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간 오랜만이다. 상쾌한 숨을 들이마시며 기분 좋게 산책을 했다. 걷다가 문득 '깊어지는 가을도 이제 다음 계절에 자리를 내어주려는 모양이구나. 하늘은 파랗고 강아지풀도 예쁘고 이 차가운 땅에 꽃은 참 곱게도 피었네' 싶었다. 매일 지나는 길인데 천천히 걷다 보니 다 다르게 보이더라. 나에 대해서도 찬찬히 다르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말이다. 몸을 움직여 걸으니까 참 좋네. 이제 집으로 돌아와 나는 신발장 앞에 서있다. 맨 꼭대기 칸에 넣어둔 신발 상자를 꺼내며 추위가 서서히 멀어질 무렵 지난 2월의 기록을 다시금 열어본다.
신발장 아래 칸을 차지하고 있는 겨울 부츠를 정리하기로 했다. 겨우내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 먼저다. 그다음 종이 뭉치로 형태를 잡아주고 때가 타지 않도록 서로 엇갈리게 눕혀 종이나 더스트 백으로 감싸준다. 이번 계절에도 내 딸아이의 발은 덕분에 따뜻했고 말끔해진 상태로 상자에 넣어두면 다음 겨울까지 안녕이다. 살갗에 닿는 바람이 아직은 차다. 너무 이른 걸까. 아쉬움에 며칠을 더 두고 볼까 싶지만 다시 꺼내 신을 리 없다는 걸 잘 아니까. 밖은 이제 곧 하나둘씩 꽃봉오리가 맺히고 봄이라는 계절로 돌아가고 있는 마당에 모르는 척 다음으로 미루고 싶은 게 좀 더 솔직한 마음일 테지.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수많은 결정을 내리며 살아간다. 가볍게 비워내든 단단히 채워내든 그 선택에 따라 먹고 일하고 숨을 쉰다. 쫓기듯 쉽게 치이지 말고 살아가자.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하자. 아무리 사소해도 미루고 쌓아서 좋을 리 없다면 바로 정리하고 제 자리를 찾게 하자. 이러한 습관은 일상의 그것들로부터 나를 편안히 해방시켜 줄 것이다. 미루었던 일이 있다면 지금 개운하게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
번거롭지만 즉시 처리할 것
번거롭지만 간단한 일은 미루지 않는다. 즉시 처리하는 습관은 투두리스트를 간결하게 해 준다. 그렇지 않으면 뒤로 미룬 사소한 일들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고 중요한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금방 하니까 나중에 하지 뭐. 하면서 미룬 날은 꼭 뭐 하나 제대로 다 끝내지 못하고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즉시 루틴
1. 마른 그릇 정리, 설거지는 바로바로
2. 쌓여있는 빨래 개기
3. 환기, 가볍게 청소기 밀기
4. 공과금 납부, 생필품 구입, a/s 확인 등
집안의 물건들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주고 귀찮지만 챙겨야 하는 자잘한 일들은 즉시 처리 항목이다. 집은 머무는 공간이다. 나의 자리가 정돈되면 내 몸이 편안해지고 어지러운 마음도 따라 정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