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
도시의 시상은 사람의 수분.
고향의 시상은 양귀비 빛 이름.
근데, 시가 낯을 가리던가?
메커니즘
난 내 시가 좋아
그게 전부인 시를 쓰는 거야
그렇게 사랑해
맞아. 난 내 병명을 알아.
‘난 과의식증 환자야.’
정확히 그래. 도대체 지금 뭘 하는 걸까? 이러는 게 의미가 있나? 무슨 말이냐고? 나 너무 민감하게 굴고 있잖아. 조금만 맘에 안 들면, 맘에 드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어떻게든 말을 만들어내는 거 말이야. 자각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고? 과의식증이란 게 그래. 자기가 이상하단 걸 알고도,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야. 그런 정신병이지.
예를 들어볼까? 우린 서로가 다르단 걸, 진정으로 인정하면서 살진 않아. 정말 우리가 인정하고 있다면, 뭔가 이상한 사람을 왕따 시키는 건 뭘까? 매체 속 얼굴들이 너무 비슷하진 않니? 중요한 교과목은 한정되어 있어. 모든 일자리가 똑같이 평가되진 않는걸.
이런 게 과의식증이야. 우리 같은 사람은 이런 것 하나하나에 불평과 핀잔, 귀찮은 과제를 더 부여하는 존재지. 결코 타인과 이 모든 것을 공유하고 이해하면서 살아갈 수 없어. 그들이 진짜 혼자가 되어버리는 순간부터, 그 삶에 균열이 발생하는 거 같아. 불균형 말이야.
과의식증 환자가 아니라면, 세상이 크레파스 통이든 팔레트든 다 무슨 상관이겠니? 그냥 헛된 망상인 거야. 원래 모습 그대로, 아무 쓸모가 없는 뜬구름을 잡는 소리인 거지. 정말 허망한 일 아니야? 기껏 다시없는 정도로 복잡하게 생각해 본 것들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니.
나에게 과의식증은 하나의 중요한 정체성이 된 거 같아. 내 모든 상상이 거기에서 나오니까. 남들과 같이 못 지내는 쪼잔함과 내가 사랑하는 시상의 출처가 같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야. 날 점점 외롭게 만들면서, 더 큰 꿈을 꾸게 하는 마약이지. 이미 하나의 거대한 중독을 안고 살아가는 거야.
네 옆에 과의식증 환자가 있다면 어떨 것 같아? 확신하는데, 넌 그냥 그 사람이 싫어질 거야. 나도 그러거든. 나도 내가 싫은 정도의 못난 놈이야. 혼자만 잘난 줄 알고, 똑똑한 척은 다 하려 하고, 혼자만 편하게 살고, 남들을 경멸하고, 성격도 괴짜에, 속 시원한 대답은 모르고, 입만 열면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뿐인 똥 덩어리 말이야.
이런 친구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난 그런 친구 정말 싫어해. 만약 내가 남이었다면, 정말 경멸했을 거야. 나도 남들처럼 그 존재에게 깊은 짜증을 느낄 거고, 나랑 캐릭터까지 겹쳐서 더더욱 싫을 거야. 사람은 동류를 발견하면, 누구보다 짜증을 내기 마련이거든. 물론, 동류끼리의 동정이야 하겠지만, 그 정도로 내가 녀석을 대하는 태도나 행동이 달라지진 않아. 인사나 하는 사이면 성공한 거고, 서로 으르렁거리지만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런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나도 오랫동안 그 이유를 모겠더라. 내 어린 과의식은 삶의 이유부터 찾기 시작했지만, 그걸 명확히 아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어. 처음엔 쏟아지는 호기심이었던 거 같아. 모든 것의 이유가 궁금했고, 하나씩 그 베일을 벗기는 게 가능하단 걸 알아냈지. 모든 궁금한 것이, 하나씩 아는 것으로 바뀌는 즐거움에 살았던 거야. 계속 그렇게 열심히 해야 했는데…….
뭐, 다음은 역사가 쌓아놓은 지식을 흡수하는 거였어. 책이 가장 좋은 재료였지. 천년 단위의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나에게 지식이라는 영향을 줄 수 있는 성현들처럼 되고 싶었어. 그게 생의 첫 목표였지. 스스로 메시아가 되는 거 말이야. 역사에 영원히 남을 고전을 남기는 사람 말이야.
다음은 첫 현실을 보는 거였어. 난 스스로 원하는 만큼 대단한 놈인가? 그건 여태 쌓아놓은 지식 덕에 바로 알 수 있었지. 난 대단한 놈이 아니야. 재능이나 소질을 떠나서, 게으르고 어리석은 놈이지. 자연스레, 내가 대단한 사람의 꼬리라도 잡고 싶어 안달 내는 놈이란 걸 알게 되었어. 아, 난 그렇게 대단한 작품까진 못 쓰겠구나. 음, 일단 뭐라도 쓰는 사람이 되는 건 어떨까?
다음은 조금의 구체화였어.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는 위대한 영생을 얻을 수 없어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쓴 작품이 살아간다면, 영원히 사는 거 아닌가? 그래, 난 초라해도 영원히 살고 싶었던 거야. 나도 책을 써서, 우연히 태어난 과의식증 환자에게 읽히는 미래에 헛되게 기대고 싶어. 어떤 글을 쓰든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
다음은 뭐일 것 같아? 성공? 실패? 취미로만 글을 쓰는 한량? 스스로 단명한 어리석은 작가 지망생? 아니야. 난 내가 진짜 어떤 놈인지 알게 되었어. 내가, 내 안에 메아리치는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 교통정리를 하려는 사람이란 걸 알아냈거든. 여태까지의 모든 과정은 이 사실을 명확히 알기 위한 시간인 거 같아.
이제 난 나를 알게 되었어. 이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에 들어갈 때야. 앞으로 난 더 이상해질 거야. 긴장해야 해. 난 결코, 불안해하지 않을 거야. 아무리 이상한 일이 있어도, 난 내가 누군지 알고 있으니까. 누가 뭐라 해도, 아무리 빌빌거리는 삶이라도, 나를 유지하면 행복할 수 있을 거야.
‘근데, 사람이 정말 변할 수 있는 걸까?’
ㅎ, 제발 그만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