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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의 시기?

by 여러 이상한 헛소리 Mar 22. 2025

  삶이란, 불안정의 연속인 거 같아. 잠깐 이어지는 안정의 시간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불안정 속에 내던져야 하는 구조지. 그리고 이건 당연한 거야. 물질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는 자원이란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쟁취하지 못하는 존재가 도태되어야만 유지할 수 있지. 누군가에겐 부당할 수 있는 자연의 이치 말이야.


  분명 모두가 꿈꾸는 만큼, 안정된 시기를 확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거야. 내 경우, 워낙에 게으른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멍청한 인간이 되기로 했지.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 이외엔 전부 포기해도 된다고 굳게 믿고 있어. 당장 아무 능력 없는 나를 받아주는 일을 하루 9시간만 투자하면, 6시간의 자유 속에서 소모적인 스트레스 해소와 조금의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게 나의 한계라고 결정하고 있지.


  대부분 내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할 거야. 하지만 9:6의 비율은 정말 축복받은 거더라고. 살면서 물가라는 게 안정되었던 시기가 있었나? 실질적으로 월급이 오른 적이 있었나? 세계정세가 불안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좋은 소식으로 채워가는 뉴스가 얼마나 있었나?


  나도 분명 세상은 전에 없이 평화로운 시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어디선가 거대한 희생이 발생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삐딱하게 생각해 버리는 거야. 그 거대한 것이 새어 나오는 것을 아주 일부분만 확인하고 있는 거라고 말이지. 실시간으로 지구가 더워지면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거지만, 매일 그걸 확인하면서 살지는 않으니까. 언제나 전쟁과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지만, 매일 그걸 확인하면서 살지는 않으니까…….


  사후 세계를 상상해 온 역사는, 완벽한 안정을 꿈꿔보는 장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현실을 살아내는 것은 거대한 고통이었으니까. 당장에 극복할 수 없는 물질적, 사회적 격차에 정신적 안정이라도 찾는 건 당연한 행위가 된다고 생각해. 난 일을 하면서 힘들 때, 가족을 생각하거나 언젠가 이 부당함을 보상받을 거라 상상하는 일이 많거든. 비슷한 맥락으로, ‘종교’란 현상은 이런 일상적인 고통을 조정하는 것에 불과하지. 믿음을 가지면 구원받는 구조란, 팍팍한 현실에 있을 수 없잖아. 안정이란 그런 자원이 아닌데 말이야.


  물론 정신적 안정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지. 자산 관리를 필요한 만큼 한 사람들은 정신적 안정에 투자할 확률이 높아질 거야. 개인의 성향에 따라 필요로 하는 자산의 크기가 매우 작을 수도 있는 거고. 아무리 팍팍하게 살아도 정신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멋진 사람이 주변에 있을 거야. 누군가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드높은 경지에 도달하기도 하지. 하지만 여전히 모두를 위한 관념은 아닌 거 같아.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가 쟁취하는 건 아니잖아.

 

  안정된 시기를 바라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도 이기적인 행동일지도 모르겠어. 난 무언가가 끝나 버리는 게 너무나 좋아. 더 이상 그것 때문에 머리 아플 일은 없는 거니까. 그래서 어릴 땐 숙제가 있으면 빨리 끝내버리는 아이였어. 삶이라는 것도 그렇게 하나씩 끝내버리면서, 언젠가 보상받는 것이라고 여겼었지.


  하지만 이젠 어떤 것도 진정으로 끝날 일이 없다는 걸 알겠더라고. 청소를 하는 거와 똑같아. 더러운 걱정을 끝내버리려는 행동이지만, 실제론 더러움을 다른 어딘가에 옮겨놓을 뿐이고, 살아가는 한 영원히 계속해야 하는 거지. 청소를 끝냈다는 쾌감과 수확도 내다 버린 쓰레기도 중요한 현실인 거야. 안정의 시기란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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