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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 소설

푸른이 표현을 빌리자면, 노래랑 꽤 재잘거렸어. 노래는 참 취미가 많더라. 음악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하고 게임도 좋아하고 코미디도 좋아하고 문학도 좋아한대. 물론 다들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것들이라고 했지만, 난 노래가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생각해 보니, 난 뭔가를 좋아해 본 적 없는 거 같았거든. 특별히 좋아한 게 있다면, 걷다가 이따금 달리는 거였어. 노래에 비해 초라한 거 같았지. 취미도 아닌 거 같고. 하지만 노래는 그게, 삶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 거래.


이 대목에서 푸른이가 노래를 향해 눈을 부라렸어. 아마 거짓말 작작 하라는 거겠지? 내가 노래랑, 음악은 물이고 그림은 하늘이고 게임은 돌멩이고 코미딘 태양이고 문학은 바람이라는 얘기를 나눴기 때문일까? 아까부터 심기가 안 좋아 보여.


난 노래랑 함께 만든 비유가 뭔지, 도통 모르겠더라. 노래는 나중에 천천히 알려준대. 우리, 또 만날 수 있는 거야?! 너~무 좋아. 하지만 푸른인 계속 안 좋아 보여. 하여간, 짜증 덩어리야. 네가 신경질 내는 거 같아서 신경 쓰여. 노래는 또 한 번 푸른이 눈치를 보고는, 하하하하 웃어. 참 호쾌한 웃음이야.


“푸른스,”

“왜.”

차가워라…….

“항상 고마워. 이 일을 해줘서.”

? 무슨 말이지?

“별게 다 고맙대. 너 오늘 진짜 이상한 거 알아?”

그래도 다행이야. 네가 여전히 너라서.


쿡쿡!

“넌 웃지 마라.”

“왜~?!”

웃기시네.

“몰라, 네 웃음소린 짜증 나. 함부로 웃지 마.”

“허! 참~ 내!”

“이제 가야 할 시간이지?”

“그래. 이젠 가야지.”

노래랑 푸른인 좀 쓸쓸하면서도 담담해 보여. 벌써 갈 시간이라니! 근데, 너희들은 떠나야 할 때를 어떻게 아는 거야?


그렇게 우린 작별 인사를 했어. 정확하겐, 나랑 노래만. 푸른인 곧 혼자서 성큼성큼 가던 길을 갔고, 난 당황하면서, 푸른일 좇았어.


(중략)


꼬까신을 지금은 소중히 품어가고 싶었어.

“그거라도 신지 그래?”

분명 걸으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뭔가 우뚝 멈춘 것만 같아.

“익숙하지도 않고…, 아까워서…….”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었거든. 들판에선 발 아플 일이 없었으니까. 내가 맨발이란 것도 몰랐지.

“야, 미련하게 그런 거 아끼다 다치는 거야.”

“아, 알았어!”

말은 그랬지만, 뭔가 안심이 돼.


난 검은 길 위에, 유난히 빛나는 꼬까신을 사뿐히 신었어. 물론 기분이 좋았지. 꼬까신이 꼬깍 소리를 내는 것도 재밌었고. 근데도 뭔가가 슬픈 거야. 나랑 세상 사이에 렌즈라도 하나 끼어버린 것처럼, 속이 답답하고 그러는 거 있지?


그래도 푸른이는 물 흐르듯이 걸어.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아! 답답해! 너 삐졌어?”

“뭔 개떡 같은 소리야.”

“봐, 화났잖아.”

“화 안 났어!”

“뭐가 그래? 화난 티 단단히 내고 있으면서!”

“아니래도.”

하…….

“……”

“그러는 너는?”

?!

“왜 화부터 내고 그래? 너희 둘이 얘기 잘하라고, 자리 비켜줬잖아.”

허!

“말을 뭐 그렇게 해? 네가 신경 쓰이게 저기압이라 그런 거지.”

“멋대로 쫓아와 놓고, 화부터 내고 있잖아.”

“왜 모른 척하는 거야? 우린 파트너잖아. 네 신경질에 나도 신경 쓰고, 내 행동에 너도 신경 쓰이는 거잖아.”

“!…… 아… 아니거든!”

호~.


“오호~라, 요는”

아니야.

“나랑 노래가 둘만 재밌게 얘기하는 게 질투 났구나?”

휴~. 깜짝 놀랐네.


(중략)


“허! 그럼 얘기해줘 봐. 뭐가 그렇게 신경 쓰이는 거야?”

“……. 나도 몰라.”


‘모르긴, 뭘 몰라? 다 알고 있잖아.’


“알았다! 개나리 반지가 부러웠구나?!”

?

“ㅎㅎㅎ! 진작 말하지 그랬어~. 줘봐, 새로 만들어줄게.”

“안돼!”

초롱이의 다정한 말에 미안해질 정도로 큰 소리였어. 왜 이러는 거야?

“이 반지는 이대로가 좋아. 나도 선물이 고맙다고!”

진짜 그러기야?

“음~, 그래. 나도 고마워. ^^”


너무 당연한 일이 일어나듯이, 우리의 신경전이 끝났어. 그냥 넘어가서 다행이야. 초롱이는 오히려 행복해 보여. 둘 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느낀 시점에서, 이런 다툼이 끝나는 걸까? 하지만 난 아직 이게 왜 신경 쓰이는지도, 이런 싸움을 왜 해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중략)


“칠칠치 못하게 선물을 흘리고 다니냐.”

푸른인 평소처럼 일어나서, 홀로 뒹구는 연고를 주워주는 것 같았지. 근데 안 돌려주네?

“야, 돌려줘.”

“이제 필요도 없을 텐데, 내가 들어줄게.”

“안 돼!”

그래, 나도 놀랄 만큼, 뜬금없이 큰 소리였어.

“넌 어떻게, 선물로 준 걸 뺐냐!”

그렇게 무안하게 연고를 낚아채니까, 푸른인

“아니, 그럼 평소에 관리를 잘하든가!”

하며 씩씩거렸어. 좋은 맘으로 챙겨준 건데, 땍땍거려 버렸네.


그렇게 우린 달라질 것 없이, 재미없는 길을 걸었지. 서로가 없었다면, 분명 정신병에 걸릴만한 작업이야. 만약 혼자였다면, 세상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테니까. 눈앞에서 숨 쉬고 같이 걷는 사람을 확인하면서, 나도 살아있고 변한다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거야.

그러고 보니까 너, 나 없이 혼자선 어떻게 지낸 거야? 정말 외로웠을 거 같아. ㅎ! 그래서 저렇게 짜증 많고 툴툴거리고 이상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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