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거스트 Nov 24. 2023

시작과 끝

살림, 그것은 살아가는 어울림이다.



모닝 루틴


가을의 새벽. 다글다글 보리차를 끓여내고 물기 마른 그릇들을 정리한다. 부엌 창문을 살며시 열었더니 제법 선선해진 공기가 코끝을 시큰하게 스친다. 아이들을 차례로 깨우는 시간. 침대에 누워 잠든 아이의 모습을 한참 내려다보며 '길다 언제 이만큼 컸지'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자라는 아이만큼 나 역시 채워지길 바란다. 시들지 않고 깊이 무르익는 내가 되기를.


애들 씻기고 먹이고 입히는 동안 보리차는 적당히 따뜻하게 식어 있다. 구수한 맛 그대로 텀블러 가득 채워 담는다. 퉁퉁. 탁. "엄마 오늘도 물 다 마셨어요!" 하교 후 빈 텀블러를 가방에서 꺼내 녀석들이 싱크대 위에 올려둔다. 뿌듯하게 외치는 그 한마디에 웃는다. 매일의 수고로움이 전혀 힘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사랑이다.



주방 마감은 하루의 마무리


시작과 끝. 그 끝은 또 다른 시작. 때로는 참 귀찮을 때도 있지만 매일을 닦고 만지는 살림살이에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모습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 식구 건강하게 잘 먹고 부지런히 살아내는 매일이 이 안에 다 담겨있구나 싶은 마음에서다. 내게 살림이란 하루를 살고 살아가는 어울림이다. 집 안에서 집 밖에서 다들 분주했을 하루를 내려놓고 도란도란 쉬는 저녁이 고맙고 좋다. 양치 끝낸 아이들이 침대에 누우면 진정한 마무리가 되는 시간. 이렇게 정리를 마치고 주방 불을 끌 때 고요한 새벽시간만큼이나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모든 순간에 감사히. 굿나잇.




이전 14화 미루는 습관을 정리할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