중략)


“절 끌고 온 이유가 뭐죠?”

그가 천천히 몸을 기울였어.

“그게 무슨 말이지? 대뜸 나쁜 놈으로 만드는군.”

허허~!

“누가 봐도, 납치한 건데요?”


“아니, 네가 부른 거야. 네가 날 필요로 했지.”

“뭐라고?!”

“굳이 설명해야 하나?”

하……. 맞아, 그럴 기분은 아닌 거 같아.

“그래요. 뭐가 됐든, 이유가 뭐죠?”


사신이 또 한 번 움직이더니, 뜸을 들이며 말했어.

“불멸의 가정에 대한 거지.”

“????”

사신은 당연한 듯 넘어가지만, 난 진짜 모르겠어.


“몇 가지 단어에만 반응하면 되는 거야.”

? 더 모르겠어.

“계속해 주세요.”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건, 복잡해지는 거랑 다르다! 언제나 핵심을 놓치지 않아야 하지.”

“흠~.”

“여긴 필요한 게 이뤄지는 공간이야. 이 공간에 네가 왔다면, 네게 이 공간이 필요했다는 것이지.”


“아~~. 그 이율 물어보려 했다면, 좀 이상한 일인 거네.”

“바로 그렇지. 왜 이곳에 왔지?”

음,

“그래, 너무 복잡했어.”

“쉬고 싶었던 건가?”

!!!!


“아니, 힘든 거랑은 달라. 이건 지친 거에 가까워. 내가 어느 속도의 리듬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거야. 그걸 알 수도 없는데, 계속 지들 리듬대로만 라임을 타대니까, 짜증 났던 거지.”

“바로 그거야! 그래, 이제 여기가 마음에 드나?”


“왜 죽음을 사용하는 거지? 별로 안 어울린단 생각도 들어. 오, 물론 옷은 나름 잘 어울려.”

“흠~,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됐군. 한 페이지 정도로 끝내버려야겠어.”

“뭐?”


“여긴, 죽은 공간이다. 누군가의 편리한 동면을 위해 만들었고, 모두가 동의했기 때문이지. 모두 색깔 있는 삶을 바라니까. 모두 톡톡 튀고 싶어 하는 아이니까. 무채색은 죽어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살아선, 끊임없이 그런 오만을 위협하면서도, 모두를 아우르는 거다. 그게 내 역할이고.”

“남을 죽이는 거?”

“비슷하지.”

“음, 예민한 문제구나. 아! 대답하지 마. 뭔가, 낭비되는 느낌이야. 그래, 아마도 시간일 거야.”

사신은 또 천천히 움적였어. 젠장, 또!


“그럼 넌, 검은 대지구나? 그냥 아스팔트는 아니었네. 이름은?”

“밤이다. 어디에나 있고, 언제든 나타날 수 있지. 누군갈 특정한 시기에 데려가는 것도 가능하다.”

“와, 놀라워!”

“흠~.”

ㅎ,

“그 설명 맘에 드네.”


“왜 혼자 여기 와야 했을까? 푸른이랑 같이 올 수도 있었을 텐데.”

“꼭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나?”

응? 그야, 음……. 물론 없지만,

“항상 같이 다녔는데, 좀 서운하잖아.”


“ㅎ, 그년이 여기 오면, 서운한 정도가 아닐 거다. 녀석은 자신을 발견하길 거부하고 있으니…….”

“?”

“목적이 같은 것은, 서로 다른 모습인 경우가 많은 법.”

어? 뭔가 알 것만 같은 기분이야. 사실 잘 모르겠는데도.


“그럼, 여기 일은 어쩌면 되는 거야?”

“……. 다시 말해 주지. 넌 이곳을 필요로 했다. 그것만이 이곳의 규칙이지.”

“그건, 즉?”

점점 알 것 같지만, 이상하게 이 저승사자를 골탕 먹이고 싶단 말이지~.

“녀석 없는 밀회 말이다!”

!!


“단 하나의 규율로, 모두를 아우른다는 게 가능한 거야?!”

“……. 그년처럼 영악한 녀석이 되었군.”


아, 이건 좀 삐졌을지도.

“잠깐, 하나만 더! 나 혹시, 죽으러 온 거야?”

“…….”

하! 이젠 뼉따구도 지 좆대로 하네!


‘언젠가, 말이나 설명 없이 알게 되는, 소중한 배움이 올 거야. 죽으러 왔냐고? 우린 항상 죽고 있는걸. 여기선 그걸, 더 쉽게 배울 수 있지. 하나씩 중요한 진리를 알게 되는 건, 죽음에 착실히 가까워지는 거야.’


“다시 한번, 동면의 시작이다!”

“왔?”


(중략)


수없는 악몽을 맞이했어. 맹수에게 먹히는 동시에, 차 사고를 당하지. 세계 인구를 일일이 세어가면서, 70억의 비명을 들어야만 했어.


못생긴 놀림을 다시 마주했지. 어그러진 정신을 다시 확인하고. 애어른 소리를 들었어. 눈물이 많았지. 계집애 소리도 들었고.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 혼자 놀았지. 다르지만, 같아야 했어.


좋은 아이가 되기로 했어. 우월주의에 빠졌어. 모두를 깔보고 있지. 모두 멍청해서, 내가 하는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어. 서로 죽고 죽이는 세상에 깊은 공포를 느끼며, 안심하고 싶었어.


내 고통이 축에도 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도 모른척했어. 내 게으름 때문에, 날 아끼는 이들에게 상처를 줬어. ‘여자 친구는?’이라는 질문을 빼먹지 않고 받았어.


세상에 순응하는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가면을 배웠어. 시인을 꿈꾸던 나를 잊었어. 너무 짧았어. 대용으로 소설을 찾고, 마약처럼 시를 찾게 되었어. 음악에 그랬던 것처럼, 내 글에도 그래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어.


세상과의 타협이라기엔, 하찮은 슬픔이야. 난 재미없는 놈이야. 이건 도저히 거역할 수 없더라.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을 질투하고 증오했어.


내 언어를 가지고 싶어. 매일 바뀌어야 한다고 다짐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게으르지. 이 패턴도 이제 지겨워.


난 할머니를 홀대했어. 할머니는 때가 되어 돌아가셨어. 진짜 죽음이었어.


난 여성 기피증이 있어. 향수 알레르기도 있지. 특히 이쁜 여자들이 무서워. 그리고 마지막은, 어김없이 너야. 넌 언제쯤 나를 놓아줄까?



“할무니~, 저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손주의 귀염 떠는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갑자기 끝나버렸어. 할머니는 손주를 다시없이 반짝이는 눈으로 맞이했지.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하루 대부분을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4각 지팡이로 겨우 몸을 움쩍이며 살아가. 그에 비해, 손주는 너무나 멀쩡하지. 할머니에 비하면, 죄 없는 천사처럼 날아갈 거 같아. 하지만 생기만은 번져가······.

“이건······.”


“환영하네.”

사신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는 듯이, 나를 불렀어.


(중략)


“너희 족속은 가장 필요한 것이 있어도 모르지.”

“그러게…….”

“그게 네놈의 목적이다.”


“···여기도 내 꿈인 거야?”

“꿈이면서도, 꿈이 아니기도 하지.”

“또 형편 좋은 말만 하네.”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에이~, 할매는 그런 거 몬 한다~. 아빠한테나 물어봐라. 애비야~”

할머니는 손주한테 미안하고도, 맘이 급한 거 같아.

“할머니~, 이거 안 어려워요! 그냥 옛날얘기만 들려주세요~. ^^”

“볼수록 재수 없는 놈이야, 안 그런가?”

“…….”


난 한동안 반응하지 못했어. 왜? 이젠 어찌 되어도 상관없을 거 같아. 그냥 이대로, 옛 추억이나 씹어대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꽤 눈물 나는 작업이지만······.


‘아니야.’


“야!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이야? 그런 생각을 누가 한다는 거야?”

“우문이군.”

이놈이!

“……. 그래…….”

그래…….


“넌 할머니를 홀대했다! 그 잘난 합리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신념을 산산이 부숴버리려 했지. 낡은 생각이라고 치부하면서 말이야! 참 어리석은 일이지. 낡은 게 어떻다는 거지? 그건 그녀의 소중한 일부다!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의 룰이지! 넌 단순히, 그녀의 마음을 무시한 거다.”

“계속해줘.”


“그뿐이다. 덜 불편하기 위한 핑계.”

“즉, 난 내 신념과 다르게 행동했다는 거야.”

“넌 언제부터 할머니의 불멸을 가정했지?”

싸늘한 목소리.

“뭐? 그건···”


“초롱아, 니 할미 살아온 거, 말 다 몬 한다···. 그걸 우예 다 말 하나······.”

분명 방 안에 있지만, 어딘지 모를 곳을 바라보는 눈으로, 할머니는 얘기했어. 그런 걸 연륜이라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네. 깊고 슬픈 개념이야.


“그럼, 전쟁부터 얘기해 보는 건 어때요? 그때 얘기 자주 하시잖아요.”

“지금도 고작 과제 하나에 알량 거리고 있군. 정말···”

“맞아. 정말 역겨운 녀석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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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남이었다면, 날 죽이고 싶을 거야. 그 정도로 너무한 놈인걸. 할머니한테도 마찬가지였지······. 할머닌 사실상 내가 죽인 거야…….”

“네가 말하는 죽음이란 뭐지?”

?

“죽는 건, 죽는 거지.”

“할머니가 죽을 때, 그건 정말 죽는 거였나?”

!!

“무슨 소리지?! 할머닌 죽었어! 이제 세상에 없다고!”


“초롱이넌 폭탄 소리 들어본 적 없제? 하이고··· 진짜 말도 몬 한다. 뿍짝뿍짝 꽝꽝대는 그기, 사람 잡는 소리가…….”

“넌 진짜 죽음을 알고 있나?”

“제발! 전혀 모를 소리만 하지 마! 어지러워··· 생각하는 게 힘들어···”

제발…….


“힘들어도 해야 할 게 있지. 네가 필요로 하고 있다. ‘폭탄’이 가지는 의미의 차이지. 둘은 완전히 같은 주제란 걸 모르겠나?”

하!

“내가 진짜 죽음을 몰랐다고?”

난 모든 걸 포기하고, 되물어야 했어.

“장담하지.”

“헛소리 마!”

나도 놀랄 정도의 외침 아니, 비명이야.


‘인정해! 모른다는 걸, 받아들여!’


“그때, 폭탄이 뿍짝뿍짝 터지고 있는데, 방공호에 사람이··· 화~··· 생전에 사람이 그래 쫍아 터진 데 있는 걸 본 적이 음스면서도···, 앞집 처자는 간난 애기한테 용을 쓰면서 젖을 줄라 카고··· 진작에 혈색이 퍼런걸······.”

“조금은 할 마음이 들었나?”

“맞아. 그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했을 거야. 죽음을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야.”


“죽음을 처음 생각했을 때, 우린 어땠지?”

“그야, 무서워서 떨고 있었어. 엄마를 찾고 있었지. 엄마한테 난 죽기 싫다고, 없어지기 싫다고 했어. 언젠가 내 생각이라는 것이,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걸, 받아들이기 싫었어. 마음의 안정이라도 찾고 싶었지. 엄마한테 어리광 피우고, 위로받고 싶었던 거야. 우린 그런 아이였어. 뭐, 무리도 아니지. 어린아이가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리고?”

“정말, 얕은 생각이야. 여전히 죽음에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어. 여전히 무섭다는 거지. 하지만 죽음은 그런 거보다 훨씬 잔혹한 거야. 딱 세상이 잔혹함만큼 말이야. 세상은 삶과 죽음으로 이뤄졌으니까.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좋군.”


“그래…, 뭐?”

“자, 다시 눈을 감아라.”

“잠깐, 이게 끝이라고?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다들, 항상 이런 식이야. 내 스트레스를 풀러 온 거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얘들은 죄다 하나같이…….


(중략)


“또 복잡해질 거 같으면, 할머니 얼굴을 떠올려 봐. 그럼, 모든 게 단순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확실히…….

“그전에, 한 번 더 할머니를 보겠어.”

“얼마든지.”


“우리가 숨어 사는 집에 인민구이 돌와가, 남편은 어디 있소? 하더라고. 난 남편 같은 거 읎소! 거짓부렁, 어디다 숨겼지? 고대로 손찌검을 할라는데, 차마 때리지는 못하더라. 주인 이모가 막아서기도 혔고. 자네도 아내가 있을 터인데, 젊은 처자를 왜 때리려 하오? 그라고는 그냥 갈 길 가버리드라. 초롱아, 그 무신 빨갱이도 사람은 사람이데이. 다 똑같이 고생한 거 아이긋나…….”

“네, …….”

하, 쟨 진짜 왜 저런대.

“그럼요, 할머니. 그럼요. 할머니 말이 다 맞았던 건데…….”

이 이상은 죄스러운 거 같아. 눈을 감아버렸어. 내가 저 주름의 산맥을 쳐다본다는 게 이렇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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