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좋아한 아이 - 소설

아, 가버렸네. 항상 바람 같지만, 오늘은 유독 태풍처럼 지나갔어.

초롱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귀여운 친구? 재밌는 아이?

물론 그렇지만, 난 걔가 푸른이의 새로운 시도인 거 같아.

……. 푸른이의 시도

…….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푸른인 결국, 뿌리치듯 집을 나왔어. 질문해 놓고, 답을 듣지 않아. 다시 말 한마디도 없이, 갈 길만 내게 재촉하고 있어. 왜? 좀 이상하지 않아?

“푸른아, 우리 벌써 가는 거야?”

“응. 오늘은 여기까지가 딱 좋아.”

돌아보지도 않네. 항상 자기 맘대로야.

“푸른아, 우리 너무 정신없이 배회하는 거 같아.”

푸른인 그제야 멈춰 섰어. 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지.


“왜 애들이랑 끝까지 대화하지 않는 거야? 난 좀 싸우고 질투 나도, 같이 웃어주는 애들이 좋아. 푸른이만큼 좋아. 얼마나 좋은지 실감이 가?”

“너도 이게 좀 익숙해져야지.”

“그게 무슨 말이야?”

“모든 거엔 순서나 적당한 정도가 있기 마련이야. 지금은 이만큼이 딱 좋아. 서두르다 또…”


“또?”

“아무것도 아니야. 한 번에 너무 많이 배우려 하면, 오히려 배탈 나는 법이라고.”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분명 뭔가 있는 거잖아?

“이번에야말로 이걸 끝내야 하니까.”

점점 모르겠어. 더 모르겠어. 왜 모르는 거야? 이미 난 과부하 상태야.


(중략)


“넌 끝이란 단어 좋아해?”

갑자기? 음,

“확실히 지금은 좀 좋아하고 싶어. 여긴 끝없이 같은 풍경일 것만 같으니까. 머리 아픈 고민도 싫고.”

“풉! 제법이네~.”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여긴 끝없이 검고 추울 것만 같아. 게다가 녀석이 드물게 밝은 탓에, 뭔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갑자기 그게 왜?”

“어릴 때 그런 적 있지 않아? 학교에서 자기소개가 들어간, 단체 작품을 만들고 그러잖아.”

“응! 항상 뒤에 큰 게시판에 붙여놓는 거!”

“그래, 그거. 항상 나무에 달린 열매인 거!”

“알아, 알아!”

이상한 말이지만, 푸른이가 해맑게 얘기한 적이 있었나?


“거기에 가끔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 있지 않아? 한 번에 한 개 정도 있는, 처음 받아보는 질문 말이야.”

아!

“항상 쉽게 생각했지만, 꼭 하나씩 복병이 있지. 맞아, 존경하는 사람이라던가 뭐가 있으면 행복하다라던가 우리 집의 자랑거리라던가.”

“맞아! 어느 날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뭔지 적었었단 말이지.”

풉!

“잠깐, 우하하! 거기다가 ‘끝’이라고 적어버린 거야? 꼬맹이가?”

“맞아.”

“아하하하하! 아~ 귀여워~~~~.”

우린 그렇게 한동안 웃었어. 참 이상한 아이야. 애들이 보통 그러겠어?


“와우~. 정말 놀라운데?”

“그렇지? 기껏 꿈나무 위에 달린 열매인데, 걔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끝’인 거야. 얼마나 힘 빠지는 상황이야. ㅋㅋㅋㅋ”

“그러게. 선생님 표정 볼만했겠다~. 킼킼킼.”

“맞아. 세상은 은근히, 다시는 없을 장면들을 매일 연출하는 거 같아. 질리지 않는 100년짜리 영화처럼!”

“그 이상한 비유는 또 뭐야?! ㅋㅋㅋㅋㅋ”

“그런가? ㅎㅎㅎㅎ.”


“아무튼 아무리 엽기적이어도, 그 아이는 전혀 장난이 아니었다는 거야.”

확실히,

“사실, 그렇지. 넌 어쩌다 그런 단어를 쓰게 된 거야?”

“난 분명 끊임없이 괴로웠던 거야.”

“뭐 때문에?”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언가. 하지만 분명히 온종일 날 괴롭히고, 고민하게 만들고, 슬프게 하면서도, 열의를 가지게 하는 거. 그 어린아이에게 끝이라는 안식을 바라게 하는 무언가 말이야.”

“단순한 사고나 힘든 과제일 수도 있잖아. 부모님의 싸움이나, 계속되는 숙제 같은 거.”

“어쩌면 그런 모든 고민일 수도 있지.”

?

“어쩌면 너무 게을러서, 영원히 그런 상태가 되고 싶을지도 몰라.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그런 기분일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분명 나이의 문제라기보다, 개인차일 거야.”

“아까부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뭐, 언제나 그랬지만.”

항상 우린 미묘한 거 같아. 방황하고 있어. 요즘은 그게 일상이야.


“초롱아, 우리나 그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건 뭘까? 뭔지 잘 모르는 활력이나 에너지의 정체 말이야. 약간, 스테이지 클리어하는 기분이 될 때가 있어. 내게 열을 올리게 하는 무언가가 끝나버리면 찾아오는, 편안함을 고대하는 때가 있어. 무언가 끝날 때의 쾌감은 다음을 기대하게도 하고, 지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음에 감격하게도 하는 거 같아.”

이제 좀 알겠네.


(중략)


이 칙칙한 대지의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유일한 따스함이 종말 하는 시간. 아직 남아있고, 우릴 미치게 하지 않는. 끝없는 동시에 매일 탄생과 종말을 맞이하는 뜨거운 시계.


(중략)


나도 끝이 좋아. 때로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게, 끝이라는 아이를 좋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끝이란, 반드시 노크하는 아이니까. 반드시 손님으로 우리 집에 와주는 아이. 때론 잔인한 숨결로 억지로 들어와 버리지만, 때론 우리의 억지만큼을 이해해 주는 아이…….


우린 오늘 그런 얘길 했어. 즐거웠지. 그 끝이 우릴 더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대화 말이야. 좋은 꿈을 꿨어. 뭔가 여기부터란 생각이 들어. 오늘의 끝이 이걸 시작하게 해 준 거야. 아니, 이미 시작된 걸 내게 알려주러 온 거지. 푸른아, 이 행복이 끝나기 전에 더 즐겨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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