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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자유 - 소설

by 여러 이상한 헛소리 Mar 18. 2025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 음~, 마음대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끝내는 거야.”

  “여전히 모르겠는데?”

  역시 그렇지? 하지만 시간은 많아.


  “갑자기 정말 뜬금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지 않아? 예를 들면 길을 걷다, 갑자기 푸른 하늘에 삼켜지거나, 우리가 개를 왜 키우는지, 왜 벌레를 싫어하게 된 건지 궁금해지는 순간들 말이야.”

  “응, 그렇지.”

  “음? 보통 그러냐?”


  (중략)


  “말하자면 지금 같은 거야. 여기 온 순간부터, 너희가 이해할 수 없는 경계에 들어온 거잖아. 난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는 게 좋아. 그게 눈앞에 보이면 더할 나위 없지.”

  “그건 항상 무언가가 일어나길 바란다는 거야?”


  “비슷한 거야. 무언가가 시작되고 변화하고 끝나는. 그 경계의 짜릿함과 변화의 긴장, 그걸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결정하는, 모든 순간이 좋아.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말이야. 설령 내가 죽어간다는 느낌이 들어도, 그런 경계 속에 살아가는 과정일 뿐이야. 죽음이라는 경계를 느끼는 것도, 하나의 삶인 거지.”

  이쯤에서 시청각 자료가 필요하겠어.

  “잠깐 장소를 바꿔보자고.”



  손주 놈의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집안에 낭자합니다. 어쩌면 손이라는 것이 여름철 개구리 소리처럼 그리 빠르고도 난잡하게 재잘거릴 수 있을까요? 할멈에겐 그것이 평생의 의문입니다.


  거실에 컴퓨터가 있으니, 할멈 방에서 컴퓨터까지 멀어야 세 발짝입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그 모양을 목격할 테지만, 그것이 아무렴 그런 소리를 낼까 싶습니다. 그 이상한 여름 개구리의 소리는 정겹지도 우수에 차지도 않습니다. 그저 날카롭게 울어댈 뿐입니다.


  손주 놈의 눈은 가끔 껌뻑거리며, 테레비보다 얇은 네모에서 나올 줄을 모릅니다. 주판처럼 생겼는데 꼬리를 내두른 물건과, 쥐새끼처럼 생겼는데 역시나 기나긴 꼬리를 내두른 물건 위를 장군감의 양손이 수없이 소리 내며 맴돕니다.


  입은 가끔 운동하는데, 할멈으로선 그저 못 알아들을 뿐이지만, 좋을 때 나쁠 때만은 확실합니다. 그러니 손주놈은 그저, 요지부동 아닌 요지부동입니다.


  하도 심심한 할멈은 저놈의 오락이라는 것을 이해라도 하면, 보는 재미라도 있을까 싶습니다.

  “푸른아, 할무니한테도 오락허는 것 갤차 주먼 안 되나?”

  옆에서 듣던 며느리가 약간 웃습니다. 손주 놈의 눈치도 어미와 같습니다.


  “요건 할머니가 이해하기 힘들어요.”

  역시나 허탕입니다.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할멈으로선 기분이 상합니다. 비록 못 알아들을 말일지라도, 배운다는 핑계로 대화 한 짬이라도 더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런 맘을 손주 놈은 몰라주는 법입니다.


  “와 힘들단 거고? 츤츤히 배우면 안 될 거 하나또 읎고, 할무니 머리도 나쁘지 않어!”

  “에이~. 아무리 그래도 할무닌 안 돼요.”

  그건 할멈도 아는 바지만, 이건 너무나 속상합니다. 못 이기는 척 몇 가지 가르쳐 주리라 생각했건만, 손자는 마음도 요지부동입니다.


  “푸른아, 할머니가 심심하셔서 그런 거야~.”

  고마운 며느리의 말입니다.

  “잉? 그럼 할무니허고 10원짜리 화토나 칠래요.”

  오락을 가르쳐주진 않지만, 이거라도 어딥니까? 잠시나마 속상함이 대신 고개를 숙입니다. 손주하고 10원짜리 화토는, 어른 따라 하는 농입니다. 실상은 고와 스톱이 없는, 가짜배기 화토죠. 그런 것을 무슨 재미로 하냐고요? 아직 뭘 모르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래서?”

  하여간 급하긴~.

  “적어도 네가 기대하는 다음은 없어. 여기서 다른 얘기가 펼쳐지거든.”

  “힝……. ㅠㅠ 재밌는데…….”


  (중략)


  “여기서 문제! 이 일화엔 어떤 경계들이 있을까? 그리고 각각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있다면, 그 차이의 정체란 뭘까?”

  “엥?”


  (중략)


  “그럼, 크게 세 가지만 보도록 하지. 처음은 개구리울음 같은 자판 소리야.”

  “좋은 시작이네. 그것이 시작되고 끝나는 경계에 뭐가 있을까?”

  “나! 내가 해볼래! 음~…….”

  푸른이 걱정과는 다르게, 초롱인 잘 해내고 있어.

  “이건 한 마디로 애매한 거야! 경계가 없는 것처럼 이어진다는 게 가장 중요한 특징이니까.”

  “!!!!”


  “오~, 제법인데? 설명 한 번 해줄 수 있을까?”

  “응. 할머니에게 그건 여름밤의 개구리 소리처럼, 끝없이 재잘거리는 거야. 하지만 어떤 안식도 찾을 수 없는, 만들어진 소리지. 거기엔 살아있는 아우성도 아득해지는 그리움도 없어. 사실, 개구리 소리랑은 가장 다른 무언가지. 아마 이 부분을 노린 표현일 거야.”

  오! 정말로

  “기대 이상인데?! 푸른스, 생각보다 잘하고 있나 봐?”

  “……. 제멋대로 알아버리는 거야. …….”

  흠~.

  “뭐, 어찌 되었든 정답이야. 여기에 자유라는 개념을 넣어보자고. 이 경계에 자유가 있을까?”


  “음……, 없는 거 같아. 할머닌 이 소음에 절대 자유로울 수 없어. 엄밀히 말하면, 피해자지. 그렇다고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소년에게 어떤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거도 아니야. 소년은 자기가 소음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모를 테니까.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지.”

  또 하나 더!

  “그리고 소년은 그 소음에 자유로울까? 아마 그 행위에 예속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 오락을 선택하는 자유와는 별개로, 그 소음을 과연 선택하고 있는지는 어려운 문제야.”

  바로 그거야!


  “하나를 알면 열을 알아버리네! 정말 놀라워.”

  “히히~.”

  초롱인 또 멋쩍게 웃었어. 푸른인 아직 안 믿기는 눈치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역시, 푸른인 급해 보여.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이 무수히 많은 경계의 집합이고, 그 집합을 자유의 유무로 판단할 수도 있다는 거야. 이걸 행위와 가치의 관계라고 해도 좋고, 선택과 사회의 관계나, 현상과 인식의 관계라고 해도 좋아. 우리가 언제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알아내고 싶은 거지.”

  “우와…….”

  “거~참 좋은 포장이다.”

  ㅎㅎ,


  “다시 예시로 돌아와 볼까? 초롱이의 분석처럼 이 일화에도 많은 경계가 있고, 그 대상이 항상 자유로운 건 아니야. 사실, 누구도 전혀 자유롭지 않다고도 볼 수 있지. 경계란 건 저항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야. 내가 아무리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내년이라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또 웃긴 건, 자유의 개념만큼 경계의 개념도 유동적이라는 거지. 나이 먹는 건 거스를 수 없지만, 내 마음은 평생 뜨거운 청춘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건 자유와 경계가 융합한, 하나의 정신 상태야.”

  “…….”

  “즉?”

  아따 푸른아, 너무 급해!


  “즉, 자유란 우리가 어디까지 선택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알아내는 과정이라는 거야.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마음을 가지는가는 우리 모두의 자유라는 걸 증명하는 거지. 이 예시에선 어떤 자유가 있을까? 장군감이란 표현은, 할머니 입장에서 최고한도의 자유일지도 몰라. 설령, 우리에게 시대착오적일지라도 말이야. 인위적인 개구리 소리는 자유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소년이 그 모든 걸 이해하게 된다면, 하나의 중요한 자유가 될 수도 있어.”

  “…….”

  “…….”

  이 두 침묵은 의미가 달라.


  “끝이라는 개념이 소중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끝없을 거 같은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명확한 경계를 가지기 마련이니까. 우리가 끝이라는 개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엔 끝이 있어야 다음 흥밋거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경계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연구를 해보면서, 우리의 존재의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오오오오~. 그거 정말 재밌다! 대단해!”

  초롱이의 침묵은 경계를 찾았어.

  “음하히하하. 날 받들라고, 초롱 중생!”

  “너희 뭐 하냐? ;;”

  푸른이도? 다행이야~.


  (중략)


  그렇게 갑작스레 우릴 떨어뜨렸지. 경계라는 건 그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와버리는 거야. 언제든 두렵거나 당황스러운 거지. 하지만 익숙한 무언가야. 분명 우리에게 이유가 있는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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