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서 Jun 09. 2024

계약직이니깐 잘 보여야 해!?

비정규직의 진짜 의미와 현실의 차이는 극명해.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계약직)의 개념은 IMF여파로 널리 퍼지게 되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사실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소수 전문직이라든지 경영자들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는데 어려운 경제상황과 함께

해고가 용이하게 편법으로 사용되면서 매우 열악한 조건의 근로자를 대표하게 되었다. 


한국만의 상황만은 아니기는 하지만 유난히 한국에서 계약직은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차별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물론 공채라든지 그런 과정 없이 채용되었다면 차이는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그 격차가 심하다면 차별이 존재한다고 본다. 

사실 계약직은 그 기간에 협상을 해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동의한 것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만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은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낮은 노동임금에도 하고자 하는 공급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차별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또한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에 비해서 압도적인 갑을관계 아래 놓인 것도 어려움이 있다. 

한국에서 계약직을 하다 보니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정규직 혹은 무기계약직에 가는 것이 목표인 관계도 

많다는 점이고 현실적으로 이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특수상황에 있는 나와 같은 상황을 제외한다면 거의 이것이 현실적으로 놓은 계약직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업무 능력보다 선행되는 것은 소히 업무 평가자들에게 얼마나 잘 보이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정규직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은 없지만 계약연장이 매우 중요한 상황에서는 이처럼 강력한 종속적인

관계성을 표현하는데 강력한 무기가 없다. 

계약직은 계약 기간이 있고 다른 복지는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업무를 수행할 때 오히려 정규직보다 

임금이 높아야 한다. 그리고 사실 다른 직군에서는 이게 그렇게 작용을 하고 있다. 

경영진이나 전문직에서.. 

그런데 같은 계약직이라도 미화, 관리, 경비, 운전 같은 업무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임금이 낮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근로기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이다.

그것도 직군에 따라서 동일업무 동일임금도 아니라 동일업무 차별임금이 극명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것이 언제부터 고착화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계약직이 처음이다 보니 이런 상황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서 뉴스에서 보던 것과 현실에서 겪는 차이는

꽤나 그 격차가 심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고 그것은 굳이 이런 차별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사소하고 쪼잔한(?) 일들도 많다. 

물론 개인의 차별보다 제도적인 차별이기에 상급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동되고 있는 일이겠지만 그 작은 

차별이 없다면 오히려 더 생산성 있게 업무를 수행할 수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반면에 정규직이지만 철통밥 같은 상황이라서 생산성이 낮은 자리만 보전하는 듯한 업무처리와 과감한 

개혁보다 늘 해오던 매뉴얼적인 업무처리를 해도 어떤 제지도 없음을 목격하면서 무조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애매하다. 

반면 정규직들의 안일한 업무처리를 달리 처벌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참 묘한 심리가 작용된다. 


상대적인 차별을 싸우는 것보다 절대적인 기준을 맞추는 투쟁은 필요해 보인다. 동일업무에서 계약직이 더

성과를 내더라도 열심히 하더라도 달리 보상하지도 않는다면 결국 그 계약직도 더 이상 그렇게 업무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보상이 무기계약이라든지 정규직인지 모르겠지만(개인적으로 이것에 관심이 없어서)

이왕 일을 하면 그 일에 대해서 잘하고자 하는 성취감을 목표로 하는 입장에서는 신분의 보장을 위한 업무

수행보다 일 자체에 보람을 느낀다. 

다만 절대적으로 삶을 영위하는데 부족하다면 아무래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재활을 하는 입장에서 분명 불만도 없고 오히려 고마운 게 많은 직장이고 함께 일해온 사람들도 매우 좋았다.

다만 이것은 유효기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계약직으로 지원한 것도 재활기간을 염두하고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이었기 때문에 계약직이 너무 좋았다. 

임금이 낮은 것도 장애를 가진 시점에서 그 정도 업무 강도에 이 정도 임금도 동의가 되었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다만 이제 재활도 어느 정도 되어가고 무엇보다도 상황이 변하고 있기에 그 변화에 맞게 선택하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지금 내게 주어지는 기회가 기회일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문제로 고민일 수도 있다. 

안정적인 상황을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추구하는 목표일 수 있지만 불안정하다고 해도 가치의 우선순위가 

다르다면 그게 그렇게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고민 아닌 고민을 해왔지만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어찌 보면 이런 가치순위의 결정이었다. 

여러 번의 수술 끝에 생존한 입장에서 어떤 것이라도 감사로 살아가는 지금의 나에게 이것도 기회일 수

있지만 정규직이라든지 무기계약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이 유한하다. 그 안에서 무엇을 추구하던지 그건 그 사람만의 선택과 몫이다. 

집도 가져보고 잃어보고 건강하다가 잃어보고 여러 관계의 성립과 해체를 경험하면서 지금 내가 중요하게

느끼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그 끝에 선택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원가족들과 함께 누리는 시간과 

경험 그리고 기억, 쌓아 올리기다. 

때문에 지금 주위에서 여기서 잘 보이면 좋을 일자리 보장이 아니라 주어진 일은 잘 마무리하고 그 결과가

어찌 되었던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평가자들에게 잘 보이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날 아끼는 마음이고 함께 일해 온 사람들의 격려와 부러움도

함께 공존하겠지만 좋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삶에서 경험한 좋은 점은 우리의 생각대로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과

성실함은 중요한 자세라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평가를 받던 그렇지 않던 자신을 다스리는 요소로 그런 점은 상대의 평가에 상관없이 중요한

삶의 자세라는 점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기에 다르게 작용할 수도 다른 개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점도 수용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 

지금 난 상황이 어려워서 힘든 것도 아니고 좋은 상황으로 되어가고 있어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얼마 정도의 직업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 등이 있지만 

그것들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더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온인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지금껏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이처럼 가까운 적이 없었고 더 

가까워지려고 서로 노력하고 있다. 또한 직업의 환경조건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주어진 시간 동안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 지금!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 이 공간에는 이사장, 총장, 교수, 정규직, 비정규직, 외주업체, 학생, 사업체 등등 여러 직군과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함께 공존하고 있다. 

부러운 것도 있고 불만스러운 점도 있겠지만 각자만의 사정이라는 게 있을 거다. 

행복의 기존도 다르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도 나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도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중요한지 아닌지 그 정의는 없지만 

지금 내겐 잘 보이는 것보다 그냥 주어진 일 최선을 다하고 삶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긴 말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에 순간순간 감사하며 살아가다 보면

만나는 행복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소중하게 간직하기를 바란다. 


위대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모범을 보인 삶이 무조건 행복했다고 여기는 것도 무리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초월적인 의미가 있더라도 당신 자신의 행복과 상관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신이 행복하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가 과연 중요할까?

이전 13화 과거에 두고 온 미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