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비과학적인 추론이지만, 난 모든 ‘이름’엔 분명, 이유가 있다는 직관을 가지고 있어. 혹자가 말하길, ‘명명하는 것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지.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는 격언이지만, 난 이게 상당히 정확한 고찰이라고 생각해.
이건 <어린 왕자>의 여우가 말하는 철학과 깊은 관련이 있지. 관계 속에서 무언가에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예속을 동반하기 마련이라는 주장 말이야. 난 처음 여우의 말을 들었을 때, ‘그런 거지!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어!’하며 안도의 함성을 질렀어.
무언가에 ‘이름’이 붙는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든, 그 존재가 다른 존재와 연관을 가지게 된다는 걸 기억하길 바라. ‘이름’은 자신과 객체를 분리하고, 존재 사이에 관념적인 막을 형성하는 거야. 여담이지만 당신이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을 안다면, AT필드(존재와 존재 사이에 존재하는 에너지 형태의 방패)와 ‘이름’은 거의 동일한 개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해. 아마 <에반게리온>의 작가도 비슷한 철학으로 세계관을 구축했겠지. 자신과 타자를 분리하는 것으로, 하나의 새로운 연관(聯關)을 형성한다는 철학 말이야.
물론 유명한 작품의 도움 없이도, 이 철학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어. 설령 그런 의도를 가지지 않더라도, 무언가에 ‘이름’을 명명하는 것은 최소한, 객체를 분류하거나, 어딘가에 예속시키는 효력을 가지고 있지. 우린 세상 거의 모든 존재의 ‘이름’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보유하고 있고, 손쉽게 반려동물의 호칭을 정하지. 아이들에게 어떤 형식이든 의미를 가지는 이름을 붙이고, 파트너에게 특별한 애칭을 지어줘. 때로 그것이 해학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귀엽고 순수한 의도 속에 어떠한 형태의 예속이 있다는 모순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르지.
이렇게나 삐딱한 사상을 가진 덕에 난, 어떤 것이 가지는 ‘이름’에 진지한 고민을 하는 녀석이 되었어. 쉽게 말해서, ‘나무는 왜 <나무>지?’식의 의문을 밥 먹듯이 해왔다는 거야. 이렇게 하등 쓸모없는 고민에 빠져버린 나는, 어쩌면 이 안에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진리가 있을 거라는 직감에 목매다는, 멋진 녀석이 되었지.
헛소리가 좀 길었는데, 오늘은 ‘꽃’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얘기하려 해. 이건 정말 절묘한 표현이지. ‘꽃’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어? 당신은 어떤 거 같아? 흔히 우리가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만들 때, ‘꽃’이라는 객체를 사용할 때가 많은데, 이건 단순히 ‘꽃’이라는 존재의 절대적 속성에만 발생하는 현상일까?
무슨 말이냐면, ‘꽃’이라는 ‘이름’이 가진 속성을 최대한 그 대상에게서 떨어뜨리고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린 ‘꽃’이라는 이름의 이유를 훨씬 잘 성찰할 수 있다는 거야. 즉, ‘꽃’이라는 이름이 무작위로 정해진 게 아니라, 그 단어 자체가 가진 힘으로 이미 ‘꽃’이라는 존재를 수식하는 걸 증명할 수 있다는 거야!
또 혼자 흥분하고 말았네. 이제 내가 왜 이리 난리인지 설명해 볼게. ‘꽃’이라는 이름의 속성을 분석하면서, 이 직감은 시작되었어. 처음엔 ‘꽃’이라는 단어의 인상이 ‘끝’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네이밍이야. 새삼 ‘꽃’의 생애를 생각해 보면, 매 순간 끝을 향해 달려가는, 생명의 가녀린 힘을 느끼지 않니? 처음 ‘꽃’이라는 이름을 생각한 사람은 분명, ‘끝’과 ‘꽃’의 허무한 숙명을 담아내고 싶었을 거야. 그야말로 대성공이지 않아?!
이것 말고도 대단한 부분은 더 있어. ‘꽃’이라는 단어의 모양을 잘 보도록 해. 이 단어의 오밀조밀함은 갓 피어나는 꽃봉오리의 모양과 너무나 흡사해. 사실 ‘꽃’이라는 글자의 모양 자체가 작지만 섬세하게 아름다운, 하나의 꽃처럼 피어있는 것도 기가 막힌 일이야. 분명 억측이고 우연이지만, 이 대단한 기적을 기록해 보는 건 별개의 일이지.
종합적으로 ‘꽃’이라는 이름은, 이미 그 자체로 ‘꽃’이라는 존재의 속성을 잘 담아내고 있어. ‘끝’이라는 표현과 너무나 유사해서, 실제로 발음해 보면, 그 짧고 화려한 시작과 끝을 감지할 수 있지. 심지어 단어의 생김새마저 ‘꽃’이라는 객체의 모양을 많이 닮았고.
이런 우연 덕분일까? 우린 많은 시나 노래에서 ‘꽃’이라는 말이 때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끝’의 숙명을 수식하는 걸 발견할 수 있어. 학생 시절에 내가 지은 글 하나를 소개할게.
‘눈물은 꽃과 같아. 그 짧음에 난, 네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거지. 절망은 아름다워…….’
좀 많이 쑥스럽지만, 이런 식으로 우린 ‘꽃’이라는 단어의 형식과 속성을 활용하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그건 다른 나라의 언어로 생각해도 마찬가지겠지. 여기선 영어와 일본어의 예를 보려 해.
‘flower’(플라워)는 꽃의 영어식 표기인데, 한국의 ‘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가진 이름이야. ‘이름의 이유’를 찾으며 흥미로운 점은, ‘이름’이 주로 존재의 한 측면을 축약해서 수식하기 때문에, 각각 다른 언어에서 객체의 같거나 다른 속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거지.(객체에 대한 보편적 느낌이나 해당 문화의 특수함을 연구하기 좋다는 거야.)
‘flower’의 어감은 화사하게 펼쳐지는 느낌이 강해. ‘꽃’이 단순하고도 복잡한 묘사에 집중한 것과는 사뭇 다르지. 화사하게 펼쳐지는 꽃의 또 다른 속성과 분명 연관이 있을 거 같아. 그래서인지 ‘flower’는 꽃이 잔뜩 피어있는 들판이나 꽃다발의 이미지와 잘 어울려.
즉, 내 직감에 ‘flower’는 꽃의 생명과 확장성을 표현한 ‘이름’이라 생각돼. 비단 시각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flower’의 어감은 퍼져 나가는 꽃향기의 궤적을 표현한 걸지도 모르지. 조금 더 화려하고, 특징이 확실하며, 생존력이 높은 품종에 대한 서양 원예사(史)의 근현대적 시도와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마지막으로 ‘はな’(하나)라는 표현도 살펴볼까 해. 꽃의 일본어 표현이지. 여전히 내 직감으로만 하는 추론이지만, 이 이름은 어딘가 ‘꽃’과 ‘flower’의 중간 정도를 수식하는 느낌이 들어. 우리말을 기준으로 각각 1, 2, 3 어절로 이루어져서 그런 건지, 내게 ‘はな’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잘 축약된 표현 쪽도 아닌 거 같아.
아마 처음 ‘はな’라는 표현을 알았을 때 들었던 인상이 도저히 지워지지 않아서일 거야. 뭔가, 홀로 어딘가에 피어있는 들꽃에게 붙어있는 이름 같았지. ‘꽃’이라는 말처럼 꽃의 속성을 기가 막히게 축약하려는 시도가 보이진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 피어있는, 작고 특별하지 않은, 이름 모를 들꽃의 이름처럼 들려와. ‘flower’에서 보이는, 꽃의 장대한 생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이름’이지만, 여전히 홀로 어딘가에 소곳이 서있는, 작은 생명의 이름일 것만 같아.
물론 거의 ‘시적 허용’같은 억지 주장일 뿐이야. 언어란 명확한 한계가 있는 발명품이고, 인간의 ‘인지’는 이런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수준에 절대 도달하지 못하니까. 내가 느끼는 느낌의 태반은 ‘단순한 언어적 순서효과’에 지나지 않을 거야. 당장 생각나는 건, ‘はな’(하나)의 음이 한글의 ‘1’과 같아서, 어딘가 홀로 서있는 존재를 연상해 내는 식으로 말이지.
하지만 그런 이유로 당신의 직감이 속삭이는 소리를 놓치지 않길 바라. ‘추론’도 ‘표현’도 할 수 있는 한 치열하게 해내야 하는 것이지만, 당신 마음에 안 드는 모양새라면 그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는 것이란 걸 명심해. 어떤 과학을 가져와도(심지어 유사과학까지 관대하게 받아들여도) 내가 느끼는 ‘이름의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아무렴 어때? 난 이게 재밌는걸. 당신도 조금이나마 이 재미를 느꼈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