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비슷한 하루야. 어제 내가 화낸 일도 잊고, 평소처럼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어. 신기하게도, 어느새 익숙해졌어. 좀 지겨워진 감이 있지만, 난 이 느낌이 꽤 마음에 들어. 푸른인 좀 조심하는 거 같았지만, 평소처럼 과묵하게 걸었고, 난 평소처럼 재잘거렸어. 고맙게도 푸른인 땍땍거려 줬고!
무언가 힘든 일이 지나가고, 기대하던 끝을 맞이할 때, 어김없이 다음이라는 것이 찾아오는 법이야.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끝이란 건, 사실 없는 건가 봐. 오늘 그걸 알아버렸어. 우린 이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거야. 어제와 오늘이 언제나 같다면, 누구라도 미쳐버리겠지? 반대도 마찬가지고. 정말 그럴 거야.
아마 이해가 잘 안 될 거 같아. 만화를 본다고 생각해 볼까? 언제나 기대했던 끝이란, 찾아오지 않아. 그게 안식이든 과제의 완결이든, 끝이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아.
좋은 만화를 보고 있다면, 그 끝을 향해서 확실히 걸어갈 수 있을 거야. 우린 그 순간을 흥분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만화의 완결이 정말로 찾아온다면, 막상 우리를 기다리는 건, 기대했던 모든 것을 충족한 우리가 아니야. 그 흥분 자체가 없는 삶은 이제, 있을 수 없는 거니까. 우린 아마 다음 좋은 만화를 열심히 찾고 있겠지. 기대했던 끝보다는, 늘 기대하고 있는 일상을 원하고 있는 거야.
근데, 어제 내가 화낸 건 그런 건가? 조금은 다른 거 같아. 만화가 잘 안 맞으면, 다이어트를 한다고 생각해 볼까? 누구나 처음엔 그럴듯한 계획이 있는 법이니까.
일상에 원하는 변화를 주는 계획을 세운다는 건, 정말로 신나고 기대되는 일이야. 그것이 때론 우릴 크게 움직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게 일상이 되는 건,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야. 어쩌면 다이어트는 살을 빼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 짧은 만족감을 충전하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몰라. 실제론 내 살이 찌더라도 말이야. 그 좋은 습관이라는 것이 일상이 되기 전에 흐지부지되는 건, 세계와 나의 평화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야. 일상이 변한다는 건, 만족스러운 것이랑은 정말로 거리가 먼일일 거야.
일상에 진짜 변화가 온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일상의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그 과정에서 맘에 안 들었던 것들의 마이너스 가치가 더 거대할 확률이 높아.
당장에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기라면, 더 그렇지. 그거 알지? 사람은 누구나 성격이 급하단다. 난 꽤 열심히 한 거 같은데, 체중계가 물리학의 현실을 말해주면, 기가 죽어버리지.
아, 이 비유가 적절한 것 같아. 맞아, 다이어트 3일 만에 야식으로 치킨에 맥주라도 먹어버린 거 같아. 지금 먹고 있다는 게 아니라, 다음날 점심나절 즈음에 거북하게 삭히고 있는 기분 말이야. 아직 아침 체중계라는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있지만, 일상에 휩쓸려 안심하는. 지금이 딱 그거야. 바쁜 와중에 점심을 먹고, 입가심으로 커피나 먹고 있을 때 스치는, 어제 끝낸 다이어트에 왜인지 불평하며 안심하고 있는, 그 감각 말이야.
참 이상한 일이야. 나 어제 화를 냈지? 정말 이상해. 푸른이와 세상이 어떤 건지 내기하고, 걸어왔던 일상의 변화가 믿어지지 않아.
도보로 세계 일주하는 변화도 그렇지만, 그런 일상이 나랑 푸른일 이렇게 바꿔 버렸다는 것도 상당히 이상한 일이야. 지금 푸른이가 갑자기, ‘어때? 이제 좀 세상이 복잡한 거 같아?’ 해도 그냥 동의할 수 있을 거 같아. 왜? 세상은 사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거니까. 굳이 누가 우길 필요도 없이, 세상은 그런 물건이니까.
어쩌면 지금, 동행의 목적을 잃었을지 몰라도, 다음은 오는 거야. 우리의 일상에서 목적보다 중요한 일들이 쉼 없이 찾아오고 있으니까. 저 똘똘하고 꽉 막힌 푸른이조차 아무런 지적을 안 할 정도로, 이 일상이 익숙해지고, 좋은 거야. 언제나 같거나 다르지 않으니까. 서로가 소중해진 거지.
내게 어제와 오늘의 차이는, ‘일상의 소중함을 아냐 모르냐’인 거 같아. 이제는 모든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아. 어제 화를 냈고, 오늘은 사실 불편하고, 여전히 다음이 기대되지만, 이젠 좀 무섭기도 해. 하지만 절대 다음을 멈출 정도는 아니야.
말을 많이 돌렸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다음이 기다린다는 거야. 그게 세상 편한 집으로 돌아오는 거라도, 다음을 위해, 집이라는 다음이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