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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스트 Oct 30. 2023

쓸모의 쓸모




쓸모는 있고 없고 가 아니라 찾는 것이다.



쓸만한 가치가 있다 없다를 누가 함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처럼 매정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존재함에 분명 이유가 있고 그 자체로 귀한 것을.


옷가지와 팬트리 물건을 정리하면서 바구니만 사용하고 뚜껑이 남았다. 원래의 용도에서 쓸 일이 없다 싶으면 보통은 한 구석에 숨겨지거나 얼마 지나 버려지거나 정리가 아닌 제거로 끝이 나고 만다. 잠시 쓸모를 잃은 듯 한 뚜껑 3개를 어찌하면 좋을까. 필요한 새 물건을 사기 전에 집안의 물건부터 살펴보고 가능하면 있는 것을 활용하는 편이다. 형식의 틀을 깨고 다양하게 적용해 보는 시도는 살림에서도 꽤 유용하다. 이름 붙여진 이미지와 용도대로 꼭 써야 하는 법은 없는 법이니까. 그리하여 지금 주방 한편에서 프라이팬 정리대로 기특하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중이다물건에게도 신박한 임명이 아닐 수가 없다.


평소 우리가 쉽게 사고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물건들에 불편하고 찝찝한 감정이 남는 것은 왜일까. 아까워서다. 돈, 시간, 노력, 선택 등 내가 쏟은 에너지와 여전히 남아 있는 물건에 담긴 가치 그 모든 것이 아까워서 그렇다. 그저 정리하고 비우는 일이 제대로 된 끝이 아닌 이유에서다. 잠시 내 공간에서 보이지 않을 뿐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 어딘가에 계속해서 쌓이고 쌓여 결국엔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다. 알고 보면 그 사실이 가장 무섭기도 하다. 일상에서 쓰레기를 아예 안 만들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잘 먹고 잘 쓰고 잘 버리는 좋은 습관이 당연해졌으면 한다.


집안 곳곳에 자리한 물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쓰임새도 생김새도 모두 제각각이다. 낡고 색이 바랜 것 중에 아직 쓸만할 정도로 살짝 고장 난 것들도 당당하게 끼어있다. 쓰던 물건에는 그 사람의 태도, 습관, 사고방식 등 살아가는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마련이다. 손때 묻은 물건들을 마주하며 나란 사람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차분히 스스로를 점검해 본다. 나는 꼭 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쓰면서 낭비 없는 인생을 살고 있나. 가끔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아무 곳에나 뒤섞여 불편하게 버틴 적은 없었나. 사람에게는 잠재된 다양한 힘이 있는데 나는 그 능력을 제대로 꺼내  용기가 얼마나 있었지. 훗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할까. 후회 없고 부끄럽지 않은 삶의 흔적으로 그래도 꽤 잘 살았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 내가 선택한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답이 될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인지 필요가 필요하도록 만들어진 것인지. 많은 물건이 필요 이상으로 넘치는 요즘 세상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많이 가졌다고 꼭 그만큼 행복한 건 아니다. 작은 물건 하나라도 소유하려는 결심 앞에 나는 신중하고 싶다.


집은 짐이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다. 집안에 물건이 쌓이지 않으면 정리하는데 힘 들일 필요가 없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불필요한 소비를 막으면 가정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힘 빼고 슬슬하는 살림을 지향한다. 쓸모는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찾는 것이다. 섬세하고 간결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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