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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thm 지오그라피 Oct 08. 2022

나는 갑자기 경영인이 되었다 (8)

혼자 떠난 첫 여행이 된 유럽 출장의 매력, 2016년 9~10월

따지고 보니 혼자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행복을 미래로 미뤄놓고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타입이어서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어렸을 때 스키장 한 두번 가본 것, 즉흥으로 갑자기 제주도를 가본 것 말고는 제대로된 여행을 가 본 적도 없었다.


전역 이후에 친한 친구들 세 명이서 홍콩으로 해외여행을 떠난 적 있는데, 그때도 나는 "에이 저럴 돈이 어딨어" 라는 생각과 함께 계획을 듣자마자 가지 않겠다고 얘기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때 말고는 친구들과 제대로된 여행할 기회는 진짜로 얻기가 어려웠다. 특히 해외 여행이 뒤늦게서야 나에게 엄청 큰 의미가 되는 것은, 어쨌든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 속에 살고, 똑같은 생활 양식으로 사는, 국내 여행은 단순히 경치를 즐기는 것 외에는 크게 다가올 것이 없고, 지방 특산품이래봤자 웬만한 것들은 가격이 조금 비쌀 뿐 서울에서도 모두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나를 우겨넣고 그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는 것, 혼자여도 충분히 매력 있지만 친구들과 제대로 그런 여행을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한 채, 문득 우리 업계에서 1년 중 가장 큰 행사인 9월 마지막 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페어에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급하게 준비하여 (혼자서 한 번도 해외를 나가보지 못한 내가) 약 2주간 유럽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러시아 항공 아에로플로트를 이용했으며, 모스크바 공항에서 2시간 대기하여 경유하는 일정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장 멀리 나가본 해외라고 해봤자 말레이시아가 다였던 나에게 사실 유럽은 설렘과 함께 두려움을 같이 느끼게 하는 미지의 땅이었다.

첫 유럽, 첫 에어비앤비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추천하지 않는 조합으로 유럽에 도착했고, 

에어비앤비 뿐 아니라 웬만한 유럽 호텔들은 24시 체크인이 거의 불가능하다. 보통 오후 3~10시 정도에 체크인이 가능한데, 내 항공편은 볼로냐 공항에 9시 30분에 도착하였으나, 이미그레이션 등을 마치니 11시가 넘었고, 택시를 타고 바로 숙소로 가도 11시 반 정도가 될 상황이었다.


호스트에게 9시 30분 도착하여 지금 도착해서 바로 가겠다고 하니 퉁명스러운 답변이 왔고, 혹시라도 처음 온 유럽에서 체크인을 못해 밤거리를 떠돌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예약한 방은 호스트와 같은 집에서 방만 따로 사용하는 곳이어서 호스트가 조금은 화가 난 듯 한 표정으로 12시가 다 된 시간에 문을 열어주고 간단한 안내 등을 해주었고, 그렇게 첫날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유럽산 제품을 수입해 본 적도 없고, 내가 직접 해외 업체를 소싱하여 제품을 가져와 본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혼자 유럽 박람회에서 수 백개의 참가 업체들을 돌아다니는 경험은 지금와서 되돌아보면 미친 짓이었다.


물론 산업이 가장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곳, 그리고 1년 중 가장 중요한 쇼, 패션으로 치면 파리 패션위크 같은 곳에서 나는 새롭게 눈을 뜰 수 있는 기회에 던져져 있었다. 단가 200원, 300원 낮추려고 온 중국 공장을 들 쑤시고 다니고, 타일 두께를 줄이거나 유약을 덜 넣거나, 또는 표면 방오 (오염 방지) 처리 공정을 빼먹거나 하는 방식으로 '단가'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판매방식 등에 대한 그야말로 각축전이었고, 그 안에서 철저히 제조사 / 에이전트 / 판매사 의 관계는 서로 재고, 숨기고, 속고 속이는 관계가 아니라 철저히 서로의 생각과 방식들을 공유하고 같이 발전하는 비즈니스 관계였고, 단기적으로 큰 계약건을 물어다줄 업체들은 그 동안의 레코드가 없다면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처음 보는 광경의 비즈니스가 오가고 있었다.


스물여섯, 겨우 고등학교 졸업식 때 맞춰 입고 난 뒤 아직 갈 결혼식들도 없어 겨우 처음 꺼내본 어색하고 말도 안되는 양복을 갖춰입고 온 나는 누가봐도 전문가가 아니었고, 그야말로 new comer, 이방인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아마도 이쯤에 어차피 이 산업에 들어온 이상 뚜렷한 성과, 단순히 돈이 아니라 업계 내에서 (국내외) 어떠한 결과물로 인정받을 위치에까지는 가봐야 겠다는 어렴풋한 목표가 생겼던 것 같다.


비록 일 하면서는 수트를 입을 일이 거의 없지만 이런 박람회나 새로운 제조사들과의 미팅에서는 양복을 입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박람회 일정을 마친 뒤 여행을 갔던 영국에서 처음으로 내 돈으로 양복을 한 벌 구입했고, 다음 년도 박람회에는 그 양복을 입고 갔었다.

흔히 선진국 시민들은 높은 소득수준이 오래도록 유지된 덕에 기본적으로 여유로운 생활들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처음 가 본 유럽에서 그 말이 무엇인지 여실히 느끼고 돌아왔다. 


박람회 일정이 끝나고 시내 구경도 하고 저녁도 먹을 겸 번화가 (볼로냐 시내 - 피아짜 마조레 (마조레 광장))에 나가면 식당이며 길거리며 속속들이 들어차는데 서울 시내의 평일 저녁 식당들과 뚜렷하게 보이는 차이점은 회식자리나 1~2명이 잠깐 모여 빠르게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고, 하나같이 웃으며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사실 6~8명 모임도 굉장히 많았다.) 모여 쉬지않고 얘기하는 모습들이 부러워 보이기도 했다.


전문성 있게 일하고, 업무시간 이후에는 삶은 더욱 즐기고, 그렇게 다시 재충전한 에너지로 더욱 증대된 퍼포먼스로 성과를 내고, 삶의 질을 더 높이는 선순환이 가능해보였던. 첫 유럽 출장 & 여행을 통해 그렇게 삶에 대한 목표설정이 필요함을 깨달았고, 여행이 주는 신선한 환기, 그것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자극으로 성장하고자 최근까지도 해외 출장에 임하고 있다. 


이탈리아 박람회에 대한 소개 영상 및 유럽/아시아 각지를 출장&여행하며 올리고 있는 유튜브 채널.


브런치에 자세하게 게재되어 있는 첫 유럽 출장기. 현재 2016~18년도 까지의 출장기들이 정리되어 있으며, 2020년 초까지의 내용을 업데이트 예정이며 2022년 재개된 출장 내용들은 유튜브에서 브이로그 형식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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