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감 오지는 신입 찾아요
이렇게까지 타회사의 채용공고에 관심이 있었을까, 싶은 요즘입니다.
HR새싹이 시절,
흔해빠진 기본툴로 쓴 채용공고 말고
뭔가 내 냄새가 나고 내 손을 거친 것 같은 공고를 만들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땐 정말 매일 아침의 루틴이 채용포털을 돌면서 새로 올라온 공고를 살피는 일이었어요.
고작 눈알이나 키우고 몸 두께나 줄이는 비루한 포토샵 실력으로는 꿈도 못 꿀
정말 화려하고 예쁜 공고들이 많았습니다.
디자이너가 있어야 가능했던 그 공고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공고 수정이라도 배워볼 요량으로 액세스를 설치해 HTML을 따와서 연습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땐 단순히 보이는 '비주얼'만 따라 하기 급급했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내가 올린 공고의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깨닫고는
정말 입사지원을 클릭하고 싶은 공고를 만들고 싶었어요.
진심 어린 회사소개를 쓰고, 회사의 핏과 맞는 "진짜 그 사람이 해 줘야 하는 일"을 적어내기 시작했던 게 그즈음이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를테면 '경력 3년 이상 재무회계 팀원 모집' 같은 단순 명료한 JD가 아닌
'전표검토 및 부가세 신고 업무(자체기장) 3년 이상의 재무회계 팀원 충원' 같이
현업에서 그 구성원이 해줘야 할 일과 필요 스킬을 구체적으로 적어주는 JD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회사 전반적인 문화와 팀의 핏을 써 주었어요.
재무회계팀의 일하는 방식, 같은 것이요.
우리 재무회계팀장님은 숫자에 단호하지만 사람에겐 한없이 너그럽습니다.
부가세와 결산시즌엔 야근을 하기도 하지만, 맛있는 저녁은 회사가 든든히 챙겨드릴게요. 또, 더 늦게 된다면 안전귀가를 위해 택시비도 드릴게요. 하지만 제일 좋은 건 야근하지 않는 것! 팀장님은 야근을 저엉말 안 좋아하십니다.
회식은 점심에, 술은 권하지 않아요! 구성원 성비는 아주 다정하게도 반반입니다. 팀원은 모두 네 명이에요!
같이 무언가 그 현업의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고, 면접에서 불필요한 시간낭비( 팀원이 몇이에요? 성비는 어떻게 돼요? 야근 잦나요? 야근식비는요?)를 줄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하던 시기를 지나 어쩌다 백수가 되어보니
그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채용공고를 대하게 됩니다.
그러다 요즘, 정말 특이한 현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신입 채용공고인데, 해당분야의 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조항...
java, c++ 등 유경험자
UX UI 유경험자
부가세 및 결산지원 유경험자
같은 해당 직무의 유경험자가 자격요건인데, 신입 채용공고가 분명합니다.
너무나 슬픈 것은 그런 공고임에도 지원자수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
그것이 불법도 아니고, 나쁜 짓도 아니지만 전지적 꼰대시점에선 다소 안타깝습니다.
그냥 솔직해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신입채용공고의 자격요건에 유경험자를 넣는다는 건,
신입의 급여로 유경험자를 모집한다는 의미입니다. 혹은 회사 내규상 직무연차를 인정하지 않고 신입호봉으로 시작하거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육을 하고 트레이닝을 해서 현업에 투입할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이미 좀 경력이 있는 신입을 채용하면 바로 현업에 투입할 수 있고 히스토리 파악이 빠를 테니까요.
급여를 적게 주고 싶은 마음은 언급하긴 너무 짜치니 차치하고
대부분의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게 경력 있는 사람을 신입으로 채용하는 게 꽤나 달콤하고 또 솔깃한 게 현실입니다.
솔직하게, 우대요건으로 유경험자를 넣어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이러하여 신입연차를 채용합니다. 하지만 이러이러한 경험이 있는 분 께서 지원해 주시면 채용검토 시 우대해 드리겠습니다.
결론은 같아도 읽는 중고신입 입장에서 그나마 덜 치사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합니다.
비단 급여가 아니더라도, 채용을 원하는 포지션에서 신입 연차의 구성원을 원할 수 도 있고
그런 자리에 경력 있는 분 께서 신입으로 와 주시면 감사한 건 사실 회사니 까요.
너무 당연히 맡겨놓은 경력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고는 아무래도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는 요즘, 이력을 살짝 삭제해서
10년 남짓한 경력으로 지원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팀장 공고인데 5년 차 이상의 경력자를 채용한다니....
요즘 젊은 친구들은 5년 만에 리드할 수 있게 성장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14년 차가 다 되어감에도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내가 정말 더딘 인간인 건지
혼란스러운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