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향기를 쫓아다녔다.
소개팅한 남자에게서 나는 향수의 호불호로 이성의 호감을 판단했던 것 같다. 사람의 살냄새나 집안의 냄새 등과 같은 추억이 떠오르는 냄새가 아닌, 기분이 좋아지는 인공적인 향을 선호했다. 선호하는 자연적인 향은 허브향이나 꽃향기 정도인 것 같다. 향을 좋아하는 내가 후각에 꽤 민감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저 향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비 오는 냄새를 좋아했는데... 지하에 있어도 비 오는 건 기가 막히게 안다. 어느 날인가, 지하에 있을 때 '비 오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지인이 '어떻게 아냐, 거짓말이지'라고 하기에 그를 밖으로 데리고 가서 증명해 주었다. 나는 비냄새라고 지칭했었는데 비를 머금은 흙이나 먼지냄새인 것 같다.
한때는 향수에 집착하여 이것저것 샀더란다.
직접 시향도 하고 좋다는 소문이 난 향수들을 인터넷으로 샀다. 우울할 때는 더 모았던 것 같다. 딱 기분에 따라 향들을 골라 뿌리곤 했었다.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을 만나면 알아야 했다. 그 향수의 정체를.
흠. 그러나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 향의 정체는 모르겠다. 어느 비 오는 날, 빵집에서 만났던 어떤 여성분의 그 향수. 비냄새와 엄청 어울렸었는데, 비냄새와 빵냄새와 한데 섞인 그 향수의 조화. 순간 낯선 이에게 물을 용기는 없었고 이후 돌아와서는 그 향을 찾아 헤맸다. 조향사도 전문가도 아닌 내가 무슨 수로 그 향을 찾는다는 건지. 백화점에서 시향하다 보면 정체가 나타나겠지 싶었는데. 5년이 지난 그 향은 아직 내 코 끝에 남아있다. 그리고 비 오던 그 빵집의 장면과 그 여성분의 어렴풋한 인상이. 이게 무슨 일인가. 낯선 여성의 향기가 아직까지 내 코끝에 남아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이 장면에 대한 기억이, 비 올 때마다 올라온다. 이래서 낯선 여자의 향기...라는 멘트까지 나온 건가. 내가 특이한 걸까.
한 20여 년 전에는 아로마 화장품과 향초 만들기를 배우러 문화센터에 간 적도 있었다.
천연재료의 화장품을 만들어 쓰기 위해서. 각 오일마다 효능이 있어서 각 용도에 맞게 배합하여 만들었다. 아로마 오일은 거의 허브향들이 주를 이루었었는데, 라벤더는 숙면에 좋다고 하였고, 카모마일은 마음의 진정을 준다고 했었던가. 어성초 성분은 여드름에 좋다고 비누에 넣었었던 것 같다. 열심히 기록하고 필요할 때마다 만들어 썼었는데, 기성품으로 나온 원재료들을 비율에 맞춰 섞는 것이라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었다. 하마터면 자격증까지 딸 뻔 했지만, 체험에서 그쳤다. 나는 화장품보다는 향초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엄마의 화장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배우러 간 것이어서 화장품에는 관심이 크게 없었다. 나는 예쁘고 향기 좋은 향초에 정신을 빼앗겼다. 유리컵 안에 예쁜 미니어처를 넣고 초의 원료인 왁스 중 투명한 재료를 녹여 향을 첨가하여 부으면 나만의 향초가 탄생하였다. 세상에 유일무이. 내가 좋아하는 향. 내가 좋아하는 모양. 요즘에 주변을 돌아보니 아로마를 이용한 향기테라피를 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지금 직장에서도 그런 동호회가 있다.
어떤 날은 나를 위로하고자 바디로션을 내게 선물한다.
향기를 입을 때는 뿌리는 것과 또 다른 차원. 몸에 향이 배는 것인지 옷에 배는 것인지. 샤워 후 입은 잠옷을 다음날 다시 입을 때도 상큼하다. 아이들도 '엄마 냄새 좋다.'라고 말한다. 엄마 냄새 아니고 바디로션 냄새거든. 솔직히 말해주면, ' 아니, 엄마 냄새 좋아.'라고 딸이 말한다.
향기를 입으면 뇌가 반응하는 걸까.
느슨해질 때도 으쓱해질 때도 자존감이 올라가는 느낌도 생긴다. 으응? 그 향기를 입고 다른 내가 된 느낌? 다른 어느 곳에 가있는 느낌? 어떤 향수는 나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발랄하게 기분을 업시키기도 한다. 자리에 따라 다른 향을 입는다. 내적으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는 듯한 착각도 인다. 향을 입은 후 스치는 나의 향기에 안도감이 일기도 한다.
인공적인 향을 싫어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언니는 땀 흘린 내 남자의 체취가 좋다 했는데 여전할까? :)
아름다움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으로 다시 우리를 인도하며, 무엇이 냉소주의를 영원히 막아주는지 상기시킨다. 아름다움은 목표로 똑바로 나아가게끔 우리에게 손짓한다. 아름다움은 더 작은 가치와 더 큰 가치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사랑, 유희, 용기, 감사, 일, 친구, 진리, 우아함, 희망, 미덕, 책임 등 많은 것이 인생을 살 만하게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아름다움이다.
- 조던 피터슨(2021). "질서 너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