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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주의

by 여러 이상한 헛소리 Mar 19. 2025

  세상은 긍정적인 메시지가 지배하고 있어. 우리에겐 부정적인 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희망’이라는 필터가 있거든. 어떤 것이든,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결과로 끝맺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이지.


  난 능력 없는 염세주의자야. 자신의 염세적인 태도를 정확하게 표현하지도 못하고, 세상일이 마음대로 안 풀려서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지. 사회에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모든 길을 귀찮아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위하는 걸 최고의 낙으로 삼는 음침한 녀석이야.


  하지만 난 도무지, 머릿속에 맴도는 부정적인 생각을 쳐낼 수가 없어. 그거야말로 가장 나다운 무언가라는 직감을 부정하기 싫은 거야. 나도 사실은 대단한 녀석이라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심정이겠지. 그렇지만, 분명 그 이상의 의미가 내 불평 속에 있다고 믿고 싶어.


  난 인간이 놀라운 만큼 멍청한 존재라고, 남몰래 생각해. 우린 너무 많은 물건을 필요하다고 여기고, 물건의 발전이 언제나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타인의 생각 따윈 헤아릴 생각도 없으면서, 좋은 사람이라는 칭호에 매달리고 있어. 물질적인 가치가 아무리 중요해도, 정신적인 가치가 중요하다고 대답하고 있지. 이미 어딘가의 호사는 반드시 그 이상의 불행을 만든다는 걸 모든 방면에서 체험했는데도, 애써 그것을 부정하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


  내겐 아무도 우리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 우리가 일궈낸 놀라운 것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결과야. 우리가 세상을 많이 바꿔낸 만큼 거대한 대가를 치르는 거지만, 우린 그걸 인식하려고 하지 않을 때가 많은 거 같아. 어딘가에 놀라운 변화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것은 다른 어딘가에서 끌어오는 법이야. 에너지로 만든 성과는 소실되기 마련이라, 성과를 모든 관련자에게 나누는 건 어려운 일이지. 결국 에너지의 효율적인 재생산을 위해 분배를 편중시켜야 하고, 이익을 누리는 집단과 대가를 치르는 집단을 나누게 되지.


  나만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건 우리가 선택한 길이라고 생각해. 가장 인간다운 선택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낸 거지. 하지만 대가를 논하는 것이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되는 수식은 잘못된 거야.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 수많은 대가 속에서 온다는 것을 망각한다면, ‘문명’이라는 수레바퀴의 브레이크를 부수게 될 거야.


  난 좋은 말로 하면 이렇고, 나쁜 말로 하면 저렇게 되는 모든 상황에서, 나쁜 말이 진실에 가까운 경우가 훨씬 많다고 생각해. 어떤 것이 과학적인 근거가 되고, 근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어려운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세상이 쇠락의 노선 위에 있다는 건 모두가 알 거야. 이건 환경문제 같은 얘기가 아니라, 태양이 몇 억 년 후에 반드시 정지할 거라는 얘기지. 즉 사과가 하나 있다면, 점점 상할 거라고 예상하는 게 당연하다는 거야.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전망은, 기본적으로 진행 중인 속도를 가지고 있는 거야. 아무도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그건 너무나 받아들이기 싫은 사실이지. 그래서 우린 에너지를 모아보는 실험을 계속하는 것일지도 몰라. 어딘가에 예상치 못한 해답을 찾아내, 있을 수 없는 발전을 또 이뤄낼지도 모르니까. 즉, 이미 만들어버린 놀라운 수레바퀴를 부숴버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수레바퀴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에도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야. 하지만 우린 긍정적인 시점의 장점과 부정적인 시점의 단점에 휘둘리기 쉬운 정신 구조를 가지고 있지. 희망을 품는 것만큼 절망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해. 절망을 외면하는 건 희망을 맹신하는 것과 같지. 염세적인 주장에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린 또 발전할지도 몰라.


  난 쉽게 염세적인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야.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세계를 혐오하고, 힘의 표상이 되는 군사력을 하나의 쓸모없는 허상이라고 생각하지. 사람들이 속내를 숨기며 소통하는 현실을 불편해하고,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어. <씨스피라시>같은 다큐멘터리를 신뢰해서, 수레바퀴의 질주를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좌절했지. 덕분에 인류의 자멸을 막기 위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거대 사업을 셧다운하는 나만의 해법을 상상하며 즐기기도 했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정신만을 사랑하고 육체를 귀찮아해서, 아나키스트 같은 상상에 빠져버리기도 해.


  전부 세상을 살아내기에 쓸데가 없는 정신머리지만, 난 이런 내 염세주의를 사랑하고 있어. 이런 사념 없이 살아가는 나는, 내가 아니야. 이미 나사 빠진 이상한 녀석인데, 스스로 좋아할 유일한 구석마저 잃는 건 너무 분하단 말이지. 일단 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만의 수레바퀴를 완성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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