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5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상한 믿음

by 여러 이상한 헛소리 Mar 21. 2025

  난 분명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 나만이 진짜 사랑을 한다고, 나만이 세상의 진실을 꿰뚫고 있다고, 나만이 진정으로 선한 사람이라고 말이야. 아무리 착각은 자유고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인 법이라지만, 이 정도의 이상한 믿음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 뚫을 수 없는 필터와 같아.


  내게 자기애로 똘똘 뭉친 착각은 너무나 유용해. 내 게으른 삶에 비겁한 안정을 주거든. 여자 친구를 못 만들고, 재능을 썩히고, 그저 타인을 원망하는, 못난 나를 유지하는 힘이지. 상상의 부정적인 면모 말이야.


  이건 착각하면서 사는 방식이야. 내 몸에 젊음이라는 자원이 빠져나갈수록,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지. 난 가족을 꾸릴만한 놈이 될 수 없고, 타인이란 존재를 영원히 두려워하면서, 아무 기술이나 경력 없이 21세기의 중반을 맞이해야 해.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영원히 무시하면서…….


  이런 이상한 믿음을 버리고 바꾸는 건 거의 필수적인 일이야. 이런 걸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생각이지. 나도 목에 칼이 들어올 정도로 절박해진다면, 평생을 붙잡은 사념을 미련 없이 버리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이미 늦을 대로 늦어서 어마어마한 후회와 대가를 치러야겠지.


  이렇게 못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변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라는 게 문제야.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만, 난 나의 이상한 착각이 너무 좋아.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말이지만, 난 나의 이상한 믿음에 분명 의미가 있다고 평생을 믿어왔거든. 분명 세상이 이상하다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믿으면서 문학이라는 도구를 활용하려고 했어. 그리고 이런 전제를 게으른 자신을 변명하기 위한 방패로 삼으며 살아온 것도 사실이고…….


  이젠 이런 믿음 없이 사는 게 가능할 거 같지 않아. 난 언제나 딴생각 속에 세상을 원망하고 있고, 그게 가장 나다운 행동이야. 사회 속에 연기해야 하는 자신과 정신 속의 자신 사이에 거대한 괴리감에 점점 더 괴로워하고 있으면서 말이야.


  이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어. 친구, 원만한 대인관계, 운동, 계획적인 삶, 건실한 공부, 자존심, 현재와 미래의 수익, 재능, 섹슈얼리티, 웃음, 긍정적인 사고방식 등 조금이라도 귀찮은 것들을 전부 배제하면서 말이야. 이 모든 것을 포기하면, 내가 세상에 가지고 있는 의문을 형체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참 어리석은 일인데도, 도무지 그만둘 수가 없어.


  이제 내게 남은 건 나만이 알고 있는 ‘나’와 가족들뿐이야. 이 두 가지를 위해 모든 걸 버려봐야겠어. 언젠간 그렇게 좋아하는 게임과 망상도 끊어내고 있겠지. 더 이상 삶의 고통을 견디지 못할 때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을 거야. 언제까지 내가 이상한 믿음을 쥐고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 참 흥미진진해. 적어도 그때까지, 절망적인 글쓰기를 계속하는 거니까.

이전 25화 누구 좋으라고 살인을 – 소설 상상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