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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한 이유

by 여러 이상한 헛소리 Mar 18. 2025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물론 음악은 그냥 좋은 거지만, 뭔가 확실한 이유를 적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모든 것의 근원에는 음악이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해. 모든 존재는 각자의 리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응용하면서 깊은 안심이나 힘을 얻고 있다고 말이야. 나도 그런 리듬과 음정의 향연에 나름 심취해 왔다고 생각하고.


  나도 10년 정도 피아노를 친 사람이고 여러 음악을 열심히 들어왔지만, 전혀 그에 걸맞은 수준이 아니기도 한 건 한편으로 좀 부끄럽단 말이지. 한 때는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재능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좌절하기도 했어. 사실 노력을 할 만큼 좋아한 게 아니었던 건데…….


  음악은 그만큼 우리에게 가깝고도 어려운 주제인 거 같아. 언제나 음악을 느낄 수 있지만, 나름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건 전혀 간단하지 않지.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방식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영역이 아니라, 잠시 일상을 잊는 안심의 영역인 거 같아.


  한참 피아노를 칠 수 있었을 때의 내 수준은, 동요 이상의 악보를 바로 쳐낼 수 없는 정도에 코드를 구사하는 방식도 전혀 모르는 정도였어. 아는 사람은 다 알 거야.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정도도 못 해낸다는 건 문제가 많지. 난 악보를 빠르게 해석하는 데에는 전혀 흥미를 못 느꼈고,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거든.


  내게 피아노를 친다는 건, 어떻게든 손으로 멋진 곡을 암기해서 칠 수 있게 되는 거야. 어떤 악보든 겨우 떠듬거리며 볼 수 있는 정도면, <엘리제를 위하여>도 <월광>의 1, 3악장도 <쇼팽 왈츠 7번>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도 결국에는 쳐낼 수 있거든! 음악에 아무런 감을 못 잡은 나라도, 멋진 곡 2개 정도는 내 맘대로 쳐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


  그런 의미에서 피아노는 내게 좋은 도피처가 되어줬어. 한참 중2병스러운 시기에 멋진 곡을 뻗대면서 연주하고, 명상하듯이 내 기분 따라 바꿔보는 게 전부였지. 내 맘대로 멋지게 지배할 수 있는, 그 잠깐의 공간이 좋았어. 예술보단 놀이에 가까운 거지. 게임이나 과식을 즐기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다 피아노를 그만 치게 되었어. 외우고 익히는 시간마저 아까워진 거야. 이 곡도 칠 수 있냐는 사람들의 요청에 밑천이 드러나는 상황도 싫증이 났지. 터놓고 말해서, 난 피아노에 그 이상 어떤 노력도 들이기 싫었던 거고, 그나마 해왔던 노력마저 의심하기 시작한 거야. 비슷한 쾌락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수단은 많았으니까.


  그렇게 대학 진학 공부에 집중하면서, 피아노를 잘라냈다고 생각했어. 이진법의 0과 1처럼 있으면 있고, 없으면 완전히 없앤 거라면서 말이야. 어리석게도 난, 내가 그만큼의 시간을 절약했다고 여겼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 난 어느 순간, 다른 것에 싫증을 느낄 때 피아노를 찾고 있었지. 예전에 칠 수 있었던 멋진 곳의 멋진 부분을 짧게 반복하고, 차마 다시 모든 악보를 외울 순 없어서, 새로운 곡의 하이라이트나 맘에 드는 부분만 시도했어. 소소하게 내 몸이 필요한 테크닉을 아직도 기억해 주는 게 참 고맙기도 했지.


  ㅎㅎ, 비단 피아노만이 아니야. 대중가요 MP3 파일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거든. 오히려 피아노보단 이 영역에 집착하고 있었어. 파일을 받고 듣는 건 피아노보다 훨씬 간단한 작업이었으니까.


  난 내가 이러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었어. 피아노나 음악성에 미련을 가진 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내 인생의 공간을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나와 동생이 피아노를 완전히 그만뒀을 때, 부모님과 이런 대화를 했어.


  “이제 저희 둘 다 피아노를 안 치는데, 집에 있는 피아노를 처분하면 공간도 확보하고 좋지 않을까요?”

  “으음, 그건 절대 아니지.”

  난 어머니의 단호한 태도에 좀 놀랐어. 아버지가 곧 이어나갔지.


  “엄마 아빠는 너와 산이가 가끔 피아노를 쳐줄 때가 정말 좋더라고. 특히 산이의 연주는 힘찬 느낌이 좋지. 비록 너희가 피아노를 그만두더라도, 피아노는 언제나 필요한 가구라고 생각해. 너희들이 가끔 피아노가 생각날 때도, 네 사촌 동생이나 조카들이 올 때도, 언젠가 너희 자식들이 피아노를 칠 때도.”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감동으로 이해하긴 했지만, 머리론 납득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어. ‘그 잠깐의 순간을 위해 저 거대한 걸 방치한다고?’ 이런 느낌이었거든.


  하지만 요즘은 머리로도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어. 사업으로 여유가 생긴 아버지가,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기타를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지. 처음엔 그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아버지가 열심히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는 걸 듣는 시간이 소중해졌어. 그래, 이게 음악이 언제나 필요한 이유라고 느끼는 요즘이지.


  이쯤에서 내가 음악을 좋아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음악은 내게 좋은 흥밋거리인 거 같아. 난 아무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야, 그것도 아주 많이. 음악이나 게임, TV의 예능이나 스포츠 프로는 그런 공백을 아주 잘 채워주지. 특히 잘 만들어진 모든 작품이 내 흥미를 끌고 있어. 나도 그런 멋진 작품을 만들 거라는 막연한 꿈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음악에도 놓을 수 없는 애착이 생긴 거 아닐까? 세상이 만든, 다른 모든 놀라운 것에 감탄하는 것처럼, 음악도 사랑하고 싶은 거지. 이제 내게 음악이란, 주변 사람들의 서툴지만 놀라운 노력에 대한 사랑과, 내 나름대로 좋은 음악과 작품을 밥 먹듯이 흡수하는 거에 있어. 피아노를 놓았지만, 여전히 놀라운 선율을 마음대로 바꿔보고 있지. 잠시나마 혼자가 되어, 머리 아픈 세상을 잊으려고 하는……. 그래. 여전히 모호하고 나약하지만, 그런 게 내 음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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