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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스트 Oct 31. 2023

오래됐다고 못 쓸까 봐




잘 써야 잘 산다


물건은 생각보다 튼튼하고 예상보다 오래 쓴다. 무려 12년 전 내게 처음 조카가 생겼고 그때 쓰던 방수요를 내 딸이 물려받고 둘째까지 쓰고도 모자라 얼마 전 태어난 남편 친구 아들에게까지 물려주게 되었다.


뭘 그렇게까지... 얼마 한다고 새 거 사지! 싶겠지만. 설마 그 돈이 없어 그랬을까. 돈이든 물건이든 제대로 쓰일 때 가치 있고 멋이 있는 법이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사줄 수 있지만 한두 번 만지고 던져버릴 장난감 같은데 쓰는 일, 이천원이 아까운 이유도 그래서다. 1년에 한두 번 입는 한복은 거의 새 옷이나 다름없다. 요즘은 옷이 해져서 못 입지는 않는다. 잦은 세탁으로 바랜 옷은 버리지 않고 할머니댁이나 체험할 때 편히 입히기 좋다. 그 외 대부분 깨끗한데 작아진 옷들이라 따로 챙겨서 물려준다.


유행 따지고 신상 따지기 보다 괜찮은 물건 잘 쓰고 잘 관리해서 그 쓰임이 최대한 오래가도록 하는 것, 멀쩡한 물건 쓰레기로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요즘 트렌드고 진짜 멋이라 말하고 싶다.


멋! 있게 살아요. 우리 :)


아장아장 아기 때 신었던 신발. 6년을 보관하고 이제 새 주인을 만나러. 상자, 보증서까지 구입할 때 그대로 잘 담아서.



허허, 빤스도 다려 입겠네


변함없는 운동회 룰이다.

흰 티셔츠 ㆍ청바지 · 운동화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처음으로 둘째 어린이집 가을 운동회를 간다. 옷장 구석에 걸린 흰 남방을 꺼냈다. 앞 포켓에 묻은 얼룩은 뭘 먹다 흘린 건지 기억나지도 않고 다 지워지지도 않았지만 8년이란 세월치곤 아직은 깔꼬롬하니 입을만해 다행이다.


셔츠, 니트, 면 티셔츠 같은 단조로운 디자인의 옷이 대부분인데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적당한 심플함이 깔끔하고 편해서 좋다. 건조기에서 막 꺼낸 옷 뭉치가 뜨끈뜨끈하다. 그대로 한 번 털어 입어도 괜찮지만 괜히 다리미까지 꺼내 주름을 펴본다.


주름만 펴질까 흰옷이 더 희고 힘 있어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안 하던 짓을 잘한 것 같다. 하는 김에 옜다 기분이다. 남편 티셔츠도 케어 들어가 본다. 따뜻한 관심이 더해지니 원래도 괜찮았던 옷이 훨씬 더 괜찮아졌다. 물건에게도 감정이 있다면 이런 스타일의 주인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림질하다가 별생각을 다 해본다. 실없다. 피식 웃고 어설픈 다림질을 마무리한다.


그날이다. 크로스핏으로 증가한 1kg 근력 에너지를 올망졸망 꼬맹이들의 가족운동회에서 보여주게 되다니. 아낌없이 불태워 보련다. 달려라 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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