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 소설

축제가 한창이야.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왁자하게, 다른 이를 맞이하거나 떠나보냈지. 내게 이건, 거리의 사람들이 지루한 무표정에서 벗어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야. 모든 사람의 얼굴이, 신비한 빛깔을 품고 있는 것만 같아.


‘물론, 틀렸다는 걸 알아. 그냥, 그렇게 느꼈다는 거지.’


이제 생각해 보니까, 거리의 수많은 ‘그’ 표정은 새해를 맞이할 때 짓는, 균형의 표정일지도 모를 일이야. 거의 본능적으로 그 표정을 지어내는 거지. 하지만 다른 동물들은 새해라는 걸 모르잖아. 그럼, 본능은 아닌 건가?


어쩌면 다른 사람과 똑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조화로운 사람입니다.’하고 생색내는 건지도 몰라. ……. 사실, 요즘은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어. 다만, 그날의 나는 행복했어. 앞으로 새롭고 즐거운 일이 일어날 예감에 들떠 있었어. 남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런 건 빠르게 사라지지.’


왁자한 건 사람들만이 아니야. 줄지어 걸린 연등과 여러 장식의 풍선, 포장마차가 늘어놓는 윤기 넘치는 음식, 알록달록한 가면, 노을이 지면서 자아내는 띠가 괜히 들떠서 붉어지는, 그 풍경.


이 모든 것이, 오늘만 어디에선가 빌려온 듯, 낯설고도 흥겨웠어. 처음 느끼는 이 감정을, 빨리 엄니에게 알리고 싶었지. 앞서 걸어가는 그녀의 치마를 당기면서,


“엄마,······.”

“응?”

“어~······. 음~······. 그게~······.”


난 새롭고 많은 감정을 표현할, 적당한 언어를 찾기 위해, 머릿속을 뒤적였어. 학교에서 배워둔 말은, 왜 중요한 때만 생각나지 않는 걸까? 정말 미스터리 해.


‘엄니가 웃는 걸 보고 싶어. 오늘은 분명, 환하게 웃으실 거야!’


아!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대번에 알 수 있다면, 엄니의 환한 웃음을 지금 볼 수 있을 텐데…….


“우리 초롱이, 생각이 잘 안 나니? 저~기 앉아서 생각해 볼까?”

“응!”

우리는 어머니가 가리킨 벤치로 향했어.


‘근데 초롱이? 그게 내 이름이 맞나?’


벤치가 다 그런 거지만, 그것도 잠깐 다리 쉼 할 수 있을 정도로만,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그래, 그렇게 존재가치를 유지하는 물체야.


행인이 쉬다가도 가던 길을 다시 가게 하는 힘과, 놓치게 될지도 모르는 동행자와의 소중한 시간을 가진,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게 자신의 균형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물……. 지금 생각해 보면, 엄니는 나의 소중한 말을, 모두 주워 담고 싶었던 모양이야. 회상은 참, 좋네. …….


엄니는 날 기다려줬어. 내가 고민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난 마음속이 환해지는 기분이었지.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그 느낌. 이제는 느낄 수 없는······. 그래! 이렇게 말하면 되겠어.


“사람들이랑 등이랑 풍선이랑 가면이랑 하늘이랑 그리고 음~·······. 암튼, 다들 웃고 있는 거 같아! 그래서 웃겨! 히히.”


말을 마치고 엄니의 눈치를 살필 때, 그녀도 나처럼 마음속이 환해졌다고 느꼈어.


하지만 다음 순간, 난 엄니가 웃으면서도 울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지. 엄니는 그 좁고도 포근한 품에 날 가져가 버렸어.


“우리 초롱이가 다 컸네. 아직 어린 줄 알았는데······. 많은 걸 사랑하는구나. 아유, 든든한 내 새끼.”

엄니의 눈물이 내 머리에 떨어질 때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귓가에 또르르 흘러들어왔어.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우는 건데, 엄니는 지금 기쁜 걸까? 슬픈 걸까?


‘난 엄니의 맘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어. 그때는······.’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보여. 날은 저물어가고 있어. 하늘이 주황 띠들을 서서히 걷어내고, 명암 배치를 고치는 손길로, 세상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지.


(중략)


“엄마, 사람들이 왜 모이는 거야?”

엄니의 품을 벗어나면서 한 말이었어. 어머니의 표정은 오묘했지.


“어? 아. 조금 있으면 불꽃놀이가 시작될 거야.”

“그게 뭐야?”

“초롱이는 처음 보는 거구나. 하늘에 불빛을 쏴 올리는 거야.”

“그건 하늘이 늘 하는 일인데.”

“이 불빛은 사람이 만드는 거거든. 꽤 이뻐. 물론 하늘빛에 비할 건 아니지만······.”


난 조금 의아했어.

“사람이 만드는 걸, 왜 다들 구경하는 거야?”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신기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람이 하늘을 지배하는 걸 확인하는 거지.”

“어려워…….”

“초롱이도 조금만 더 크면 알 거야.”

“저걸 다 보고, 아빠랑 만나?”

순간, 엄니가 움찔했어.


“그래 저걸 다 보고, 아빠랑 저녁 먹으러 갈 거야~.”

“야호! 히히히히.”

“그렇게 좋니?”

“응! 엄~청 좋아. 아빠는 엄마처럼 자상할 거야. 얼굴도 잘생겼을 거고, 키도 클 거야. 또, 누구보다 강할 거야.”

“그래, 네 아빤······.”


엄니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난 이미 사람들 속으로 달려가고 있어. 엄니의 소매를 당겼지.


“엄마, 우리도 저~기서 보자! 빨리!”

엄니와 난 조금 뛰었어. 난 멀쩡했지만, 엄니는 숨을 조금 허덕였지. 행사가 임박해서, 사람들이 순식간에 들이찼어.

우린 순식간에 군중의 중앙에 서있어. 노른자가 된 기분이었지.


사람들이 팔방에 들어차서, 여러 냄새가 섞여났어. 명확히 무엇 무엇이라 말할 수 없게, 냄새는 수없이 섞여들지. 특유의 왁자하고 습한, 사람 냄새가 탄생하는 방법이야. 가까운 냄새는 약간 선명하고, 먼 냄새는 약간 희미할 뿐이지. 물론, 냄새뿐만이 아니야. 목소리도 그런 잡다한 소리가 되었어. 언어는 언어지만, 문자는 아닌… 그런 소리지.


당시 우린, 큰 실수를 했어. 손을 잡지 않았거든. 아니, 꽉 잡진 않았거든. 사람들에게 떠밀려, 쉽게 분리되었어.

“초롱아, 끝나면 벤치에 와야 해! 아무나 따라가지 말고! ······.”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떠밀릴 때 들린, 엄니의 다급한 외침이었어. 하지만 이 거대한 물길을 거스르기엔 너무나 연약해······.

그래도 걱정은 없어. 혼자 있는 건, 익숙하니까. 오히려 자신 있거든.


‘불꽃놀이를 혼자 보고, 당당히 엄마 앞에 서야지. 그럼 웃음만 지으실 거니까!’

그때였어.


어떤 하나의 빛줄기가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허공을 가르더니, 어느 지점에서 사라졌는데도, 펑 소리를 내며 수없이 작은 불꽃을 낳아갔어.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불꽃은, 서로 다른 타이밍에 박자를 타는 춤꾼 같았지. 세상에, 하늘에 저런 빛도 칠할 수 있어!


하늘이 만드는 빛은 지평선부터 서서히 터지며, 모두를 채우고 감싸. 이 불꽃은 엇박자의 음악을 만들고는, 순식간에 놓아버리고, 다시 잡아 버리는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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